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여행, 배낭이냐? 캐리어냐?
출국 며칠 앞둔 어느 날 밤, 다섯 청춘들의 단톡방에 불이 났다. 발화 원인은 배낭이냐? 캐리어냐? 그것이 문제였다. 다들 배낭여행은 처음인지라 고민도 되고 신경 쓸 것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단톡방에서 100분 토론 펼쳐졌다. 나와 아내는 단호박 배낭파였다. 라오스는 캐리어보다 배낭이 더 편하다는 여행 후기를 보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평소 배낭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에 라오스 여행에서 그 로망을 실현해 보기로 한 것. 물론 배낭여행이라 하면 으레 내 몸보다도 큰 배낭하나 짊어지고 단신으로 세계를 누비는 장기세계여행을 의미하지만 속세에 벌여놓은 일들과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은 평범한 중생이기에, 소박하게나마 배낭여행자들의 성지인 라오스에서 그들처럼 배낭하나 메고 다니며 배낭여행 갬성이라도 느껴볼 심산이었다.
니나킴도 배낭파. 사실 니나킴은 코로나 전 세계여행을 앞두고 있었던 비운의 예비 세계여행자였다. 안타깝게도 그때 들지 못했던 40리터짜리 세계일주 배낭을, 너무 커서 살짝 고민하는 기색이 보였지만 아마도 메고 올 듯 보였다. 배슨생은 단호박 캐리어파였다. 확고함의 이유는 심플했다. 편하니까. 액체류 같은 기내반입 금지 물품에 대한 걱정도 없고, 여행 중 기념품으로 짐이 늘어나게 될 수도 있는데다 무엇보다 웬만한 건 그냥 다 때려박으면 되니 편의성이 중요한 여행자라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JYP는 단톡방의 불이 꺼질 때까지도 끝내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본인은 본래 무조건 편한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나와 아내처럼 배낭여행에 대한 로망도 있는 데다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배낭 멜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배낭을 메고 싶은데, 또 막상 배낭을 메자니 공간이 부족해 못 챙기게 되는 것들도 있고, 기내반입 금지 물품도 신경 써야 하고, 짐을 넣을 때 테트리스도 해야 하는 등 번거로운 게 이만저만이 아니라 쉬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배슨생이 캐리어는 그냥 다 때려 박으면 된다며 캐리어의 장점을 어필하고 있지, 나머지 세 배낭파는 그래도 라오스는 배낭여행 아니겠냐며 낭만을 앞세워 유혹하니 멘붕이 올만했다. 과연 JYP는 공항에 배낭을 메고 올 것인가? 캐리어를 끌고 올 것인가? 출국 당일 공항에서 알게 될 JYP 드라마의 결말이 사뭇 기대가 됐다.
라오스 배낭(멘)여행에 대한 (개인적인) 후기를 읊어보자면, 배낭여행이라는 로망 실현의 기쁨은 짧았고, 현실의 피곤함은 여행 내내 따라다녔다. 사실상 도시 to 도시를 이동할 때만 배낭여행자지 여행할 때는 숙소에 큰 짐은 풀어놓고 최소한의 짐만 들고 돌아다녔기 때문. 게다가 출국 전 짐 싸기부터 시작된 테트리스 게임은 여행 중 짐들이 재배열됨으로써 난이도가 높아져 돌아오는 날 짐을 쌀 때는 여기에 기념품까지 더해지니 끝판왕 난이도가 되었다. 반면에 캐리어는 묵직한 네모박스를 끌고 다녀야 한다는 것 말고는 불편할 게 없었다.(심지어 이것 조차도 메는 것보다 편한데) 비엔티안은 라오스의 수도답게 길이 잘 정비가 되어 있었고, 방비엥은 풍문대로 비포장길도 많기는 했으나 그 길을 캐리어 끌고 다닐 일은 거의 없었다. 특히, 단순 우연일 수도 있으나 벨보이나 운전기사님들이 캐리어는 들어줘도 배낭은 들어주지 않았다.(한 두 번이 아니었기에 우연이 아닐 것 같다는 배낭파끼리의 부러움 섞인 결론) 역시 전직 여행 마케터를 업으로 삼았던 자의 품격인가? 배슨생이 현명했다. 배낭이냐? 캐리어냐?를 두고 내기나 대결을 한건 아니지만 승리자는 배슨생이었다. 이 말인즉슨, JYP 드라마의 결말은 배낭이었다는 말. 이걸 해피엔딩이라고 봐야 할지 새드엔딩이라고 봐야 할지...
사실 배낭이냐? 캐리어냐? 그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100분은커녕 1분 토론거리도 안 되는 문제 아닌 문제다. 여행에는 각자의 취향이라는 게 있으니까. 여행일정과 여행지의 상황 등은 고려하되 본인이 원하는 거 가지고 가면 된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분명 일장일단은 있다. 감수는 본인의 몫. 지나고 나면 이 또한 여행의 일부로 추억이 될 테니 너무 깊은 고민이나 선택장애를 겪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