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씽씽 Mar 07. 2022

백수가 되어, 집으로

패잔병

  신애는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성수동을 떠날 수는 없었다. 자취방은 2년 계약이었고, 1년이 남은 상태였다. 게다가 혼자는 외롭다고 서울로 부른 동생 다영도 함께 살고 있었다. 50만 원짜리 월세를 반반 부담하고 있던 터라, 혼자 본가로 내려가기는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새로운 직장을 구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웹툰 공모전을 노린답시고 개인 작업을 시작했다. 노트북을 들고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다. 거기서 제일 싼 '오늘의 커피'를 시키고, 하루 종일 기획서를 썼다. 기획서를 썼다 고치고, 시나리오를 썼다가 지우고, 하루 종일 상상의 나래를 혼자 펼치다가 집에 돌아왔다. 상상은 상상으로 그쳤다. 공모전에는 어떤 결과물도 보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나마 그런 날은 잘 지낸 것이었다.


  대부분의 나날은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데에 시간을 썼다. 방에 이불을 깔고, 그 위에 엎드려 과자를 먹으면서 노트북 화면만 뚫어져라 보았다. 고개가 아프면 노트북을 옆으로 뉘어놓고 보고, 다시 엎드려 보고, 하루 종일 보았다. 밤늦게 자고, 늦은 오후에 일어나는 걸 반복하면서 생활패턴이 망가졌다.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 새벽녘에 잠들다 보니 악몽에 시달렸다. 악마가 뾰족뾰족한 이빨을 쩌억 벌리고 신애를 집어삼키려 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신애는 꿈속에서 주기도문을 계속해서 외웠다. 악마가 사라질 때까지.


  가위눌리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쪽 발가락을 꼼질대며 힘들게 깨어났을 때, 시계를 보면 4시 44분이었다. 신애는 무서움에 떨었다. 어둠 속에서 형광등을 키러 가는 몇 발짝 안 되는 그 짧은 거리가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졌다. 후다닥 달려가 불을 키고 나면, 다시 악몽을 꿀까 봐 졸려도 잠에 들지 못했다. 그렇게 악몽에 시달리면서, 결국 밤에 잠을 자는 게 무서워졌다. 그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될 텐데. 반대로 동이 틀 무렵 잠을 자고, 저녁 즈음이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다영이 출근할 때 자고, 퇴근할 때 일어난 것이다.


  단식과 폭식을 반복하면서 살은 뒤룩뒤룩 쪘다. 하루는 방울토마토와 두부만 먹고 운동을 했고, 하루는 치킨에 컵라면에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한 번에 먹었다. 먹고 누워서 드라마 보고, 자고, 그게 다였던 생활. 찌는 게 당연했다.


  어느 날부턴가, 화장실에 붙어있는 거울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그 안의 자신과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드라마와 달리 현실은 마주 보기 괴로울 정도로 비참했다. 뚱뚱한 몸매와 씻지 않아 덥수룩한 머리칼, 구멍 난 잠옷을 걸쳐 입고, 퀭한 얼굴로 서있는 백수 한 명. 자괴감이 밀려오고, 자존감이 뚝뚝 떨어졌다. '나'를 사랑하는 건 어려웠지만, '나'를 싫어하는 건 아주 쉬웠다.


  신애는 밤이면 온갖 상상을 하며 혼자 괴로워했다.


  '약국으로 달려가 수면제를 사 올까, 그럼 약사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진 않을까, 아니 그보다 약국에서 수면제를 파나?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릴까?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도중에 후회한다는데, 떨어지다 혹시 살고 싶으면 어쩌지? 차에 치여 죽을까? 그럼 나를 친 운전자는 무슨 죄야? 너무 민폐야……. 내가 방에서 목매달고 죽으면 동생이 날 발견하겠지. 그럼 얼마나 트라우마로 남겠어. 그건 안 돼.'


  온갖 죽음에 대한 상상을 하면서도 죽을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그게 또 슬퍼 울었다.


  집에 내려가기를 망설이던 신애에게, 엄마는 말했다.


  “집에 내려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따뜻한 말을 듣고 신애는 또 엉엉 울었다. ‘살 길이 있었구나. 내게도 아직 살 길이 있었구나.’하고. 결국 신애는 집에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더 있다가는 스스로를 죽일 것만 같아서.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본가로 내러 가던 날, 신애는 버스 안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서울에 올라와 성공해서 내려가는 것이 아닌, 퇴사 후 백수가 되어 망가질 대로 망가져 도망치듯 탄 버스였다.


  ‘가족들은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어떻게 맞아줄까? 시골에 내려가서 돈을 벌 수는 있을까?’


  신애는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모두 다 뒤로 제쳐두고 잠을 청했다. 버스는 두 시간 반을 달렸다. 눈물자국이 난 채로 잠들어있는 신애를 싣고.


  버스정류장에서 딸을 기다리는 엄마, 미애가 보인다. ‘잘 내려왔다’, ‘반갑다’는 인사 대신 제일 먼저 한 말은,


  "뒷머리가 왜 이래. 까치집 지었네?"


  이었다. 신애의 뒷머리가 이리저리 헝클어져있었다.


  "됐어."


  신애는 까치집 진 머리를 어루만지는 미애의 손을 탁 하고 쳐냈다. 그런 건 신애에게 아무 상관이 없었다. 신애는 미애를 지나쳐 걸어갔다.


  '엄마는 내 마음도 모르고…….'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온 신애의 모습은 마치 패잔병(싸움에 진 군대의 병사 가운데 살아남은 병사)과 같았다. 신애는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았지만, 패했다. 이기지 못하고 너덜너덜해진 채로 집에 돌아온 것이다. 신애는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시골에서 계속 지낼 생각은 아니었다. 몇 달 정도, 잠시 쉬어간다 생각했다.






신애의 만화일기1







신애의 만화일기2






신애의 만화일기3






신애의 만화일기4


이전 05화 표류의 시작(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