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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Mar 29. 2021

1시간 만에 끝나버린 니스 여행

이탈리아 전국일주(drop by 프랑스) - Episode Ⅴ

나에게는 인생 해변이 있다. 미국 동부의 마이애미 비치(Miami Beach)와 프랑스 니스(Nice) 해변이다. 근데 두 군데 모두 한 번도 가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인생 해변이 된 건 TV나 영화를 통해서만 봤음에도 그만큼 좋았기 때문. 우리나라 해수욕장들처럼 사람 반 물 반에 미친 듯이 물에 뛰어들어 노는 게 아니라 모래사장이나 몽돌(니스는 몽돌해변이다.)에 누워 한가롭게 태닝이나 낮잠을 즐기는 해변의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지금은 비록 마음속 인생 해변이지만 언젠가는 현실 인생 해변이 될 날을 그리며 죽기 전에 꼭 가볼 곳으로 꼼쳐두었다.(난 아마도 영생할 것 같다. 죽기 전에 가야 될 곳들이 너무 많아서.) 내게는 그런 의미가 있는 니스에 간다고 하니 모나코를 떠나는 게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만큼 설레었다는 말이다.) 니스 해변을 걷는 건 당연한 일이고, 전망대(Great Panorama Nice)도 있다 하니 올라가 볼 참이었다. 아, 마세나 광장(Place Masséna)도 빼놓을 수 없다. 이토록 야심 차게 니스에서 할 일들을 정리하며 한껏 들뜬 채 니스에 도착했는데,


“여러분, 애즈 마을에서 일정이 좀 지체되는 바람에 아쉽지만 니스에서는 1시간 후에 출발해야 합니다. 자유롭되 빠르고, 알차게 구경하시고 다시 이곳으로 1시간 후에 모여주세요!”


왓 더... 욕이 절로 나왔다. 아니 뭐 여행하다 보면 시간이 좀 늦어질 수도 있지 뭘 그런 거 가지고 욕까지 나올 일이냐며, 오히려 이런 내게 ‘성격 참 더럽네~‘라며 맹비난을 퍼부을지 모르겠지만 다 나름의 사정이 있다. 애즈 마을에서의 일정이 내게는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나 쇼핑이었다. 피렌체에 이어 또 한 번 쇼핑이 나의 여행을 가로막은 것이었다.

사실 애즈에서의 쇼핑 일정은 피렌체 때에 비하면 아주 싫지는 않았다. 닥치고 구경하고, 구매하는 쇼핑은 아니었다. 남프랑스에 속해 있는 애즈(Èze)는 향수의 마을로 유명한데, 특히 세계 3대 향수 브랜드 중 하나인 프라고나르(Fragonard) 향수 제조소가 바로 애즈에 있었다. 향수 판매는 물론 향수 박물관과 공장(Parfumerie)을 둘러보는 투어도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박물관과 공장 투어 겸 쇼핑을 한 것이었다.(물론 실상은 쇼핑을 위한 투어였으리라.) 딱 투어까지만 괜찮았다. 투어가 끝나고는 본격적으로 장사가 시작됐다. 박물관은 순식간에 시장으로 변했다. 향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시던 투어 가이드도 한순간에 영업사원으로 변신했다. 분명 투어를 할 때와 같은 미소인데 어쩜 저렇게 음흉해 보일 수 있는지.(내 색안경 때문일지도 모른다.)

향수에 대한 사람들의 구매욕은 피렌체 가죽 시장 때보다 훨씬 더 열렬했다. 세계 3대 향수 중 하나라 하니 어느 정도 이해는 됐지만 문제는 갈팡질팡 선택장애에 빠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 하나 사는 것보다 두 개 사는 게 싸고, 근데 막상 두 개 사자니 쓸데는 없을 것 같고. 선택장애로 인한 버퍼링으로 쇼핑을 마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게 애즈에서 일정이 지체된 이유다.


1시간 동안 니스에서 뭘 하면 후회가 없을까? 뭘 해도 아쉽고 후회될 게 뻔했다. 순간 답 없는 문제로 고민 할바에야 아무거나라도 일단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다 포기하고 니스 산책이나 한 바퀴나 돌기로 했다. 아무 골목으로나 들어가 동네 구경 좀 하다가 다시 해변 쪽으로 나와서 영국인의 산책로, 프로므나드 데 장글레(Prom. des Anglais)를 걷으며 니스 해변과 바다를 보는 것으로 마무리. 욕심을 버리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핸드폰 메모장의 ‘니스에서 할 것들‘이라는 제목의 메모는 '최근 삭제된 항목' 폴더로 옮겼다. 그리고 다시 찾을 이탈리아 리스트처럼 다시 찾을 프랑스 리스트를 새로 만들었다. 그때는 꼭 이번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모두 하고야 말 테다!

니스 거리 어딘가
시간도 애매한데 배라도 채우고 보자고 먹은 정체모를 음식(그냥 아무거나 시킴^^;;), 먹는 게 남는 거다! 때로는 여행이 맛으로 기억되니도 하니까. 니스의 맛!
한적했던 니스 해변과 
마세나 광장(Place Masséna)은 공사 중ㅠㅜ, 1793년 니스의 프랑스 합병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니스 기념비(Monument du Centen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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