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엄마와 다 큰 두 아들의 추석 특선 가족여행 - Episode Ⅳ
엄마, 나, 동생. 우리 세 식구 다 함께 외출을 하면 보통 골목대장 역할은 엄마가 맡는다. 엄마가 제일 앞에서 걷고 그 뒤를 나와 동생이 쫓아간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엄마의 걸음은 항상 빠르다. 좀 천천히 걷자고 하면 본인은 끝까지 천천히 걷고 있단다. 누가 봐도 엉덩이 실룩실룩, 팔을 앞뒤로 크게 저으며 걷고 있는데도 말이다.
쌍문동 골목대장이 방콕에서는 쫄병이됐다. 여행하는 내내 엄마는 나와 동생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녔다. 항상 눈앞에 엄마의 뒷모습이 있었는데 이제는 등 뒤에 엄마가 있었다. 동생과 나에게는 방콕만큼이나 신선한 광경. 이 상황이 재밌으면서도 혹시나 엄마가 우리를 놓치지는 않을까 싶어 이따금씩 엄마를 살피곤 했다.
“엄마, 잘 따라오고 계셔~?”
“응, 그럼~”
좁은 골목 사이 기찻길을 따라 걸었다. 내내 뒤에 있던 엄마가 갑자기 훅! 치고 올라왔다. 그러고는 우리를 앞질렀다. 어디 많이 봤던 아주머니의 익숙한 뒤태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걸음이 바빠졌다는 건 ‘매끄렁 위험한 기찻길 시장(MaeKlong Railway Market)’에 도착했다는 뜻. 우리나라 재래시장과 비슷한 분위기에 잠들어 있던 엄마의 주부 9단 본능이 깨어난 것이다.
“역시 우리 엄마. 어디 안 가지.ㅋㅋ”
정말 장을 볼 생각인지 엄마는 매의 눈으로 깐깐하게 스캔을 시작했다. 이건 분명 여행자로서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아니었다. ‘오늘 저녁에 뭐 해 먹을까~?’ 하며 먹이 사냥을 나온 30년 차 주부의 눈빛이었다. 좌우를 두리번두리번거리다 발걸음을 멈췄다. 과일 가게 앞이었다. 엄마의 시선은 망고를 향했다. 역시 태국 하면 망고지! 사냥감이 정해진 엄마는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여행 최초, 아니 엄마 생애 최초 외국인과의 대화다. 그런데 이건 무슨 상황?! 한국말로 주고 태국말로 받았다.
“얼마예요? One! 한 봉지!”
“!@#%^@^!%@#^”
나와 동생은 옆에서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과연 엄마가 혼자서 물건을 살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한국말과 태국말이 오가는 이 대화가 재밌기도 했다. 계속 서로의 말만 하는 이상한 대화가 이어졌다. 신기한 건 그렇게 몇 마디를 더 주고받는가 싶더니 마침내 엄마가 지갑을 열었다. 구매에 성공했다는 의미. 거스름돈과 망고 한 봉지를 받고서는 밝은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ㅋㅋㅋ아이고, 망고 한 봉지 샀다.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네.”
“뭘 못 알아들어~ 다 샀구먼!(엄지 척!)”
어디서든 어떻게든 원하는 걸 살 수 있는 사람, 바로 대한민국 주부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울 엄마 주부 9단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