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눈이 부시다

환갑 엄마와 다 큰 두 아들의 추석 특선 가족여행 - Episode Ⅰ

by 트래볼러

아름다운 것을 봤을 때,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살면서 지금까지 정말 아름다워서 눈이 부셨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단지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었을 뿐. 실제로는 아름다운 걸 보면 동공이 커지면서 덩달아 눈도 커지지 않나? 하지만 왓 프라깨우(Wat Phra Kaew)는 정말로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여기서 눈이 부시게는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한 ’눈이 부시게‘ 가 아니다. 말 그대로 정말 눈이 부셨다.

왓 프라깨우는 태국의 현 왕조인 짜끄리 왕조의 창시자이자 수도를 지금의 방콕으로 옮긴 라마 1세가 방콕 왕궁(Grand Palace)과 함께 지은 왕실 전용 사원이다. 크게 5개의 건축물로 구성이 되어있다. 매표소를 통과하자마자 왓 프라깨우의 상징과도 같은 황금색 불탑, 프라씨 랏따나 쩨디(Phra Si Ratana Chedi)와 프라 몬돕(Phra Mondop)이 가장 먼저 우리를 환영했다. 왓 프라깨우를 검색하면 항상 메인을 장식하는 사진 속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와아아아~~~”


엄마만 없었다면 아마 욕이 먼저 나왔을 거다. 고운 우리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했고, 비현실적이었다. 관람객들은 계속해서 밀려들어오는데 들어온 사람들이 깊이 들어가지 않고 너도나도 사진부터 찍으니 입구 주변은 순식간에 퇴근시간 지하철 9호선 못지않게 복잡해졌다. 그런 복잡함 속에서도 시선이 쏠리는 것은 황금색 불탑(이름이 어려우니 그냥 불탑이라 하겠다.) 이었다. 꼭대기에서 중간부까지는 아이스크림콘을 거꾸로 박아놓은 듯했다. 중간부에서 아래까지는 거대한 종 같았다. 전체적으로 봤을 땐 위로 갈수록 좁아지면서 끝이 뾰족한 게 왠지 우주와 교신하는 전파탑 같기도 했다. 전형적인 스리랑카 양식이라고 한다. 전면이 금으로 되어있어 햇빛이 비치면 단연 눈이 부셨다.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잠시 눈앞이 하얗게 될 정도.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금덩이인 줄 알았던 탑은 사실 금이 아닌 금색 옷을 입고 있는 것이었다. 꼭대기에 있는 구슬만 순금이고 나머지는 모두 도금이라고. 하긴 부처님께서 그렇게 욕심이 많으실 리 없지. 불탑 내부도 소박하게 부처님 가슴뼈를 모시고 있단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는 광경
IMG_5351_보정.jpg
IMG_5372_보정.jpg
여기가 포토존, 사와디 캅~~~

불탑 바로 옆, 기둥이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케 하는 프라 몬돕은 외벽에 모자이크 장식이 있어 멀리서 바라봤을 땐 불탑만큼 눈이 부시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이것도 온통 금(도금) 이었다. 장식 하나하나의 디테일이 너무나 정교해서 놀라웠다. 왕실 도서관으로 불교 성전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철문으로 굳게 닫힌 입구를 지키고 있는 두 사신(?)과 부처님 얼굴을 하고 있는 머리 다섯 달린 뱀에게서 다가서면 안 될 것 같은 위압감이 느껴졌다.

프라 몬돕
IMG_5400_보정.jpg
IMG_5404_보정.jpg
IMG_5403_보정.JPG
프라 몬돕을 지키는 사신과 부처님 머리 뱀?


곳곳이 온통 금투성인 것과는 달리 왓 프라깨우는 ‘에메랄드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그 사연은 황금빛 불탑과 프라 몬돕을 지나 중앙으로 더 들어가면 알 수 있다. ‘봇(Bot)’ 이라는 이름의 대법전이 나오는데 이곳이 왓 프라깨우의 사실상 핵심. 태국에서 가장 신성한 불상인 프라깨우가 안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태국 국보 1호이기도 한 불상은 높이 66cm의 옥으로 만들어졌는데, 발견 당시 승려가 옥을 에메랄드로 착각하여 사원의 이름이 에메랄드 사원이 된 것이라 한다. 위대한 발견에 위대한 착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옥 사원‘은 어딘지 어색하다.

IMG_5444_보정.jpg
주인공은 동생이 아닌 뒤에 에메랄드 사원

왓 프라깨우에는 짜끄리 왕조 역대 왕들의 동상을 실물 크기로 보존하고 있는 쁘라쌋 프라 텝 비돈(Prasat Phra Thep Bidon), 라마 4세가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까지 영토를 지배했었던 영광의 시절을 기념한 앙코르 와트 모형(Angkor Wat Model), 그리고 우리나라 단군신화와 같은 태국 건국신화를 담은 라마끼안(Ramakian) 벽화가 그려진 회랑 등의 볼거리들이 더 있었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눈이 부시기는 마찬가지. 선글라스 때문에 콧잔등 위로 땀이 송송 맺혔지만 잠시도 선글라스를 벗을 수 없었다.

keyword
이전 19화미남미녀 주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