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지 못한 것에 대하여
회사에서는 '사수'로 들어올 건지 '신입'으로 들어올 건지 신애에게 선택하라고 했다. 신애는 이전 회사를 다닌 경력이 있었고, 그걸 경력으로 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애는 스물아홉의 나이에 다시 신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녀가 들어가면서 새로 만들어지는 편집디자인팀에서 그녀가 사수없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애는 그동안의 경력도, 공부한 것도 싸그리 무시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웹드라마 포스터 디자인부터 채용공고 디자인, 프로그램북, 연하장, 채널 배경화면,유튜브 썸네일, 홈페이지 제작 등 다양한 업무를 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썸네일과 포스터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신애는 '신입'으로 들어간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디자인이 너무 구렸기 때문이다. 일은 포스터 촬영만 제외하면 신애가 하기에 적합한 일이었다. (포스터 촬영은 사진작가 옆에 서서 계속 배우들에게 디렉션을 주어야했기 때문에, 많은 스탭들 사이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서고 해야하는 일이었다. 내향형인 신애는 굉장히 기가 빨렸다.)
10시에 출근해서 7시에 퇴근을 했다. 야근은 없었고, 일의 양도 적당했다. 아니, 신애의 입장에선 오히려 널널했다. 신애는 시간이 남을 때 일러스트나 디자인 공부를 했다. 디자인팀의 실장 민기가 신애의 사수를 맡았는데, 민기는 신애의 그런 성실한 점을 좋게 생각했다. 민기는 신애가 디자인한 작업물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보고 피드백을 해주었고, 신애가 그린 일러스트를 마음에 들어했다. 민기의 이쁨을 받는 게 느껴졌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신애는 팀을 잘 들어왔다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신애는 끊임없이 흔들렸다. 바로 옆자리, 신애가 하고싶었던 일을 하고있는 사람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눈앞에 자신이 원했던 팀이, 원했던 영상디자인 업무가 있었다. 자꾸 눈이 갔다. 동경하던 일을 하고있는 사람을 한 번 보고, 자신을 한 번 보았다. 자기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신애가 생각하기에 이렇다할 큰 일을 하는 게 아닌, 자질구레한 업무들을 처리한다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입에게 누가 큰 일을 맡기겠냐마는. 신애와 학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기 한 명이 영상디자인팀으로 들어왔다. 같이 공부했던 둘이 지금은 서로 다른 팀에서 일한다는 것이 신애를 더 자격지심 들게 만들었다.
계속해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신애의 마음을 민기도 알아차렸다. 민기는 신애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었다. 영상디자인팀으로 가거나, 편집디자인팀에 남아 이후에 팀장직을 맡거나. 신애에게는 둘 다 좋은 조건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신애는 편집디자인팀에 남기로 했다. 다른 무엇보다, 사수인 민기가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믿고 그냥 가기로 했다.
이로써 모든 고민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신애는 인사고과점수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회사에서 사수의 인정을 받고있으니, 회사를 다니는 게 좋았다. 그런데 왜일까?
'왜 자꾸 죽고싶은 생각이 들지? 왜 매일 밤 눈물이 날까?'
신애는 그녀의 반지하 자취방에서 매일 밤 울었다. 편히 잠에 들 수 없었다. 그녀가 살고있는 그 '방'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