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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 Oct 24. 2021

나는 자연인인가?

“보살님! 보살님!” 잠결에 나를 부르는 다급한 소리가 들린다. 본능적으로 그놈이 또 왔음을 알아차리고 겉옷에 한쪽 팔만 대충 낀 채 문을 박차고 나간다. 더듬더듬 고무신을 찾아 발을 채 다 넣기도 전에 커다란 그림자가 나를 덮친다. 할짝, 무릎 부근이 축축하게 젖는 느낌에 정신이 바짝 돌아온다. “너 이놈! 또 내려오면 어떡해!” 산에 사는 삽살개 ‘대장이’다.      


산속 암자에 살고 계시는 노스님이 키우고 있는 대장에는 말 잘 듣고 영특하기로 소문난 강아지였는데, 최근에 노스님이 다리를 다쳐 산책을 못하게 되자 자꾸 어리광이 늘어만 갔다. 그리고 그 틈에 내가 자주 놀아주기 시작하자 이제 새벽 대종 소리만 들리면 온 산을 해 집고 절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절에서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워낙 발랄함이 지난 친 대장에는 덩치가 꽤 되어 대장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공포를 주기 쉬웠기에 이렇게 장군이가 새벽녘부터 뛰어내려오는 날이면 다시 집으로 데려다주러 가야 했다. 하지만 쉽게 잡힐 그가 아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노스님한테 된통 혼날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목줄을 잡으려는 낌새만 보이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럼 아직 해도 뜨지 않은 경내를 어지럽히며 대장이 와 나의 경주가 시작된다. 네발 달린 동물을 이길 방법은 머리와 기술을 사용하는 것뿐. 적당히 간식으로 꼬드기고 지름길로 앞서 나가서, 나뭇가지를 들고 구석으로 몰아야 한다. 그래서 적당히 간격이 좁혀지면 대장이 몸에 내 몸을 딱 붙이고 힘싸움을 좀 해줘야 한다. 그래서 우세가 내 쪽으로 살짝 기운 틈을 타서 목에 줄을 탁! 걸면 다시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반의 확률로 지난밤 사료를 두둑이 먹은 장군이가 날 밀치고 다시 산으로 도망간다.      


고무신을 신고 나뭇가지를 들고 도망가는 개를 잡으려고 산을 전력 질주하고 있을 때, 점심을 먹다 밭에 가서 상추와 고추를 툭 따와서 장에 찍어먹을 때, 산책을 갔다 좋은 흙을 발견하면 퍼와서 밭에다 뿌릴 때, 장작을 손도끼로 패다 쩍 갈라지는 소리에 기분이 상쾌해질 때, 길 한복판에 벗겨진 뱀 허물을 봐도 놀라지 않고 나뭇가지로 건져다 길 밖으로 휙 던져버릴 때, 나 드디어 자연인이 되어버렸구나 생각한다.      


재무 보살님은 서울애가 온 지 얼마 안돼서 얼굴은 빨갛게 익어 시골애가 다되었다며 부모님이 알면 얼마나 슬퍼하시겠다고 꾸지람을 하셨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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