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배탈이 났나 보다 했다. 배꼽 아래 장이 꼬여서 부글부글한 느낌에 가까웠다. 산부인과에서는 곧 태동이 있을 거라고, 20주가 넘어서 태동이 없으면 다시 병원에 오라고 했지만 태동의 'ㅌ'도 몰랐던 나는 그게 어떤 거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귀엽다는 듯 웃었다. "아이가 뱃속에서 노는 거예요" 마주 보고 웃으며 생각했다. 어흥이가 뱃속에서 뭐 하고 놀까? 아리송한 상태로 남았다. 배가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태동인가, 배탈인가 갸우뚱하고 넘겼다.
20주가 넘은 어느 날 자려고 누웠는데 배꼽 아래 부근이 볼록 솟았다. 어흥이가 손으로 자궁벽을 꾸욱 누른 것처럼, 웅크려있다가 천천히 휘적휘적 손이며 발로 뱃속을 탐색하는 것 같았다. 신기해서 손으로 배를 쓸었다. '어흥아, 안녕. 반가워' 꼬물꼬물 꾸물꾸물 내 손길에 반응하는지 연달아 움직였다.
아이 특성에 따라 태동이 다른가보다. 임신을 먼저 경험한 동료는 태동을 발길질이라 표현하며 '와다다다다'해서 아프다고 했다. 어흥이는 지그시 누르는 '꾸욱꾸욱'에 가까웠다. 내가 밥 먹을 때 몸속에 뭔가가 들어오는 걸 아는지 꼬물꼬물 하고, 자려고 누웠을 때 자세를 바꾸는지 꾸물꾸물했다. 대체로 오전에는 잠잠했다. 파트너를 닮아서 아침잠이 많은 모양이었다.
태동을 확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과 수학여행을 갔다. 맡은 역할이 있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참여하려고 했지만 막상 잘 되지 않았다. 오래전에 계획해 온 일정이고 내가 대부분 기획했으니 가야 한다고, 괜찮을 거란 의욕이 넘쳤다. 학생들과 함께 반나절 버스를 타고 오랜 시간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배낭을 멘 채 산비탈에 있는 숙소를 오르고 올랐다. 어느 순간부터 아랫배가 땡땡하게 굳어 긴장하는 것 같았고 허리가 뻐근하면서 다리가 무거웠다. 태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태동이 없으면 병원에 오라던 말이 떠올라 덜컥 겁이 났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일정에 먼저 쉬겠다고 말했다. 홀로 남은 숙소에서 따뜻한 물에 씻으며 배를 만졌다. 하루의 긴장이 풀리듯 아랫배의 딴딴함도 풀리길 바랐다. 자려고 누워 크게 숨을 쉬며 명상하듯 눈을 감았다. 불안함이 진정되고 마음이 고요해지자 오른쪽 아랫배가 꾸물댔다. '이제 자는 거야?'하고 말 건네는 느낌. 안도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배를 어루만지며 조용히 속삭였다. "어흥아. 오늘 수고 많았어" 언제 잠잠했냐는 듯 배꼽 아래 부근이 꾸물꾸물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 모든 기준은 태동이 되었다. 옆사람 속도에 맞춰 걷다가 잠시 숨을 골랐다. 여행 일정에서 빠져도 되는 타이밍엔 휴식시간을 가졌다. 내가 자리를 비워도 여행은 순조롭게 굴러갔다. 쓸모 있어야 한다, 동료들처럼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사라지자 훨씬 느긋해졌다. 임신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뭘 그리 열심히 했을까. 매 끼니 밥 한술도 꼭꼭 씹어먹었다. 내가 먹는 속도에 따라 어흥이가 꼬물댔다.
23주가 지나자 태동이 일상이 됐다. 어흥이가 몸을 돌렸다가 팔을 움직이고 다리를 폈다 오므렸다 딸꾹딸꾹 하는 움직임 하나하나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안녕', '이거 맛있어. 더 먹고 싶어', '호흡연습 하느라 딸꾹질하는 거야', '지금 무슨 얘기하는 거야? 나도 듣고 있어' 같은 말들. 유독 사람들과 대화할 때 꼬물대는 횟수가 잦아졌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함께 있다는 듯 꾸욱 눌렀다. 학생들은 서로 거친(!) 표현을 섞어가며 말하다가 내가 옆에 있으면 화들짝 사과했다. "어흥이한테 미안해서 어쩌죠?" 어흥이가 듣고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생각하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다 듣고 살아야죠." 어흥이가 태어나서 말을 빨리 익힌다면(그것도 욕을 찰지게 한다면!) 아마도 이들의 영향일 거다.
은밀한 취미도 생겼다. 엄마가 해준 밥을 먹다가, 학생들과 수다를 떨다가, 동료들과 회의를 하다가, 불현듯 내 앞에 있는 이 사람도 뱃속에서 꼬물꼬물 꾸물꾸물 시절이 있겠지 상상한다. 특히 누가 봐도 임산부 아닌 사람이 지하철 임산부석에 앉아있으면 화가 나기 시작했는데 이런 사람들의 태아시절을 유추하는 것만으로 감정이 누그러지는 효과가 있었다. 속으로 풋 웃고 나면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어흥이 움직임 덕분에 자잘한 것들에 휘둘리지 않는 연습을, 넉넉해지는 품을 배우고 있다. 지금도 종종 산다는 건 태동만큼이나 값지고 혹은 별 거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