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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씽씽 Apr 18. 2022

가족의 품

나는 괜찮지 않아요

  마을 신문을 만들고, 아이들 수업 보조 선생님으로 일하고, 보드게임 모임에 나가는 시간을 빼도 신애에겐 많은 시간이 남았다. 신애는 퇴사 이후 갑자기 생겨버린 자유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일단 아침을 건너뛰고 거의 점심이 되어 일어났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신애의 방문을 열어보고, ‘허허, 아직도 자네.’하고 문을 다시 닫았다. 그러면 신애는 더 깊이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렇다고 점심을 먹고 오후 시간을 의미 있게 쓰는 것도 아니었다. 학교와 직장을 다닐 때는 시간표가 존재했다. 짜여있는 시간에 맞춰 신애는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일했다. 반백수가 된 신애는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그저 시간을 때울 뿐이었고, 신애의 그런 모습은 가족들에게도 그대로 노출됐다. 그렇다. 고향에 내려와 산다는 건 본가에서 가족들이랑 지낸다는 뜻이었다.


  ‘서울에서 외롭게 죽느니, 가족이 있는 따뜻한 집에서 사는 게 좋지.’


  처음엔, 그랬다.


  따뜻한 집에서 신애는 홀로 우울한 사람이었다. 문제를 일으키고, 분위기를 무겁고 날카롭게 만드는 사람. 그게 바로 신애였다. 사소한 말에도 꼬투리를 잡고 예민하게 굴었다. 특히 그녀의 부모가 동생을 조금이라도 더 챙긴다거나 하면 그날은 전쟁의 날이었다. 다문 입은 댓 발 나왔고, 그걸 몰라주면 더 깊이 우울의 땅굴을 팠다. 그럴 때면 가족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신애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어둡고 냉랭한 분위기는 모두의 기분을 망치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신애의 아버지 진탁은 울면서 출근하는 신애를 차로 태워주며 타일렀다. 타일렀다고는 하지만 단호한 말투였다.


  "다 같이 사는데, 네 감정만 앞세워서 되겠어? 너 때문에 가족 전체가 눈치 보고 살잖아."


  신애는 아무도 자신의 감정을 이해해주는 이가 없다는 사실에 더 서러워졌다.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눈물을 감춰야 했다. 눈물을 훔치며 아무 말 없이 차에서 내렸다.


  신애의 고정수입은 한 달에 50만 원이었다. 고작 50만 원. 본가에 살면서 따로 월세니 식비니 들어가지 않아 그 정도로도 용돈은 가능했지만, 넉넉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그건 그녀의 부모 눈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더 많은 수입이 필요했다.


  신애는 웹툰 공모전에 도전해 웹툰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바로 전공을 살려 돈을 버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기다리던 차에 로맨스 웹툰 공모전 일정이 떴다. 신애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안에 웹툰을 그리기 위해 밤을 새우며 그림을 그렸다. 거기까진 좋았다.


  "1분 차이로 공모전에 못 냈어……."


  낮잠을 자지 말 걸. 1분만 더 일찍 메일을 보낼 걸. 12시 1분. 그 1분 때문에 애써 준비한 작품을 공모전에 내지 못했다.


  "한심하다, 한심해."


  위로를 받기 위해 투정을 부린 것이었는데, 엄마로부터 한심하다는 이야기가 돌아왔다. 어찌 보면 당연한 대답이었지만, 신애는 기분이 상했다. 그건 이번에 공모전을 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일침일까, 아니면 딸에 대한 전체적인 피드백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신애는 일을 할 때 외에는 모든 시간을 누워서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보는 일에 할애했다. 무언가 의미 있거나 활동적인 일을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게 신애 스스로도 한심하게 느껴져서 엄마의 한심하단 말이 더 크게 마음속에 콕하고 박힌 것일지도. 어쨌든 신애는 항상 자신을 응원해주던 엄마에게 한심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신애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잠을 잤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엄마랑 꼭 붙어 누워있었다. 엄마는 TV를 보고 있었고, 신애는 엄마를 보고 있었다. 신애는 그날따라 서울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자 생각했다.


  "엄마."

  "응, 왜."

  "나 서울에서 너무 힘들었어."

  "많이 힘들었구나."


  엄마는 신애를 토닥여줬다. 신애는 그 따스한 손길에 용기를 내어 힘겹게 다음 말을 내뱉었다.


  "서울에 있으면, 내가 나를 죽일 것 같아서 내려왔어."


  엄마는 힘들었겠구나,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저 남들이 힘들 때 ‘죽고 싶다’ 가볍게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TV에서는 한 중년 여배우가 죽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머어머, 저 배우 죽었네."


  엄마는 신애를 내버려 두고, TV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배우의 죽음을 슬퍼했다. 신애는 누워있는 그 상태로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죽어있는 자신을 두고 엄마가 등을 돌린 것 같이 느껴졌다. 애써 전한 진심, 고백이 여배우의 죽음에 묻혔다. 신애는 조용히 방으로 돌아와 베개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었다.






신애의 만화일기1






신애의 만화일기2






신애의 만화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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