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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씽씽 Aug 27. 2022

다시 서울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

  시골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낭만과는 거리가 먼 현실의 문제들이 있었다. 신애가 발을 붙이고 살아내지 않아서도 있겠지만. 이 마을의 청년들은 월급 50만 원에도 만족하며 삶을 살아가는 듯 보였지만, 신애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도 아니었고, 그녀의 친구들도 아니었다. 신애는 마음 한 켠이 항상 떳떳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특별한 삶을 사는 시골의 청년인 척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괜찮다고.


  웹툰 공모전을 다시 준비할까 생각했다. 계획에서야 이미 프로 작가였지만, 누군가 그랬지. 계획은 엎어져야 계획이라고. 신애는 계획을 잘 지켜내지 못하는 무른 사람이었다. 계획은 항상 계획으로 끝났고, 기획을 넘기지 못한 그녀의 기획서 쪼가리는 작품이 되지 못했다.


  새로운 계획을 짜기 좋은 12월이었다. 신애는 웹툰을 기획하다 돌연 듯 '모션그래픽'에 빠졌다. 영상디자인을 말하는 것인데, 그때 즈음받은 외주 일이 영상 일이었다. 그림을 그려 영상 속에서 움직이는 형태로 넣었는데, 같이 일한 노디가 말해주었다. 그게 '모션그래픽'이라고. 신애는 새로운 일에 한 번 꽂히면 이상하게 추진력이 생기는데, 그 겨울날이 그랬다.


  그녀는 모션그래픽을 배우러 다시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선포했다.


  어차피 내려올 때부터 1년만 있을 예정이었다. 신애는 그 길로 서울의 학원 두 곳을 알아보고 몇 백만 원 대의 학원비를 내며 학원 수업을 끊었다. 신림역에서 15분을 걸어가면 도착하는 주택가 빌라에 반지하 자취방도 구했다. 그녀는 처음 서울에 집을 얻었을 때처럼, 처음 직장을 구했을 때처럼 일사천리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서울을 또다시 거처로 삼았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 열정을 불태우는 일은 신애에게 잘 맞았다. 학교, 학원 따위의 장소들에서 인정 욕구가 강한 신애는 커리큘럼을 잘 따라왔다. 그리고 그만큼 즐거웠다. 그렇게 돈 천만 원 이상을 학원과 생활비에 소비했다. 그동안 모아둔 돈도 소진되어 동생과 엄마에게 손을 벌렸다. 하지만 꼭 성공해서 갚을 돈이었다.


  신애는 인생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도 했는데, 2층짜리 파리바게트 아침시간 아르바이트였다. 신애는 몰랐다. 그 일이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하기에는 나름 어려운 일이었다는 걸. 알 턱이 없었다. 28살 늦은 나이에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신애는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창작하는 일 외에 다른 일을 해본 건 처음이었다. 그녀의 행동은 상당히 굼뜨고 서툴렀다. 하루는 도넛을 판째로 엎었는데, 그 도넛 값은 고스란히 신애의 아르바이트비에서 차감되었다. 신애는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버리려던 그 도넛들을 주섬주섬 주워와 자취방에 가지고와 물로 씻어먹었다. 축축했지만 맛이 좋았다.


  하지만 그 정도 일은 별것 아닌 일이었다. 어쨌든 자기 돈으로 때우면 그만이었으니까. 아침에 빵 재료들이 박스채로 산더미처럼 배송되었다. 그것을 분류하고 체크하는 일이 신애의 몫으로 돌아왔다. 수십 가지 빵 이름들은 어떻게 외웠다 치더라도, 재료들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버벅거렸고, 느렸다. 같이 일하는 직원이 바쁜 와중에 신애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


  문을 열지 않은 가게 안에 혼잣말로 하는 욕이(하지만 누군가에게 들으라고 하는 욕이) 가득 메워졌다. 신애는 이미 민폐였다. 주문을 받는 일도 문제였다. 포스기도 아직 어색한데, 아줌마들이 일제히 들어와 각각 메뉴를 대충 이야기하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신애는 어버버 거리며 포스기를 눌러댔다. 하나가 아이스인지 따뜻한 것인지 헷갈렸지만.


  "아이스예요? 따뜻한 거예요?"

  "아, 아이스요..."


  옆에서 재촉하는 직원의 외침에 그냥 넘겨짚고 말을 해버렸다. 그러면 안 되었던 건데. 음료를 갖다 주자마자 아줌마 무리가 내려왔다. 다짜고짜 음료를 만든 직원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직원은 띠꺼운 표정으로 사과를 대충 했다. 그러자 아줌마들은 그녀의 태도를 더 물고 늘어졌다. 신애는 자기 잘못이라고 우물쭈물 대며 사과했지만, 아줌마들에겐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시 음료를 교환해드리고, 옆에 있던 직원은 욕을 하며 울었다. 신애는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 걸어갈 때, 얼음이 녹아 미지근해진 음료를 또 들고 와서 호로록 마셨다.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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