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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Jan 29. 2021

꿈의 직장

내 생애 첫 유럽 - Episode Ⅱ

스웨덴에서의 첫 출근. 구글맵으로 미리 검색해둔 경로를 보며 따라갔다. 출근길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트램을 타고 2정거장 후 내려 큰길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건물. 그곳이 바로 3주간 내가 출퇴근할 곳이었다. 회사 주변으로 비슷한 건물들이 몇 동 더 보였다. 우리나라 디지털 단지나 벤처밸리처럼 여러 회사들이 모여 있는 산업단지였다. 우리나라 산업단지에 있는 건물들은 전체가 통유리창으로 된 최첨단 초고층 빌딩들인데 예테보리 산업단지의 건물들은 고풍스러운 박물관 같았다. 한 바퀴 휭~ 둘러보고 싶었지만 구경은 차차하기로 하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스웨덴의 흔한 산업단지 건물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제법 세련됐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복도를 환하게 비추는 등은 샹들리에로 달려있었다. 크~ 역시 유럽은 유럽이다. 각 층마다 회사들이 있었는데 내가 일할 회사는 1층에 있어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딩동! 요즘은 보기 드문 아날로그식 벨을 누르자 문이 열리며 직원 한 분이 나와 주셨다.


“어우! 어서 오세요! 잘 찾아오셨네요!”

안녕하세요!”


한국 분이 한 분 계신다고 들었는데 머나먼 지구 반대편에서 거의 하루 반나절 만에 한국말을 들으니 반가웠다. 직원분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져 사방을 훑기 시작했다. 여기는 회사인가? 카페인가? 아니면 가정집인가? 네모반듯한 파티션으로 딱딱 나뉘어 보기만 해도 딱딱해 보이는 분위기가 내가 아는 회사라는 곳의 사무실 분위기인데, 이곳은 마치 유럽풍 콘셉트로 인테리어를 해놓은 예쁜 카페 같았다. 혹은 영화에서 봤던 유럽의 가정집? 시기도 시기인지라 여기저기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달려 있어 더 그랬다.


“한국하고는 분위기 완전 다르죠? 근데 스웨덴이라고 다 이런 건 아니 구요. 큰 회사들은 한국하고 비슷해요.”

... 전 이게 더 좋은데요?^^”


사무실은 아직 텅 비어있었다. 다들 출근 전인 듯했다. 보통 9시에서 10시 사이에 출근을 한다고 한다. 엥? 이게 대체 무슨 말? 9시면 9시고, 10시면 10시지, 9시에서 10시 사이는 대체 몇 시란 말인가? 직원분께서 설명해 주시길 하루 6시간 근무를 기본으로 하되 출퇴근 시간과 업무시간 운용은 개인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단다. 그 말인즉슨, 3시간 일한 후 개인 사정으로 외출 후 돌아와 다시 3시간을 근무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6시간 근무는 법정 근무시간이지만 근무시간 운용 관련은 해당 회사의 내규로 다른 회사들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직원들은 점심 식사를 안 하거나 간단하게 때울 수 있는 것들로 일하면서 동시에 해결한다고 한다. 그러면 점심시간 1시간은 줄일 수 있으니까.(오! 개이득!) 9시에 출근했다 치면 3시에 퇴근할 수 있는 것이다.(오! 개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라이프지만 말로만 들어도 행복했다. 벌건 대낮에 퇴근이라니. ‘복지천국’,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이라는 수식어가 괜히 붙어 다니는 게 아니었다.


회사 구경을 마치고 자리를 안내받았다. 나를 위해 방 하나를 통째로 나만의 사무실로 내어주셨다. 자리도 배정받았으니 이제 업무 시작! 업무용 노트북, 업무에 필요한 장비들을 세팅했다. 하나둘씩 업무환경이 갖추어지는 사이, 하나둘씩 출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와 같은 스웨덴 인사말인 것 같았다. 오전 10시가 되었을 무렵이 되어서야 전 직원이 다 출근을 한 것 같았다. 한국인 직원분이 나를 찾아왔다.

3주 동안 내 자리

“여기 직원분들이랑 보스한테 인사 한번 하러 가실까요?”

그러죠~”


한국인 직원분 꽁무니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그러고는 사람들 앞에 서서 어색한 ‘굿모닝’과 ‘나이스 투 미 츄’를 건넸다. 다들 웃으며 반겨주었다. 직원들과의 인사를 마치고 이제 이 회사의 끝판왕, 보스를 만나러 향했다. 보스 방으로 가던 중에 마침 보스가 방에서 나와 복도에서 마주쳤다.


“저기 오시네요. 우리 보스에요.”

“아! 한국에서 오신 분이시군요! 환영합니다!”

안녕하세요만나서 반갑습니다.”


짧은 인사 후 여정에 불편함은 없었는지 등의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았다.


“혹시 불편하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우리 직원에게 말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보스와의 인사 겸 짧은 미팅을 끝내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어린아이 둘이 보스방에서 뛰쳐나왔다. 아니 회사에 웬 애들이? 눈이 휘둥그레져 쳐다보는 낯선 동양인이 신기한지 애들도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 저희 애들이에요. 애들아 인사하렴~ 한국에서 오신 손님이야.”

귀엽네요안녕반가워~”


아이들은 수줍은지 보스 뒤로 숨는 걸로 내 인사를 대신했다. 아무리 보스라지만 일터에 애들을 데려오다니. 이래도 되는 건가? 확실히 우리나라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자유분방한 스웨덴의 직장문화를 하나씩 알아가는 사이 어느덧 다가온 점심시간. 본래 점심은 각자 해결하곤 하는데 오늘은 특별히 내 환영회 겸,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와 연말 겸해서 다 같이 근처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물론 여전히 나를 수줍어하는 두 소녀도 함께. 아이들을 회사에 데려온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지 다른 직원들과는 장난도 치며 잘 어울렸다. 보스의 자녀들이 직원들과 웃고 떠드는 모습이라... 한국에선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식사를 마치고 보스는 집에 일이 있다며 아이들과 함께 퇴근을 했다. 아니, 저기요! 보스 아저씨! 이 회사 당신 거 아니에요? 이렇게 그냥 가버린다고? 이 상황 또한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듯 직원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하긴, 또 언짢으면 어쩔 건가? 보스가 간다는데.) 하지만 오늘 갓 출근한 나는 여전히 이 분위기에 쉽사리 녹아들기 힘들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오후 업무를 하고 있는데 어느덧 어두워진 창밖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낯선 직장문화에 충격 받고 적응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만큼 빨리 지나갔다. 그때 한국인 직원분께서 내 방으로 들어오셨다.


“혹시 언제쯤 퇴근하실 건가요?”

저는 원래 퇴근시간(저녁 6맞춰서 퇴근하려고요."


내 대답에 약간은 곤란해하는 직원분의 표정이 읽혀졌다. 혹시 다른 직원들은 뭐하고 있나 싶어 방을 나가보니 사무실 모습이 아침 출근했을 때의 모습과 똑같았다. 진즉에 다 퇴근 한 것이다. 이미 4시쯤 모두 퇴근했다고... 본인도 보통 그쯤 퇴근하는데 오늘은 나 때문에 남아 있었단다. 괜히 시간을 뺏은 것 같아 미안했다. 앞으로 3주간 계속 일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한 끝에, 나 때문에 계속 야근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라 했으니 스웨덴이니 스웨덴 법을 따라야지! 어차피 나도 하루 성과만 내면 몇 시간을 일하든 상관 없을 것 같았다. 여기 뭐 팀장님이 매의 눈으로 쏘아 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한국에서처럼 8시간을 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내일부터는 저도 퇴근 시간 맞출게요.”


대신 갑자기 혹시나 일을 못 마칠 수도 있으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회사 문 열고 닫는 법은 배워두기로 했다. 나도 이제부터는 4시 퇴근이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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