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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 Oct 24. 2021

아침을 깨우는 소리, 도량석

자고 일어나면 배에 가스가 차서 구륵구륵 소리가 우렁차게 울리는 나에게 아침 예불 시간은 참으로 창피하고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시간이다. 그래도 매일 아침 예불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바로 도량석이다. 도량석은 사찰에서 새벽에 치르는 의식 중 하나로, 새벽 예불을 하기 전에 도량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치르는 의식이다.      


누군가의 노랫소리로 잠을 깬 경험이 있는지. 그것도 매일매일! 녹음된 소리가 아닌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보통은 경내에 가장 막내 스님이 도맡아서 하게 되는데 처음은 법당 앞에서 서서 작은 목탁소리 세 번을 치며 시작되어, 꽤 잰걸음으로 경내 전체를 돌며 찬가나 게를 읊는다. 그 소리는 처음에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가 서서히 커져간다. 어두운 밤에 산에 살고 있는 만물들이 놀라지 않게, 예불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차분히 일어나 준비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이다.      


처음 절에 왔을 때 나는 이 소리가 너무 좋아 미리 알람을 틀어놓고 일찍 일어나 풀로 감상하고는 했다. 아무리 조요한 산속 절이라지만 해가 떠있는 시간의 불경 소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소음들과 섞일 수밖에 없다. 맑고 맑은 불경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하루에 단 한 번뿐이었다.      


내가 워낙 도량석을 좋아하는 걸 안 총무스님께서 어차피 일찍 일어나서 도량석 소리 다 들을 바에는 막내 스님과 같이 도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까지 해주셨지만 차마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막내 스님이 겁을 먹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점차 시간이 흘러 절의 삶에 익숙해지자 도량석의 아름다움보다 조금 더 긴 잠이 소중해지는 때가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잠결에 다른 이의 노랫소리를 들으면 깨어나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로맨틱 영화에 노래로 연인을 깨워주는 장면이 나온다면 난 당장 그 영화를 꺼버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모든 스님들이 항상 감미로운 도량석을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한 번은 심각한 음치와 박치인 스님께서 도량석을 도신 적도 있다. 감상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주 성능 좋은 알람시계 같았달까. 그 미묘한 박자의 어긋남과 삑사리는 깊은 수면 상태에 빠진 그 누구의 무의식에도 침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역시도 그랬다. 보통 도량석 소리가 꽤 커지고 나서야 일어나는 내가, 도량석이 시작되고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귀를 간지럽히는 색다른 해석의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들으며 ‘이게... 뭐지? 하며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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