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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Jan 28. 2021

우리 피카(FIKA) 할까?

내 생애 첫 유럽 - Episode Ⅰ

장작 13시간의 비행 끝에 스웨덴 예테보리에 도착했다. 스웨덴의 12월은 걱정만큼 춥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늦가을과 초겨울 정도랄까? 자정이 훌쩍 지난 시각, 거리는 깜깜했고 사람도 차도 거의 다니지 않았다. 아무도 살지 않는 도시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밀려오는 외로움에 서둘러 택시를 잡아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털썩 침대로 쓰러져 버렸다. 몰랐는데 처음 하는 장거리 비행에 긴장을 했었나 보다. 온기 가득한 방에 들어오니 사르르 몸이 녹으며 스르륵 긴장도 풀렸다. 곧 잠이 쏟아졌다. ‘아! 스웨덴에 왔구나!’라는 사실을 실감할 틈도 없이 그렇게 스웨덴에서의 첫밤을 맞이했다.


삐빅! 삐빅!

화장실 문틈 사이로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샤워기 물소리에 묻혀 샤워가 끝나고서야 알아차렸다. 평소 아침에 눈을 뜨면 이불과 한 몸 되어 뒹굴뒹굴 좀 해줘야 겨우 일어날 수 있는 전형적인 베짱이형 인간이거늘,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뜨는 것도 모자라 일어나자마자 샤워실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스웨덴 라이프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나를 움직인 듯했다. 한국에 있을 엄마가 봤다면 아마 ‘스웨덴은 해가 서쪽에서 뜬다니?“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침을 먹기 위해 호텔 카페테리아로 내려왔다. 앞으로 3주간 나의 아침과 저녁을 책임 쳐줄 ‘엄마‘ 같은 공간. 뷔페식으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아침식사로는 말라비틀어진 베이컨 구이, 어릴 적 도시락 반찬의 추억을 돋게 하는 소시지, 노란색 뭉게구름 같은 에그 스크램블, 그리고 노릇노릇 납작하게 눌린 팬케이크와 다양한 종류의 베이커리가 차려져 있었다. 다행히도 난 김치 없이 살 수 있는 서구형 한국인인지라 매일 아침, 저녁이 이 정도 퀄리티라면 한식 없이도 3주 정도는 뭐 거뜬하겠다 싶었다.

매일 먹은 아침식사 클라스

보통 아침은 든든한 한식보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서양식 브런치 스타일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스타일만 그랬나 보다. 먹다 보니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웬만한 한식으로 먹은 것만큼 든든하게 이것저것 많이 먹었다.

  

... 너무 많이 먹었네;;;”


올챙이처럼 볼록해진 배를 떠받들고 이만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향긋한 커피향이 내 발길을 붙잡았다. 금발의 노신사께서 커피 머신에서 커피를 뽑고 있었다.


맞다까먹을 뻔했네나도 커피 한잔해야지.”


스웨덴 출장이 잡힌 후 스웨덴에 대해 공부하면서 알게 된 스웨덴 문화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바로 ‘피카(FIKA)’. 스웨덴에서는 피카 없는 하루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내려온 스웨덴의 핵심 생활 문화다. 피카라는 단어는 스웨덴어로 커피를 의미하는 ‘카페(KAFFE)’의 두 음절이 서로 뒤바뀌어 생긴 말인데,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쁜 일과 중에도 커피와 함께 간식을 먹으며 가족, 친구, 동료들과 대화도 나누며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되게 거창한데 쉽게 말해 스웨덴식 티타임이다.

스웨덴 라이프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나도 이제 이 문화에 익숙해져야 할 터. 커피 한 잔을 뽑아 어른이 입맛인 내가 좋아하는 초코칩 쿠키를 챙겨 방으로 올라왔다. 커피도 있고, 간식도 있고, 하던 일을 잠시 멈춰 시간도 내었으니 이제 피카를 즐기기만 하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다. 바로 대화를 나눌 사람. 스웨덴 최초로 혼자서 즐기는 피카, ‘혼피카(’혼자 즐기는 피카’ 라고 내가 방금 지어봤다.^^;;)‘의 창시자가 되어볼까 하다가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8시간의 시차가 있으니 한국은 자정이 거의 다 되어가는 한밤중. 끼리끼리 논다고 친구들도 나처럼 야행성이다 보니 자정이면 한창 눈에 불을 켜고 있을 시간이었다.


띠리릭, 띠리릭

“여보세요?”

피카 할까?”

“뭐? 먼카?”

야이C, 촌스럽게형 지금 스웨덴이잖아피카 몰라피카?”

“피카츄?”

ㅡㅡ;; (...)”


그렇게 스웨덴 피카 문화에 대한 강의를 시작으로 피카를 즐겼다. 이후 매일 아침마다 하루를 시작하는 모닝 루틴으로 피카를 즐겼다. 하루 한 번, 하루 한 명,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안부도 건넬 겸. 물론 통화의 시작은 언제나 ‘피카 할까?’였다. 피카 전도사가 되어 한국에도 피카가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락하는 사람마다 피카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한 가지 희한한 건 한 번 연락했던 사람은 다신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씁쓸한 진실.


"여보세요~! 자니...? 우리 피카 할까?"

...........

"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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