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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내릴 결심

아내의 도전

by 트래볼러

뚝배기라면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는 블루라군3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이제 블루라군1으로~~~ 풍문에 의하면 블루라군1은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옛날 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해서 어차피 물놀이는 블루라군3에서 충분히 했으니 블루라군1에서는 물에도 안 들어가고 오래 머물지 않을 예정. 그럴 거면 가는 의미가 없지 않나 싶기도 했지만 블루라군1, 2, 3중 그래도 '라오스 블루라군'이라 하면 마음속 1번은 항상 오리지널 블루라군인 현 블루라군1(이하 그냥 '블루라군'으로 하겠다)이기에 눈에는 담고 가줘야 미련이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블루라군1으로 가는 길

한 번 지나온 길이라 그런지 돌아가는 길은 짧게 느껴졌다. 시간은 20분이 지나있었지만 체감상 한 10분 남짓 정도밖에 안 걸린 것 같았다. 블루라군의 원조답게 고즈넉했던 블루라군3와는 입구에서부터 분위기가 180도 달랐다.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우리나라의 유명 유원지들처럼 입구 주변에는 각종 먹거리와 물건을 파는 상인들도 많았다. 뭘 파는지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싶어 스윽 둘러보는데 갑자기 아내가 사고 싶은 것이 생겼다며 나에게 의견이자 동의를 구했다.(사실상 통보였다) 아내의 지름신을 부추긴 놈의 정체가 대체 뭘까 궁금해서 봤더니만 암튜브(*팔꿈치와 어깨 사이에 착용하는 튜브)였다. 아니 갑자기 이건 왜...? 이건 수영할 때 쓰는 건데 살 거면 블루라군3 가기 전에 샀어야 하거늘. 혹시 라오스 물가가 저렴하니까 미리 사두려고 하는 건가? 아니면 설마...


"그거 하고 물에 들어가고 싶어?"

"(긍정의 눈웃음과 함께) 한번 해볼까?"


갑작스러운 아내의 폭탄 도전에 깜짝 놀랐다. 평소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인데 여행을 오니 가슴 깊이 숨겨져 있던 새로운 자아가 출현하는 건가? 어쩌면 아내는 원래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왕 결심을 했다면 응원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응원보다 앞서는 건 역시 걱정이었다. 킥판 없이는 앞으로 전진할 수 없는 아내의 귀여운 수영실력도 실력이거니와 무엇보다 블루라군의 다이빙대는 다른 블루라군의 그것 보다 더 높은 약 7m 높이이기 때문이다. 물론 구명조끼는 무조건 입을 것이고 거기에 암튜브까지 이중으로 한다면, 설사 두 가지 중 하나가 제 기능을 못한다 해도 남은 하나만 제 기능을 발휘해 주면 물에 가라앉을 일은 거의 없겠으나 아무래도 수영 초심자가 다이빙을 한다 하니 걱정이 앞서는 게 인지상정. 말려? 말어? 밀어줘? 마음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우는 사이 아내는 이미 가격 흥정을 하고 있었다. 아내 성격에 이 정도 추진력이라면 정말로 큰 마음을 제대로 먹었다는 증거. 난 마음속 악마를 밀어내고 무한응원 태세로 전환했다. 흥정에도 소정의 성과가 있었는지 아내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암튜브를 건네받았다. 과연, 아내는 정말로 다이빙을 할 수 있을까...? 기대 반 걱정이 반인 가운데 블루라군의 영업시간이 넉넉하게 남아 있지는 않아 우리는 서둘러 입장했다.

입구에서 암튜브 겟하고 이제 들어갑니다~
안에도 카페나 레스토랑 같은 가게들이 있다

응원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서도 그래도 명색이 남편인지라 걱정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블루라군에 도착하기까지 난 여러 시나리오를 세워보며 내적 고심을 했다. 고심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만약에 긴급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선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선조치로 뭐부터 해야 할까? 등등. 고심하는 사이 어느새 블루라군에 도착했고 도착과 동시에 내린 결론은 다소 뚜렷한 대책은 없는, 그냥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구명조끼와 암튜브 조합이라면 불량 제품이지 않은 이상 웬만해선 안전할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만에 하나 발생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내가 애초에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가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적어도 난 구명조끼 입은 상태에서 자유자재로 수영이 가능하니까. 게다가 주변에 워낙 수영 고수들이 많기에 위급하면 누군가는 인류애를 발휘해주지 않을까 하는 인간친화적인 생각도 들었다.(물론 안일하게 다른 사람들만 믿고 있겠다는 건 결코 아니고) 이 모든 상황과 환경을 종합해 보면 별일 없을 거고, 설사 별 일이 있어도 별 일 아니게 충분히 잘 대응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여기가 바로 꽃청춘의 블루라군, 확실히 사람들이(특히 중국 관광객들이) 많았다
이중에 수영 잘하시는 분 한 분은 계시겠죠?

일단 아내는 다이빙 전 물과 친해질 겸 암튜브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시간을 가졌다. 양팔에 도톰한 주황색 도넛을 끼고는 조심조심 물에 발을 담갔다. 서서히 무릎까지, 그리고 상체까지, 마침내 힘차게 바닥을 발로 차고 유유히 블루라군 한가운데로 떠나갔다.


"오~ 수영 곧잘 하네?"


개인적으로 유원지에서 파는 물놀이용품에 대한 불신이 있어 행여나 불량이면 어떡하나 했는데 부력을 제대로 받는지 아내는 두둥실 가볍게 떠있었다. 얼굴 표정도 편안한 게 전혀 무섭지 않아 보였다. 일단 암튜브는 합격! 이제 물에서 나와 본게임인 다이빙을 준비를 했다. 암튜브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지만 역시나 안전은 유난스럽게 챙길수록 더 좋은 것. 2만킵을 주고 구명조끼를 빌렸다. 무료였던 블루라군3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좋았다.(무료든 아니든 사실 이게 정상 아니겠나? 구명조끼인데) 내 아내는 내가 지킨다는 마음으로 구명조끼 버클을 단단히 채워주었다. 마지막까지 확인 또 확인, 이상무! 구명조끼를 하고 나니 굳이 암튜브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가뜩이나 몸이 부해졌는데 암튜브까지 차면 오히려 움직임이 불편해 수영을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암튜브는 착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준비 끝!


"다녀올게~"


아내는 작별(?) 인사를 하고는 힘차게 다이빙대로 향했다.

수영 전 둘이서 열심히 불었다, 헉헉;;;
아내 바로 앞에 뛰어내렸던 아이, 파이팅!!!
그녀가 뜁니다 (feat. 남편의 절규)

지나고 보니 별 일도 아닌 걸 별 일인 마냥 (어쩌면 나 혼자) 가슴 졸였던 아내의 다이빙 도전이 끝났다. 도전 성공! 대견스럽냐느니, 멋졌냐느니, 자랑스럽냐느니 이런 것보다는 그냥 다행이었다. 아무 사고 없이 뛰는 아내나 지켜보는 우리들이나 모두가 즐거울 수 있었으니까.

아내의 다이빙 후 영업마감시간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부리나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꽃청춘에서 봤던 그 평화롭고 고요한 블루라군이 나타났다. 물론 그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헤치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은 역시 자연 그대로일 때가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늦게 온 만큼 아쉬움도 커 마지막 남은 한 명이 될 때까지 다리 위에 서서 블루라군을 눈과 마음에 담았다. 그렇게 블루라군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방비엥과도 이만 이별을 준비했다.

영업종료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
사람들은 사라지고 블루라군만 남았다, 난 오히려 이 분위기가 훨씬 더 좋았다, 내가 아는 그 블루라군이었으니까
블루라군 안녕! 방비엥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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