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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Oct 27. 2020

준비했는데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던 여행

서른이 되기 전에 떠난 내 생애 첫 해외여행 - Episode Ⅴ

“이거 한쿡 가면 비싸요~”


한국말 참 잘하신다. 카야토스트 사장님 말이다. 싱가포르에서 가봐야 할 곳 중 하나인 야쿤카야토스트에서 카야토스트로 하루를 시작했다. 다 먹고 이제 막 나가려는 우리에게 한국말로 영업을 하셨다. 얼마나 많은 한국 사람들이 왔으면 한글 메뉴에 한국말로 영업까지 하실까.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에 작은 카야잼 세트 하나 구입했다.


야쿤카야 토스트(Ya Kun Kaya Toast)


전날 밤 특별히 피곤한 일정은 없었지만 클럽에서 늦게까지 있는 바람에 오늘 오전은 통으로 날렸다.


“오늘이 마지막이네... 이제 뭐 해야 되냐?”


여행을 오기 전 계획은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코스대로 따라가자는 게 대전제이자 계획이었데, 대체적으로 잘 안 지켜졌다. 시간 계산을 잘못한 부분도 있고, 계획이 틀어지면서 우리의 의지가 무너지기도 했다. 마지막 날이 되니 왠지 의욕이 더 상실됐다. 가뜩이나 하루를 늦게 시작해버리니 무기력해져 버렸다. 일단은 무작정 걸으며 지도앱을 켰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볼만한 곳이 있으면 우선 거기서 시간을 좀 벌기로 했다.


“차아니타운 가깝네!”

“아... 여기까지와서 중국이야?”

“그럼 너가 찾아보던가.ㅡㅡ^”

“아니다, 그냥 가자~ㅋㅋ”


나도 하필 왜 차이나타운이 가까운 건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길바닥에 덩그러니 서서 방황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어차피 저녁 일정은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루프탑으로 정해져 있으니 어디서든 몇 시간만 잘 때우면 될 일이었다. 싱가포르의 차이나타운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차이나타운 하면 으레 빨간색이 떠오르는데 이곳 차이나타운은 파스텔톤의 건물들이 많았다. 거리도 깔끔했다. 과연 이곳이 차이나타운이 맞나 싶을 정도.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중국은 차이나타운 포인트(Chinatown Point) 쇼핑몰에 있었다. 불룩 튀어나와 축~ 처진 배를 당당하게 내놓고 있는 상인들, 못 알아듣는 거 뻔히 알면서도 중국어로 호객행위 하는 상인들. 암~ 이래야 중국이지. 쇼핑몰 한 바퀴를 돌아 아이쇼핑을 하고 나오니 어느덧 저녁이 다 되어 있었다. 우린 여행의 마지막 일정인 마리나 베이 샌즈로 이동했다.


싱가포르 차이나타운, 밤이 되니 알록달록 연등에 불이 들어왔다
가장 중국스러웠던 차이나타운 포인트 쇼핑몰


마리나 베이 샌즈를 찾은 가장 큰 목적은 인피니티 풀 때문이었다. 수영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워낙 유명했기에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하지만 호텔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루프탑 라운지 티켓 매표소에서야 알게 됐다. 생각해보면 호텔이지 수영장이 아니니 그게 당연했다.


“뭐 어떡해. 전망대라도 가야지.”

“그래, 최소 레이저 쇼는 볼 수 있겠네.”]


샌즈 스카이파크 전망대는 크루즈선 갑판 위에 있는 느낌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사방으로 펼쳐진 것이 바다가 아니라는 것. 하늘은 왠지 점프하면 닿을 수 있을 것만 같고, 공중을 떠다니는 배를 탄 것 같았다. 360도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마리나 베이의 야경은 인생야경이 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제 레이저쇼 하나보다.”

“오오~~~”


15분 정도 진행된 레이저쇼가 끝이 나고 서로의 표정에서 ‘별로네’라는 느낌을 읽을 수 있었다. 레이저쇼가 시시했던 것은 아니고 우리 장소의 문제였다. 파리 에펠탑 밑에서는 에펠탑이 안 보이듯 레이저쇼를 제대로 보려면 마리나 베이 샌즈에 있을 게 아니라 머라이언 파크나 마리나 베이 주변 공원에 있었어야 했다. 이런 멍충이들!


샌즈 스카이파크 전망대에서 바라본 야경, 저기 저 수영자을 갔었어야 하는데...(좌)


전망대 데크에 털썩 앉아 친구와 야경을 보며 첫 여행을 되돌아봤다. 첫 해외여행이랍시고 준비한다고는 했는데 막상 여행을 하면서 보니 제대로 준비한 게 없었다. 당장에 마리나 베이 인피니티 풀과, 레이저쇼만 놓고 봐도. 그러면서도 원래 여행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항상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준비가 미비해도 그때그때 찾아서 꾸역꾸역 뭐라도 하게 되는 것. 즐거움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더 컸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내게 즐거웠던 곳이라기보다는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되었다. 언젠가는 꼭! 다시 찾아야지. 그땐 무조건 마리나 베이 샌즈에서 최소 하룻밤은 보내고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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