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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씽씽 Sep 07. 2022

취직을 향하여, 탈출

도망에 이은 도망

  학원비로만 7백 이상을 썼다. 생활비까지 따지면 천 만원을 훌쩍 넘게 썼다.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처음에는 배우는 것 자체가 너무 즐겁고 좋았다. 대학 때로 돌아간 듯 했다. 배우고 싶은 것을 공부하는 즐거움. 함께 학원에 다니는 동기들.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칭찬을 받고 인정받는 시간들. 신애는 다시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학원에서 하는 수업을 잘 따라갔고, 과제를 성실히 냈으며, 결과물도 신애 마음에 썩 들었다.


  학원에 있다보니, 들어야할 수업이 하나 둘 늘어갔다. 취직하려면 2D영상디자인 기초반/전문반/심화반도 들어야하고, 일러스트도 배워야하고, 3D도 들어야하고, 포토샵 수업도 들어야 하고... 학원에서는 계속해서 커리큘럼을 추천했고, 욕심이 많은 신애와 몇몇 동기들은 모든 커리큘럼을 따라갔다. 알게 모르게 생기는 경쟁심, 저 사람보다 뒤떨어지지 않아야지, 그 속마음을 학원 원장님은 꿰뚫고 있었겠지. 그렇게 하다보니 사계절을 학원에서 살게 되었다.


  말 그대로 학원에서 사는 시간이었다. 자취방이 있는 신림에서 학원이 있는 강남까지 왔다갔다하는 시간을 빼면은, 아침부터 밤까지 학원에서 살았다. 특히 '포트폴리오반'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10평이 안 되는 공간에 족히 15명은 되는 인원이 모여 매일같이 작업을 했다. 취직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게 일이었다. 매일 아침 일찍부터 학원에 가서 청소하고, 작업하고, 점심으로 집에서 싸온 허접한 도시락을 먹고, 다시 작업을 하고, 저녁으로 또 그 도시락을 먹고, 밤까지 작업을 하고 10시에 학원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생활이 매일매일 반복되었고, 쉬는 날 없이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반복됐다. 쉬는 날도 정해져있었는데, 한 달에 한 번, 월차처럼 지급되었다.


  어느 날은, 역시나 돌아온 청소당번이었다.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학원에 가야했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웠다. 식은땀이 났다. 하지만 청소를 하러가지 않으면, 내 빈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채워야만 했다.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학원에 갔다. 힘겹게 청소를 마무리하고 자리에 엎어져있는데,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소중한 월차를 쓰고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위염이었다.


  신애와 동기들은 매일을 학원의 작은 방 안에 갇혀지냈다. 밖도 보이지 않는 폐쇄된 공간에서, 각자 '취직'이라는 부담감을 안고 지냈다. 동고동락하는 동기들, 서로를 도와주면서도 경쟁심이 있었다. 세상과 단절되어 취직 준비만 하다보니, 모두들 상당히 예민해졌고 특히 신애가 그랬다. 신애는 하루 빨리 이곳을 그저 탈출하고만 싶었다.


  드디어 가고싶은 회사에서 공고가 떴다. 그 당시 한창 웹드라마에 빠져있었던 신애는, 웹드라마 회사 영상디자인팀에 지원했다. 그곳에 지원하기 위해, 추석연휴도 반납하며 밤새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그리고 대망의 면접 당일이 되었다.


  "편집디자인팀으로 들어와줄 수 있어요?"


  면접관으로 나온 디자인팀 실장과 팀장은 신애에게 대뜸 편집디자이너로 일해줄 것을 요구했다. 함께 영상 포트폴리오를 보지도 않고 말이다. 신애는 면접장에 들어서자마자, 그런 제안을 받은 것이 몹시 당황스럽고 불쾌했다. 신애가 1년간 공부하고 열심히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지원한 팀은 편집디자인이 아니라 영상디자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애는 그 자리에서 '생각해 보겠다'는 말 외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학원을 다닌 후 처음으로 지원한 곳이었고, 처음으로 면접을 본 곳이었다. 학원 선생님과 동기들은 신애를 말렸다. 열심히 준비해놓고, 이건 아니라고. 다른 곳을 지원하라고. 그도 그럴 게 편집디자인은 영상디자인보다 평균적으로 연봉도 적었고, 앞으로를 생각했을 때 영상쪽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었다. 학원에 온 몇몇은 편집디자인을 전공하고 영상디자인을 배우러 온 거였다. 신애도 마찬가지로, 편집디자인 일은 이전에도 하던 일이었다. 1년 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었지만, 아무도 신애를 말리지 못했다.


  신애는 학원에서 도망치기 위해, 결국 이 황당한 제안을 받아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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