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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 Oct 24. 2021

수행의 자리

스스로 불량 수행자임을 알고 있기에 주지스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들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차에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명상 체험형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도우미로 함께 참여하게 된 것이다. 수행 프로그램의 규칙은 단순했다. 정해진 시간에 기상과 취침, 주어지는 음식만을 감사히 먹고, 나머지 시간은 오로지 명상과 다른 수행에 매진하며 언제나 묵언을 지키는 것.    

  

명상 지도는 처음에는 수식관(나고 드는 숨을 세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법)으로 시작되어, 간화선으로 이어져갔다. 간화선이란 명상 수행방법 중의 하나로 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것이다. 나와 내 도반(함께 수행하는 벗)에게 주어진 화두는 “이 것은 무엇인가?”였다.      


말로 설명하고 이처럼 단순하고 명료하기 그지없는 명상이지만 실제로 자리 잡고 앉아하고자 하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오만가지 생각이라는  과장이 아니구나라는  몸소 깨닫게 된다. 수식관을   하나부터 열까지 세고 열에서 다시 하나로 내려오기만 하면 되는데  사이에 다른 생각이 끼어든 것을 알아차리면 다시 하나부터 세기 시작해야 한다. 첫날 하루는 숫자 5 넘기지 못했다. 그다음 날도 열에 도착하지 못했다. 거기다 묵언 중이니  답답함을 다른 곳에 호소할 방도도 없어, 그저 계속 도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셋째 날 점심공양을 하기 전 처음으로 수식관으로 한 바퀴를 성공했다. 드디어! 하지만 그날 오후부터는 다시 간화선을 수행하는 스케줄이었기에 목표 달성의 기쁨은 오래 누리지 못했다. 간화선 수행은 아무래도 말로 된 문장을 속으로 계속해서 되묻는 방식이다 보니 수식관을 할 때보다 더 폭넓은 잡생각이 밀려들어오는 것 같았다. 잡생각이 많아질수록 옆에 앉은 사람의 숨소리도 잘 들렸고, 내 오른 다리의 저림도 잘 느껴졌다.  

    

아침으로는 맑은 죽을, 저녁으로는 토마토 주스만을 먹으며 명상을 이어나가던 여섯째 날, 처음으로 스님이 설명해주었던 그 어떤 상태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처음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모호하고 애매한 것이었는데, 사이비 종교에서 보여주는 공중부양이나 전생 경험 같은 것은 전혀 아니지만 확실히 일상에서는 겪을 수 없는 것이었다.      


다리 아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심지어 앉아 있는 엉덩이의 압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 주변의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데, 뭔가 막힌듯한 먹먹함이라기보다는 아주 시원한 정적이다. 그리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방금까지 들고 있던 화두고 어느새 사라져서 고요한 정적 어딘가에 자리를 잡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참 내가 봐도 애매하고 어설픈 설명이지만 나는 이 경험을 하고 난 후로부터 다시 성실한 수행자가 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마약.. 같다고 말하면 너무 불경스럽지만 정말 마약 같은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또 한 번 꼭 다시 가능하다면 자주 경험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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