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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Feb 04. 2021

지금까지 이런 교회는 없었다

내 생애 첫 유럽 - Episode Ⅷ

치과에 가면 치과 냄새, 책방에 가면 책 냄새가 나듯 교회에도 교회 특유의 냄새가 있다. 뭔가 사람을 차분해지게 만드는 아로마 같은 향기. 그래서 교회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한다. 그래서 종종 교회에 갔다. 그렇다고 예배를 드린 것은 아니고, 예배가 없는 시각에 찾아가 그냥 지긋이 눈을 감고 앉아만 있었다. 그렇게 나만의 재충전 시간을 보내곤 했다.

스웨덴 사람들의 대부분은 개신교 교파 중 하나인 루터교다. 그렇다 보니 예테보리에도 곳곳에 큰 교회들이 많았다. 일반 상가 건물 옥상에 첨탑 하나 딸랑 올려놓고 그 위에 십자가만 꽂아둔 우리나라 동네 교회들과는 클래스가 완전히 달랐다. 대부분이 뾰족뾰족한 첨탑에 수직적인 느낌이 강한 고딕 양식이고, 그 외에도 네오고딕, 로마네스크, 고전주의 등 중세 유럽풍의 건축 양식들이었다. 제법 웅장하고 멋스러웠다.

하가 교회(Haga församling) / 성 요한 교회(S:t Johanneskyrkan) / 오스카 프레드릭 교회(Oscar Fredriks Kyrka)
바사 교회(Vasakyrkan) / 마스툭스 교회(Masthuggskyrkan) / 안네달 교회(Annedalskyrkan)
예테보리 대성당(Domkyrkan Göteborg) / 예테보리 독일교회(Tyska kyrkan)

이번에는 좀 특이한 교회를 찾아 나섰다. 평소 오다가다 지나쳤던 곳인데 고딕 양식이라 하기에는 너무 낮고, 작고, 첨탑도 십자가도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교회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또 너무 교회스러웠다. 근처에 있는 큰 교회의 분교 정도가 아닐까 예상했다. 어쨌든 교회이니 편안한 향을 품고 있을 터. 경건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열자마자 이상한 향기가, 아니 냄새가 강렬하게 코를 찔렀다. 바다 내음 한가득 품은 신선한 비린내가 코끝을 맴돌았다. 당황스러웠다. 교회에서 오늘 생선 바자회 같은 행사가 있는 건가 싶었다. 후각 어택으로 잠시 주춤했던 멘탈을 부여잡고 안을 들여다봤다. 이번엔 뒤통수 어택이다. 2연타 콤보를 맞으니 결국 정신이 혼미 해졌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구닥다리 표현일지 모르겠지만(이 책은 ‘라떼의 여행’이니까.^^;;) 영화 '식스센스' 이후 최고의 반전이었다. 중앙에는 제단, 그 앞으로 길쭉한 교회 의자들이 열 맞춰 놓여 있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제단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반대쪽 출입구가 있고 의자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생선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것 아닌가? 그제야 알게 된 이곳의 진짜 정체는 교회의 탈을 쓴 수산시장이었다. 그 이름도 생선교회(Feskekörka). 건물 생김새와 이름이 완전 찰떡이다. 아! 그제야 건물 옆모습에 숨어있었던 생선가시가 내 머릿속을 스쳤다. 특히나 밤이면 더 선명하게 나타나곤 했는데, 생선교회 바로 옆으로 흐르는 강을 건너 맞은편에서 생선교회 옆모습을 바라보면 강물에 반영이 비쳤다. 그 모습이 딱 뼈만 앙상하게 남은 생선가시 모양이었다.


생선교회(Feskekörka)의 낮과 밤
밤이면 더 잘 드러나는 생선가시

예수님 만나러 왔다가 생선과 해산물만 실컷 보고 갈 판이었다. 그냥 나갈까 하다가 이왕 들어온 거 기도는 마음으로 드리기로 하고 시장 구경이나 한번 하고 가기로 했다. 우리나라 노량진 수산시장에 비하면 규모는 작았지만 생선들만큼은 작지 않았다. 골격이 큰 북유럽 사람들을 닮았는지 생선들도 크기가 기본적으로 컸다. 제법 발라 먹을 살이 많아 보였다. 대부분 당일 갓 잡은 생선들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촉촉한 살덩이들이 신선해 보였다. 다양한 생선들뿐만 아니라 새우, 가재와 같은 갑각류를 비롯해 굴과 같은 패류도 있었다. 규모는 작아도 있을 건 다 있었다. 보통 아무리 봐도 살 것 같지 않은 손님이 오면 그냥 무시하거나 불친절할 수도 있는데 생선교회의 가게 사장님들은 모두 친절했다. 기웃거리며 소심하게 사진을 찍고 있으면 가까이 와서 제대로 잘 찍어달라고 오히려 요청을 했다. 물론 그러면서 슬쩍 구매를 부추기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수산시장처럼 과하게 붙잡으며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다.

들어온 출입구의 반대편 쪽 출입구 2층에는 식당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식당에서 내보이는 메뉴들이 있지만 아래 가게에서 사 온 재료를 주면 즉석으로 요리도 해준단다. 그 말을 듣고는 내려가서 싱싱한 놈으로 한 놈 골라볼까 했지만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좌절했다. 미친 북유럽 물가라는 말을 실감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나마 여기가 시장이라 싼 편이라는 것. 아니 그럼 일반 마트들은 얼마나 더 비싸다는 건지. 갑자기 시장에 장 보러 온 스웨덴 사람들이 달리 보였다. 내 눈엔 다 부르주아다.

생선교회 내부, 우리나라 노량진 수산시장과 비교하면 많이 조촐한 편
싱싱 통통한 생선들
조개류, 갑각류도 있음

가게 사장님들 덕분에 따듯한 온기를, 미친 물가에 차가운 한기를, 온탕과 냉탕을 드나들었던 시장 구경을 마치고 이만 밖으로 나왔다. 그 사이 기온이 떨어졌는지 유난히도 춥게 느껴졌다. 기분 탓이겠지? 괜히 가격표는 봐가지고...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교회로 예수님이나 뵈러 갈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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