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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Oct 28. 2020

타워 원정대

왕초보여행자 세 머스마들의 우정여행 - Episode Ⅲ

날씨가 갰다. 흐리고 비 온 뒤라 그런지 여름인데도 하늘이 높아 보였다. 높은데 올라가 내려다보기 딱 좋은 날씨였다. 그런 날씨와는 반대로 우리들의 마음은 흐림이었다. 비도 올락 말락, 자칫 더 나빠지면 천둥번개까지 칠 것 같았다.


"도쿄에 왔으니까 도쿄 타워는 가봐야 하지 않을까?"

"난 도쿄 타워 가본 적 있어서 이번엔 도쿄 도청사에 가보고 싶은데..."

"난 롯폰기 힐즈 모리 타워가 좋아 보이던데..."


문제는 ‘어디를 갈 것인가?’였다. 일단 날씨가 좋으니 도쿄 시티뷰를 보러 가자는 데까지는 마음이 통했다. 야경은 도쿄 스카이 트리에서 보자는데 이견이 없었지만 문제는 주경, 낮의 풍경을 어디서 볼 것인가였다. 다수결로도 결정할 수도 없게 의견이 완전히 갈렸다. 그렇다고 여행 와서 언제까지 의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말없이 적막해진 이 상황에도 1분 1초, 시간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이럴 때 세상 가장 편하고 공평한 방법은 역시 가위, 바위, 보가 아닐까? 어떻게든 이 갈등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가위, 바위, 보를 제안하려고 하는 찰나

   

"그럼 우리, 그냥 다 가자!"

"전부 다그게 되나?"

"대신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음... 빡세긴 할 것 같은데...!"


갑작스러운 S형의 제안이 과연 시간 상 가능할까 싶었지만 그렇게만 된다면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안 하고 지체할 수는 없으니 일단 그렇게 하기로 극적 타결! 탕! 탕! 탕! 이렇게 해서 급 ‘타워 원정대‘를 결성했다. 우리의 루트는 숙소 기준으로 가까운 곳부터, 도쿄 도청사 -> 롯폰기 힐즈 모리 타워 -> 도쿄 타워 -> 도쿄 스카이트리로. 야경을 보기로 한 스카이트리에 해질녁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혹 일정이 지체되어 한곳이라도 못 가게 되는 날에는 서로 기분이 상할 수도 있으니 그런 일이 없도록, 반드시 다 간다는 비장한 각오로 출발했다.




도쿄 도청사(東京都庁, Tokyo Metropolitan Government Building)

세 명 이상이 모여 여행을 다녔을 때 느꼈던 점 중 하나는 다수결의 원칙이 항상 공평한 방법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가 다수 중 하나가 되면 기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패자가 마음에 걸려 결과적으로 다수의 승자나 소수의 패자나 서로 편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럴 땐 편 가르지 않는 것이 답! 그런 면에서 이번 '타워 원정대' 결성은 제법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덕분에 언제 냉전 모드였냐는 듯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룰루랄라~, 신주쿠역에 도착했다. 도쿄 최대의 번화가답게 많은 사람들과 고층 빌딩 숲 사이를 헤치며 걷기를 10분, 첫 번째 기점인 도쿄 도청사에 도착했다. 나란히 솟은 두 기둥이 마치 성당 같기도 했다. 뾰족한 첨탑에 십자가만 있으면 완성! 통유리로 된 고딕 양식의 초고층 성당이랄까?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이는 빌딩 숲 사이에서도 단연 1등이었다.


저기 저 꼭대기에 가는 건가?”

“아니, 총 48층인데 45층에 무료 전망대가 있어.”

“45층, 그래도 높네!”


무시무시한 상상을 해봤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인 섬뜩한 상상. S형에게는 미안하지만 상황이 그렇다면 도쿄 도청사는 그냥 패스다. 그냥 나 혼자 해본 공상인데 생각하고 보니 설마가 진짜 될까 조마조마했다. 쫄깃해진 심장을 숨긴 채 조용히 S형과 K의 뒤를 졸졸 따라 들어갔다. 휴~ 다행히 나 혼자 한 공상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됐다. 그렇지~ 내가 신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뭐. 우리는 45층까지 55초 만에 올라간다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슝~~~

전망대에 도착해서는 한동안 말없이 각자의 사진 찍기에 바빴다. 도쿄 타워를 원했던 나도, 모리 타워를 원했던 K도, 안 왔으면 어쩔 뻔! 네모난 통유리창에 담긴 도쿄 시티뷰와 스카이라인이 액자 안에 담긴 그림같이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었다. 작품 감상 중에 뒤통수가 따가워 뒤를 돌아보니 S형이 아빠 미소를 띠며 나와 K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때? 괜찮지?^^ㅎㅎㅎ”


도쿄 도청사



롯폰기 힐즈 모리 타워(六本木ヒルズ森タワー, Roppongi Hills Mori Tower)

두 번째로 올라갈 타워인 모리타워 앞에 도착은 했는데 들어갈지 말지 고민이 시작됐다. 해가 지기 전까지 도쿄 스카이트리에 도착하려면 시간 분배를 잘 했어야 했는데 별 기대 없이 갔던 도쿄 도청사에서 예상보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시간 상 모리 타워와 도쿄 타워를 다 보려면 정말 들어갔다가 한 바퀴 슥~ 둘러보고 나와야만 했다.


그래도 왔으니까 그렇게라도 둘러보고 갈까?”

“근데 여긴 입장료가 있어서 잠깐 보고 가기엔 좀 아까운데...”

“흠...”


모리 타워를 가고 싶어 했던 K의 눈치를 슬쩍 보고선 잠깐이라도 둘러볼 것을 제안했는데 의외로 K는 가성비 걱정을 먼저 했다. S형이야 이미 본인이 원하는 곳을 다녀와서인지 그저 한숨만. 숙소에서 팽팽하게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할 때는 언제고 막상 이런 상황이 닥치니 배려 겸 눈치 겸 내 것을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바로 앞까지 왔는데 여기 보고 스카이트리로 넘어가자 그냥.”

“아니야~ 여긴 됐고 도쿄 왔으니까 도쿄 타워 가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엥? 너는 또 갑자기 왜? K도 내 마음과 같았던 건지 이번에는 서로 양보하겠다고 나섰다. S형은 여전히 중립 상태. 또다시 숙소에서의 악몽 같은 시간이 재현되는 것인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예감이 현실로 실현되기 직전, K가 S형에게 직구를 던졌다.


“형, 어떻게 할까? 우린 둘 다 이제 어디든 상관없어.”

“(당황) 응? 음... 그러면... 도쿄 타워 가자! 도쿄 왔잖아.^^;;”


땅!!! 안타다. 제대로 받아쳤다. S형마저 선택을 못했으면 또다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게 됐을 수도 있었을 텐데. 모리 타워는 패스하기로 결정했으니 얼른 도쿄 타워로 방향을 틀었다.


아쉬우니까 모리 타워 거미 녀석이랑 한컷!
롯폰기 힐즈 모리 타워



도쿄 타워(東京タワー, Tokyo Tower)

우리 타워 원정대의 최대 적은 시간이라 생각했다. 주어진 짧은 시간에 3곳을 돌아다녀야 했으니까. 그런데 돌아다니면서 보니 진짜 적은 내부에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 그놈은 바로 서로의 성향차이. 타워 원정대가 결성된 아침부터 도쿄 타워로 향하는 지금까지 사소한 것 하나라도 결정이 필요할 때면 단 한 번도 무엇 하나 속전속결로 결정된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모리 타워에서 도쿄 타워로 가는 방법이 우리를 괴롭혔다. 지도앱이 틀리지 않다면 대중교통과 뚜벅이의 차이가 10분이 채 안되었다.

 

걸어갈 만한데 그냥 걸어갈까산책하는 셈 치면서 도쿄 구경도 하고 좋을 거 같은데.”

“근데 아직 해가 있어서 좀 덥지 않을까?”

“아니면 택시 타면 금방일 텐데.”


역시나 1:1:1 상황. 나, K, L형, 이렇게 셋 조합으로 여행이 처음이긴 하지만 아마 이렇게 마음 안 맞는 조합도 없지 않을까 싶다. L형이야 이번에 알게 된 사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K와는 10년 지기인데. 이래서 사람은 끝까지 알 수 없다고 하나보다. 결국 또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원래 걷는 걸 좋아하는 나, 더운 걸 싫어하는 K, 슬슬 체력적인 한계에 다가온 듯한 L형. 과연 이 대결의 승자는...?

우리는 일단 뚜벅이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내가 승자? 아니다. ‘일단‘이 키포인트.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고민만 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가장 피해야 할 상황이라는 걸 경험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단은 도쿄 타워 쪽으로 걸어가면서 계속 고민하고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가다가 갈만하면 계속 걸어서 가면 되고, 안 되겠으면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타고. 그런데 그렇게 걷기 시작해서 결국에는 그냥 걸어서 도쿄 타워까지 도착했다. 얼떨결에 나의 승리!^^V 이런 거 이겨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이번 승리로 한 가지 배웠다. 고민하고 생각할 시간에 일단 뭐라도 해야 된다는 거. 그러면 알아서 답이 정해지기도 한다.

기대가 컸던 도쿄 타워는 솔직히 조금 실망스러웠다. 높이만 놓고 보면 도쿄 타워 특별 전망대가 250m, 도쿄 도청사 전망대가 202m. 약 50m 정도 차이가 났지만 밖으로 보이는 뷰 상으로는 체감 상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도쿄 도청사에서는 빽빽한 도시의 모습과 쭉쭉 뻗은 고층 빌딩 숲의 향연이었다면, 도쿄 타워에서는 고층 빌딩은 물론이거니와 푸르른 공원과 그 안에 있는 사찰, 그리고 레인보우 브릿지와 멀리 오다이바까지 좀 더 다양한 모습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도쿄 도청사에서 이미 시티뷰를 볼 만큼 보고 와서인지 크게 감흥이 오지는 않았다.

도쿄 타워는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보다 멀리서 도쿄 타워를 바라보는 것이 더 아름다운 타워였다. 파리 에펠탑을 모방해 만든 것이라 하더니만 이런 것까지 에펠탑을 닮았다. 하...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모리 타워 가는 거였는데.


“K! 정말 미안~ㅠㅜ

“ㅋㅋㅋ아냐~ 괜찮아~ 뭐 이럴 줄 알았겠어.”


도쿄 타워


도쿄 스카이트리(東京スカイツリー, Tokyo SkyTree)

세계 2위의 위엄은 앞서 보았던 3개의 마천루들과는 격이 달랐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하늘나무, 이름 그대로 하늘에서 바라보면 땅에 있는 나무 한 그루처럼 보일 것 같았다. 도쿄 스카이트리라는 이름은 공모전으로 지어졌는데 유력한 후보군으로‘오에도 타워’, ‘사쿠라 타워‘ 등의 이름이 있었다. 한데 이미 다른 데서 상표권을 땄거나 사용 중인 이름이라 사용할 수 없었다. 현재의 이름은 일본 도부 그룹의 민간 전철 회사인 도부 철도와 도부 타워 스카이트리 주식회사가 등록한 고유 상표명이다. 우리나라 L사의 상징인 L 타워처럼 쉽게 말해 도부 그룹의 상징인 도부 타워인 셈이다.


안전하겠지?”

“ㅋㅋ믿고 가는 거지~”

“내진 설계되어 있다니까 괜찮을 거야.”


높은데 얄팍하니 바람 좀 불면 부러질 것만 같이 불안불안했다. 제발 우리가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아무 일 없기를 기도하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건물 최고 높이는 지상 634m. 본래 610.58m로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설계가 변경되면서 지금의 높이로 완공되었다. 도쿄 부근의 옛 국명인 무사시노쿠니와 발음을 비슷하게 하기 위해 변경되었다고 하는데 일본어 문외한인 나로서는 무사니노쿠니와 634m의 상관관계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전파탑으로서는 세계 1위, 건축물로서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 828m)를 이어 세계 2위. 사실 숫자로는 아무리 들어도 체감이 잘 안된다. 직접 봐야 알지. 전망대 높이는 지상 350m.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50초 만에 도착했다.


야경!”

“야야, 아직 보지 말고 하나 더 올라가서 봐~”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야경에 홀린 듯 따라가는 나와 K를 L형이 멱살 잡듯 끌어 진정시켰다. 우린 엘리베이터를 한 번 더 타고 전망대로서 최고 높이인 450m에 도착했다.


“이야~ 역시 전망대는 야경이 진리네!”


하루 종일 보고 다닌 시티뷰지만 밤에 보는 것과 낮에 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낮에는 네모반듯한 건물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게 차갑고 삭막하게 느껴졌지만, 밤에는 온갖 불빛들이 도시를 수놓으니 따듯하고 포근했다. 와인 한 잔 마시며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기분. 이래서 시작하는 연인들의 최애 데이트 코스가 남산인가 보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는 웬 두 아재가;;; 참 든든해서 기대고 싶네.


도쿄 스카이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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