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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미녀 주의보

이탈리아 전국일주 - Episode Ⅶ

by 트래볼러

밀라노 대성당을 보러 가는 길. 가는 내내 가이드님이 한 가지 주의사항을 반복적으로 어필하며 신신당부를 했다.


“여성분들은 잘 생긴 남자 조심하시고, 남성분들은 예쁜 여자 조심하세요! 꼭이요! 여러분 좋아서 다가오는 거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의 핸드폰, 가방, 그 안에든 모든 것들이 좋아서 오는 겁니다.”


유럽 하면 광장, 성당, 맥주 등 바늘과 실처럼 붙어 다니는 것들이 몇몇 있는데 그중 제발 붙어 다니지 말았으면 싶은 것 하나는 바로 소매치기다. 장기 유럽여행을 갔던 사람이라면 소매치기 썰 하나쯤은 훈장처럼 가지고 있을 만큼 (MSG 살짝 쳐서) 유럽은 소매치기의 나라다. 왜 유명한 일화도 하나 있지 않은가?


“헤이! 잇츠 마이 백(Bag)!”

“헤이! 잇츠 마이 잡(Job)”


인터넷에 유럽 여행에서 주의해야 할 것을 검색해 봐도 단연 소매치기가 1등. 소매치기 때문에 유럽은 패키지로만 가는 사람들도 있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난 아직까지 장기로 유럽을 다녀 본 적이 없어 소매치기를 당해 본 적은 없지만 들어본 썰은 수십 개다. 그 썰들이 모두 찐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소매치기의 도시라는 오명이 있긴 하지만 밀라노는 사실 패션의 도시다. 매년 두 번 뉴욕, 런던, 파리 패션 위크와 함께 ‘4대 패션 위크’로 불리는 밀라노 패션 위크(Settimana della moda)가 열린다. 그래서인지 두오모 광장(Piazza Duomo)에는 패피들이 많았다. 안 그래도 잘 생기고 예쁜데 옷까지 잘 입으니 (절대! 외모지상주의는 아닙니다만) 매력이 뿜뿜 터졌다. 정말 순진하게 있다가는 나도 모르게 핸드폰에 내 영혼까지 담아 건네줄지도 모르겠다는 아찔한 생각이 엄습했다. 안되지 안돼! 그러면 안 되지! 밀라노에 있는 동안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녀야지!


밀라노 대성당을 한 프레임에 담기 위해 두오모 광장의 한가운데로 이동했다. 적당한 지점에 도착해 사진을 찍으려는데 내 어깨에 닿은 온기가 느껴졌다. 앗! 설마 이것은...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어찌해야 하나 고민할 틈도 없이 고개를 휙 돌리며 반사적으로 핸드폰과 가방을 움켜쥐었다. 나이스 캐치! 당하지 않았다.


“오우! 미안해요~ 그냥 사진 부탁하려고 그런 건데...”

“아... 사진이요?”


친구로 보이는 여자 셋(이하 세 언니)이었다. 국적은 알 수 없음. 이탈리아 여자인지 아닌지가 중요했다. 아니다. 꼭 이탈리아 사람만 소매치기라는 법이 있나? 대부분이 서양 사람들인 이곳에서 가장 튀는 건 동양 사람이니 이탈리아에 여행 온 다른 유럽 혹은 미주권 사람이 소매치기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찰나의 시간 동안 혼자 온갖 소설을 쓰고 있는 그때 다시 말을 걸어왔다.


“저기, 사진 찍어주실 수 있으세요?”

“아! 찍어준다는 게 아니고, 찍어 달라고요!? 되죠~ 찍어 드릴게요!”


그랬다. 난 내 핸드폰을 노린(당시 최신 사과폰이었다.) 접근이라 생각해 계속 날 찍어주겠다는 줄 알았다. 순간 부끄러움이 하늘을 찔렀지만 그냥 영어를 잘못 알아 들어서 그런 척하고 핸드폰을 넘겨받았다.

찰칵! 찰칵!

밀라노 대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어주고는 핸드폰을 넘겼다.


“땡큐 베리 머치!^^ 혼자 왔어요? 제가 하나 찍어 줄까요?”


순간 슈얼~!이라고 대답할 뻔했다. 겨우겨우 무너진 경계심을 바로 세웠다. 아직 긴장을 놓기는 일렀다. 이게 수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본래 누군가에게 사진 부탁을 할 때는 먼저 찍어주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니까. 훗! 내가 좀 순진한 편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풋내기 수법에는 안 당하지.


“괜찮아요~^^(거짓 미소) 저기 친구들 있어요.(저기 아무도 없었다;;;)

“아, 오케이! 그럼 즐거운 여행 하세요~ 바이 바이~”


세 언니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보니 내가 너무 오버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거늘. 잘 생긴 남자, 예쁜 여자라고 다 소매치기겠는가!? 그러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다 소매치기 게!? 이탈리아에 미남미녀가 얼마나 많은데. 특히나 밀라노에서는. 동네 골목만 돌아다녀도 마주치는 게 조인성이고 김태희다. 찍어 준다고 할 때 넙죽 받아먹을걸.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평소의 나였다면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넷이서 한 장 찍자고도했을 텐데. 본디 자유로운 영혼인 내가 패키지여행 10일 차에 어느새 가이드님 말 잘 듣는 모범 패키지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그 덕에 좋은 추억거리 하나 날렸다. 언젠가 밀라노를 다시 찾게 된다면 이번에 날린 추억, 그때 만들어 보련다. 그땐 내가 먼저 다가가야지. 동양인이 다가가는 건 의심하지 않을 거다. 무엇보다 난 미남이 아니니까.^^;;

밀라노의 상징이자 밀라노의 랜드마크, 밀라노 대성당(Duomo di Mil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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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 광장에서 바라본 밀라노 대성당과 성당 뒤에서 바라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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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 광장(Piazza Duomo)과 비토리오 에메누엘레 2세의 동상(Statua di Vittorio Emanuele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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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명품거리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 II), 황소의 중요부위를 뒤꿈치로 밟고 3바귀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뭐라나
유럽의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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