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절에서 얻어가는 가장 큰 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첫 번째는 마음의 평안을 꼽을 것이고, 두 번째는 운전면허증을 꼽을 것이다. 서울에서의 운전은 대단히 무서워 보였고, 또 딱히 운전을 못해도 못 갈 곳이 없었기에 지금까지 운전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절에 내려와 살다 보니 운전하는 자유를 가진 사람들이 너무너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유가 없는 내 상황이 너무너무 통탄스러워졌다. 고된 하루를 보내고 샤워하고 나와서 시원한 바나나우유 한잔 시원하게 하기 위해서는 일주일 전부터 계획을 세워 이동의 자유를 가진 자들에게 부탁해야 하는 처지라니. 나도 충동적으로 바나나우유를 사러 차를 몰고 나가는 그런 패기 넘치는 젊은이가 되고 싶었다.
마침 여름 방학 때가 겹쳐 장기 자원봉사를 하러 왔던 남자인 친구가 본인도 면허를 따려던 참이었다 하여 같이 등록을 했다. 같이 학원에 등록하러 갈 때까지만 해도 생활한복을 입은 이상한 서울 젊은이 둘이었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첫 교육을 앞두고 머리를 밀어버렸다. 그리고 행자복을 입기로 해버렸다. 이상한 상황이지만 완전한 행자는 아니고, 행자 경험자라고 해야 할까... 행자처럼 머리를 밀고 갈색 옷을 입고 생활을 하되, 어느 정도의 자유는 유지되는... 어찌 되었든 나는 갈색 옷을 입은 반-행자와 교육을 다녀야 했다. 그래서 교육장 마이크를 통해 “스님이랑 아가씨 차례요”라는 이상한 안내 방송도 들어야 했다.
운전 연수 담당자로는 총무스님이 당첨되었다. 가장 운전 경력이 길고 차분하다는 이유로 내가 강력하게 부탁드렸다. 한두 번 골목에서 트럭과 정면으로 가까워지고 있어도 브레이크를 밟을 생각이 없는 나 때문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당황한 목소리를 들을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 평정심을 유지하셨다. 이게 수행자의 능력인 것인가 생각했다. 한 번쯤 옆 손잡이가 떨어져라 잡으면서 멈춰! 멈춰! 할 법도 한데,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선을 지키셔야 합니다. 차분히 말씀해주시니 초보운전자인 나로서는 당황할 일도 없었다. 처음 운전을 누구에게 배우냐가 매우 중요하던데, 나는 스님께 배웠으니 화내는 일 없이, 도 닦듯이 안저 운전하게 되기를 바란다.
운전가능자라는 타이틀이 생긴 후부터 나의 절 생활의 영역이 무척 확장되었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던가. 권리와 의무는 함께 할 수밖에 없다고. 바나나우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다는 자유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의무가 많이 주어졌다. 예불이 끝나고 마을에 내려갈 차편이 애 배해진 보살님들을 모셔다 드리기. 공양간 보살님들 출근시간에 맞춰 모셔오기, 제사 시간에 맞춰 읍 떡집에 가서 떡 찾아오기, 재무 보살님 모시고 시내 세무서 다녀오기 등. 연수가 끝나자마자 바로 실무에 투입되어 겁이 나기는 했지만, 워낙 조수석에 타서 뺀질나게 드나들던 길이여서 그런지 길이 헷갈리는 일도 없었다.
오후 업무가 일찍 끝나는 날이면, 공양간 보살님들께 허락을 맡아 차를 끌고 나간다. 절 바로 아래 마을 저수지 근처에 주차를 하고 한 시간 정도 달리기를 한다. 달리기를 끝낸 후에는 다시 시동을 걸고 읍으로 나간다. 목적지는 읍 초입에 있는 세븐일레븐. 주차할 자리도 여유롭고 제일 다양한 종류의 삼각김밥이 들어오는 매장이다. 달리기를 마친 후 차를 몰고 나와 먹는 삼각김밥이라니... 극락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