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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냄새 안 나는 시장

환갑 엄마와 다 큰 두 아들의 추석 특선 가족여행 - Episode Ⅲ

by 트래볼러

시장에 가는 걸 좋아한다. 지역 특산품을 비롯해 질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공익광고 같은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짐꾼으로 따라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따라가서 뭐라도 하나 얻어먹어야겠다는 돼지런한 욕심이 더 크다. 시장통 길거리 음식 말이다. 김떡순(김밥, 떡볶이, 순대)은 기본, 어묵, 꽈배기, 도넛, 호떡, 닭꼬치, 닭튀김(치킨과 엄연히 다르다. 닭튀김만의 맛이 있다.)과 같은 요깃거리나 식사 대용 메뉴는 물론이거니와 식혜, 수정과, 생과일주스, 아이스크림 같은 음료, 디저트류까지. 시장에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맛있는 먹거리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장 좋은 이유는 갓 잡아 올린 활어 같은, 팔팔한 삶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손님을 끌면서도 찾아온 손님들을 절대 홀대하지 않는다. 두 개의 귀로 둘 이상의 목소리를 상대한다. 일당백! 그런 모습이 억척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보다도 자기 일에 열심히 인 것 같아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엔 강하고 거칠어 보이는 시장 사람들이지만 덤으로 하나 더 얹어 줄 때면 가슴 깊이 숨겨진 따듯한 정을 느낄 수 있다. 흔히 이런 걸 보고 사람냄새 난다고 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어디를 가도 그 지역의 사람냄새를 느껴보기 위해 꼭 시장 한 군데는 들른다. 방콕에서 미니밴으로 장작 2시간. 태국 로컬들의 향기(냄새라고 하면 어감이 이상하니;;;)를 느끼러 ‘담넌 싸두악 수상시장(Damnoen Saduak Floating Market)‘을 찾았다.

시장은 시장인데 수상시장!? 한국에서는, 특히 서울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태의 시장이다. 물 위에 있는 시장이라... 상인들이 보트를 타고 다니며 장사를 하는 건가? 아니, 정반대였다. 운하 양옆으로 가게들이 쭉 늘어서 있고 손님들이 보트를 타고 이 가게 저 가게 돌아다니는 방식이었다. 보트를 타고 장사를 하는 가게도 있었다. 바로 먹을 것을 파는 가게들. 우리나라 시장으로 치면 길거리 음식이다. 여기선 뱃길 음식이라고 하나?^^;;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배를 채울 수 있는 요깃거리에서부터 망고스틴, 두리안 같은 열대 과일, 그리고 디저트까지. 메뉴가 다양했다.

맞은편에서 보트 한 대가 다가왔다. 방향을 보니 우리가 타깃.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태국의 대표 길거리 디저트 코코넛 아이스크림.


“더운 데 하나 사 먹을까?”

“아, 난 코코넛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럼 엄마랑 둘이 먹어~”

코코넛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서 엄마와 동생에게 안겼다.

“음~ 이거 맛있다! 시원하고 깔끔해. 맛 좀 볼래?”

“한입만 먹어볼까?... 오! 요건 맛있네?!”


코코넛의 느끼함을 싫어해 코코넛이 들어간 음식은 거의 안 먹는 편인데 코코넛 아이스크림은 코코넛 과육과 함께 들어있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코코넛의 느끼함을 잡아줬다. 그러면서도 코코넛 과육의 야들야들하고 쫄깃한 식감은 그대로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계속 손이 갔다.


“이제 그만 먹어~ 맛만 본다며! 둘이 먹기도 모자라.”


그렇게 엄마에게 숟가락을 강탈당했다. 쩝...

아이스크림 먹부림을 하는 사이 어느덧 수상시장 투어의 끝이 다가왔다. 보트는 선착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한 바퀴 돌아보며 느낀 시장의 분위기는 기대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물론 수상시장이라는 점에서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시장하면 모름지기 분주하고 왁자지껄해야 하거늘 상인들 표정에 활기가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손님들이 관광객이다 보니 구매를 하기보다는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여기에 한술 더 떠보자면 솔직히 구매할 만큼 매력적이거나 특이한 물건도 딱히 없는 것이 현실. 투어 내내 먹을 것을 제외하고 실제 구매를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상인들도 애써 호객행위(좋은 말로 영업)를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어차피 그냥 보트 타고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일 테니.

이토록 사람냄새 안 나는 시장은 처음이었다. 사람냄새 대신 탁한 운하의 물 비린내와 가끔씩 맛있는 음식 냄새, 달달한 과일 냄새만이 느껴졌다. 많이 아쉬웠다. 치열해야 할 삶의 현장에서 정말 치열한 것은 운하를 빼곡히 채운 보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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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보트들로 혼잡한 수상시장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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