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임신 중반기에 메스껍고 멀미 나는 증상이 있어서 약속을 미루다가 다행히 가뿐한 날이었다. 근황을 나누며 자연스레 임신에 초점을 맞춰 얘기했고 말하다 보니 신이 났다. "적응하느라 몸이 힘들지만 태동을 느낄 수 있어서 엄청 신기해. 뱃속에 아이가 자라고 있는 거잖아" 친구가 내 말을 듣다가 덧붙였다. "재은아, 너 임산부 다 됐구나"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말하기를 멈췄다. 이상했다. 분명 임산부가 맞는데 임산부 다 됐다는 말이 낯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이 마음은 뭘까 갸웃거렸다. 파트너는 있지만 아이 생각이 없는 친구에게 내가 너무 유난스러웠나 생각하다 보니, 그녀와 나의 차이가 도드라지게 다가왔다.
임신을 하고부터 두려움이 깔려있었다. 몸의 변화가 생소해서 그렇다고 넘겼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엄마'가 된다는 두려움은 생각보다 막강했다. 동물을 키워본 적 없고 식물도 걸핏하면 죽이는 내가 한 생명을 돌보고 책임지는 엄마라니. 친구의 '임산부 다 됐네'는 임신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상기시켜 주는 말이었다. 내가 그녀와 다른 상황에 놓였음이 확연히 느껴졌다. 유럽 여행을 계획하거나 일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말하는 친구를 보며 입맛을 쩝 다셨다. 나는 미래를 계획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될지 감도 안 왔다. '태어나면 알아서(?) 크겠지' 꼭꼭 덮어둔 걱정이 자기 세상을 만난 듯 활개 치기 시작했다.
그즈음 '며느라기 2' 드라마 클립영상을 봤다. 주인공 민사린이 임신 소식을 알고 허망해하며 '직장은 어떻게 해야 하지, 일상이 바뀔 텐데 괜찮을까' 고민이 많아진다. 남편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기뻐하며 축하하지만 정작 본인은 떨떠름하다. 친정 엄마를 만나서야 마음을 털어놓는다. "엄마, 나 하나도 기쁘지가 않아. 애기한테 미안한데 솔직히 잘해 낼 자신이 없어" 그 말에 심장이 쿵쾅댔다.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었다.
엄마가 된다는 건, 육상경기를 구경하면서 준비 없이 앉아있는데 대뜸 유니폼을 입고 선수로 나가야 하는 상황 같았다. 어디 소리 칠 곳만 있다면 "악! 아직 아니야! 준비 안 됐어! 몰라! 나 그냥 딸만 할래!" 하고 싶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막막함과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이 추가된 게 아니라 역할 자체가 전환된 거였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서 책임져야 하고, 부모님에게 보살핌 받다가 이젠 내가 부모가 되어 자그마한 존재를 돌봐야 하는 상황으로 말이다.
엄마랑 둘이 저녁을 먹다가 넌지시 물었다. "엄마는 오빠랑 나 낳고 무섭지 않았어요? 엄마가 된다는 게?" 엄마는 가벼웠다. "응? 그게 무서울 일인가?" 숟가락으로 밥알을 건드렸다. "아이한테 얽매일까 봐 무서워요. 어디 가고 싶어도 못 가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못 할 거 아냐" 엄마가 된장찌개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말했다. "나는 너네 낳고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았는데. 하고 싶은 게 새롭게 생기기도 했고. 아이 있다고 못 하나?"
그랬다. 엄마는 하고 싶은 걸 했다. 엄마는 오빠와 나를 낳고 '활동가'가 되었다. 우리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길 바라면서 여성, 환경 운동을 시작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나를 둘러업고 여기저기 다녔다. 엄마로서는 오빠와 나에게 온전히 시간을 쓴 것이기도 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게 될지 고민하면서 행동으로 옮긴 거니까. 다만 어린 나는 엄마랑 온종일 같이 있고 싶었다. 소나기가 오면 다른 애들은 엄마가 학교 앞에 우산들고 서있는데 나는 혼자 뛰어가야 한다거나, 친구집에 놀러 가면 친구 엄마가 만들어준 간식에 와아 감탄했다. 엄마가 활동가임이 자랑스러운 동시에 혼자 보낸 시간이 외로웠다. 그래서 더욱 아이에게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엄마가 이어서 말했다. "아이와 얼마나 시간을 보내느냐보다 어떤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엄마가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면 아이도 그렇게 크겠지" 끄덕끄덕, 종종 외롭긴 했어도 나쁘지 않았다. 엄마를 대신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 친구와 친구 엄마 그리고 엄마 사무실의 이모들이 내 곁에 있었다. 두루두루 엄마와 함께한 셈이다. 힘을 빼고 프후후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도 나는 딸만 하고 싶다" 엄마가 눈을 흘겼다. "어린애 같은 소리 자꾸 할래? 어흥이가 엄마가 뭐 이래 할라" 아차차, 어흥이가 듣고 있다고 상상하니 조금 부끄러웠다. "어흥아, 방금 건 흘려 들어. 너한테 하는 말이 아니야. 내 마음이 그렇다는 거야" 하면서 배를 문질렀다.
여전히 책임지기 무섭고 잘할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은 그대로였다. 사실 이 상태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임신한다고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되는 것도, 혼자 엄마가 되는 것도 아니다. 아이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어흥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도 마주해야 할 감정이자 질문이었다. 나는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 될 수 있을까. 결국 '무엇을 중심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질문과 맞닿아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친구와 나는 서로 다른 일상을 보내겠지만 같은 질문에 도달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여전히 누군가의 딸이어서 다행이었다. 엄마가 된다는 게 엄마를 닮아가는 거라면, 내가 아닌 누군가를 지켜보고 아낌없이 지지하는 마음을 내는 거라면 그건 그거대로 좋을 것 같다. 어떻게든 되겠지, 아직 "엄마"하고 부르는 것이 훨씬 익숙하지만 엄마라 불리는 것에 적응하는 날도 오겠지.
어흥이가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꼬물꼬물 꾸물꾸물 잘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