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비엔티안 탓 루앙 사원, 빠뚜사이 독립기념관
다시,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도착한 곳은 라오스 첫날 묵었던 숙소 앞. 이곳으로 온 이유는 어깨를 짓누르는 짐덩어리들을 내려놓기 위해서. 돌아가는 비행기 편이 밤 12시경이다 보니 그때까지 비엔티안에서 놀아야 하는데 한두 시간도 아니고 반나절을 짐 들고 돌아다니기에는 여간 불편할 게 뻔했다. 짐보관소를 찾아봤지만 왠지 믿음이 가는 곳이 딱히 없었다. 그래서 겨우 1박, 아니 사실상 10시간 정도 머문 게 전부였던 호텔에 염치 불구하고 부탁을 하기로 했다. 명색이 호텔이라 믿음이 갔다. 게다가 비엔티안 여행자거리와도 가깝고, 공항과도 그리 멀지 않아 설령 놀다가 시간이 촉박해져도 부리나케 갈 수 있으니 반나절 비엔티안 여행의 거점으로 삼기에 딱이었다.
아무리 서비스가 생명인 호텔이라지만 과연 잠시 스쳐 지나간 염치없는 중생들의 부탁을 들어줄까 걱정이 앞섰다. 소심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우리를 먼저 알아본 프런트데스크 직원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의 스케줄과 함께 다시 온 이유를 설명하자 흔쾌히 짐을 받아주었다. 동방예의지국 사람으로서 보통 이런 부탁을 할 땐 박카스라도 한 박스 사들고 가는 게 예의라고 배웠거늘, 빈 손으로 부탁을 하는 게 민망하고 미안했지만 그럼에도 들어줘서 너무 고마웠다. 그 고마운 마음, 많이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전해보려 한다. PPL, 아니 대놓고 홍보. 늘 친절하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 최선을 다해 신경 써 준 우리의 비엔티안 전속 베이스캠프는 원 비엔티안 호텔(One Vientiane Hotel)이다.
반나절 비엔티안 여행을 위해 프라이빗밴을 불렀다. 여전히 라오스 킵(LAK)은 많이 남아있었고, 반면에 우리의 체력은 육체적으로나 (특히) 정신적으로나 서서히 바닥으로 가고 있었기에 남은 최대한 럭셔리하고 편안하게 즐기기로 했다. 해서 비엔티안 여행도 욕심부리지 않았다. 탓 루앙 사원과 빠뚜사이 독립기념관, 이렇게 딱 2군데만 보는 걸로. 마침 비엔티안이 라오스 내에서 노잼도시로 소문이 자자해 이 두 군데 말고는 딱히 뭐가 더 없기도 했다. 숙소 앞으로 프라이빗밴이 도착했고 비엔티안에서의 첫 번째 여행지인 탓 루앙 사원으로 출발했다.
여행을 할 때면 나는 평소 가지고 있던, 혹은 나도 모르게 몸에 배어 있는 모든 기준들이 무너진다. 이기적이 이타적이 되고, 까탈스럽고 예민한 신경도 둔해지고, 더러운 성질머리도 온순해지고, 눈물도 웃음도 헤퍼진다. 때문에 별 볼일 없는 걸 봐도 굉장히 신기해하고, 쉽게 감탄하고 감동하기 일쑤다. 비엔티안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도 노잼 노잼 하길래 진짜 별 기대 없이 마음을 비웠는데 탓 루앙 사원으로 가는 길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빠뚜사이 독립기념문을 보자마자 바로 가슴이 벌렁벌렁 해졌다. 혈당 스파이크처럼 한껏 텐션이 오른 채 탓 루앙 사원에 도착했다.
탓 루앙 사원은 라오스 국장과 화폐에도 사용되고 있는 불교 사원으로 불교국가인 라오스의 심장이자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당연히 라오스는 물론 비엔티안의 랜드마크다. 문화권이 비슷한 나라들은 건축물 양식도 그러하듯 동남아 중에서도 태국, 미얀마의 사원들과 결이 비슷했다. 외벽은 주로 흰색 바탕이고 지붕은 붉은색을 기본으로 뾰족뾰족한 형상의 금장식들이 있어 화려했다.
휘황찬란한 사원 곳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다 부처님을 만났다. 그냥 부처님이 아니고 길~게 다리 뻗고 옆으로 누워 계시는 와불. 탓 루앙 사원의 대표적인 볼거리이자 인증숏 스폿답게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와불을 찍고 있었고, 와불과 함께 인증숏을 찍으려 웨이팅 중이었다.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앞사람들을 한 명씩 찍어주다 보니 어느새 우리 차례가 돌아왔고 한 명씩 돌아가며 서로의 추억을 남겨 주었다.
누워계시는 부처님 문안인사를 마치고 사원의 중심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그곳에 탓 루앙 사원이 있었다. 온통 황금으로 뒤덮인 게 태국의 왓 프라깨우와 비슷하지만 형태는 전혀 달랐다. 왓 프라깨우가 둥근 고깔 모양의 황금종이라면 탓 루앙 사원은 가운데에는 장초가, 테두리에 짧은 초들이 빽빽하게 꽂혀있는 네모난 3단 황금 케이크였다.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크고 화려했다. 안타깝게도 날이 흐려 눈이 부실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 화창한 날이었다면 선글라스가 필수였으리라. 오와 열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대칭적이고 규칙적인 첨탑 주변 장식들의 디테일도 돋보였다.
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에서 전통의상을 입고 촬영 중인 남녀가 보였다. 딱 보니 신랑과 신부. 탓 루앙 사원이 예쁘기도 하고 라오스의 상징인 만큼 현지 예비부부들이 웨딩촬영 장소로 애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복궁에서 하는 웨딩촬영이라고나 할까? 포토그래퍼 실력이 웬만큼 꽝이 아니고서야 사진이 안 이쁘려야 안 이쁠 수가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웨딩촬영 대신 인증숏 촬영을 했다. 탓 루앙 사원에서 인증숏 찍는 (꿀)팁! 네모진 건물, 그중에서도 좌우 대칭미가 있는 건축물들은 모서리에서 찍으면 구도가 안정적으로 잡힌다. 모서리에 맞춰 서서 포즈는 현지 바이브에 맞춰 네 멋대로. 사원인 만큼 요가하기? 수련하기? 기도하기? 느낌으로다가 이렇게 저렇게 목각인형 같은 몸을 움직였다. 찍어주는 카메라가 4대나 있으니 뭐 하나는 걸리겠지. 그렇게 인증숏 3장을 건졌다.
탓 루앙 사원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다음 코스인 빠뚜사이 독립기념문으로 이동하려는데 기사님이 로컬 여행지를 한 곳 추천했다. 요즘 많이 가는 곳이고 비엔티안에서 탓 루앙 사원만큼이나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며 열변을 토하듯 강력하게 어필했다. 마치 물건 팔러 온 다단계 영업사원처럼. 제법 거리가 멀긴 했지만 현지인이 그토록 추천하니 우리도 귀를 열고 들었으나 듣다 보니 사태 파악이 됐다. 멀리 가서 추가 페이를 받아보려는 우리 입장에서는 수작, 기사님 입장에서는 짱구를 굴린 것. 하지만 우리 다섯 청춘이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됐고요, 그냥 빠뚜사이로 가주세요!"
입맛 다시며 아쉬워하는 기사님 표정이 보였으나 뭐 손님이 안 가겠다는데 별수 있나. 예정대로 빠뚜사이 독립기념문으로 왔다.
빠뚜사이는 문을 뜻하는 '빠뚜(Patu)'와 승리는 뜻하는 '사이(xai)'의 합성어다. 즉, 승리의 문.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여 지어진 것으로 탓 루앙 사원과 함께 라오스 비엔티안의 랜드마크 투톱 중 하나다. 전후좌우 모두 아치로 이루어진 것도 그렇고 전반적인 느낌이 파리의 개선문과 많이 닮아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파리 개선문에 비해 보다 더 정육면체에 가깝고 아치 위에는 불교 같기도 혹은 힌두교 같기도 한 동양적인 장식이 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꼭대기 전망대가 마치 작은 사원 같다는 점이다. 정면에서 보면 사원 모양의 왕관을 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동양과 서양이 적절하게 섞여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아치와 내부의 천장도 그렇다. 천장장식은 유럽 성당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천장벽화의 양식을 따랐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잘은 몰라도 라오스적인, 역시나 불교나 힌두교의 신화를 담고 있다.
빠뚜사이 독립기념문은 사실 밖에서 보고, 안에서 보고, (우리는 올라가지 않았지만) 위에 올라가서 보고 나면 딱히 더 볼 건 없었다. 굳이 찾으라면 빠뚜사이 옆 총리공관과 빠뚜사이 앞 분수대 정도? 사진 찍을 거 다 찍고 인증숏도 충분히 찍었겠다 마침 배도 꼬르륵 구슬피 울어대니 이제 슬슬 저녁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싶었다. 바로 그때, 빠뚜사이에 불이 밝혀졌다. 음악에 리듬을 맡긴 분수를 통해 보이는 빠뚜사이의 야경이 눈앞에서 넘실거렸다.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에 떠나려던 발길을 잠시 멈췄다. 그냥 갔다면 아쉬울 뻔했다. 운 좋게도 시간 때를 잘 맞춰와 낮과 밤의 빠뚜사이를 모두 담을 수 있었다.
빠뚜사이의 야경을 볼 수있어 좋았지만 이는 이제 라오스를 떠나야 할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 아쉽지만 반나절 비엔티안 여행의 한 페이지를 이만 마무리했다. 누가 비엔티안 노잼이라 했냐?! 탓 루앙 사원과 빠뚜사이 독립기념문에서 보낸 3시간이 30분처럼 느껴졌다. 라오스 비엔티안, 감히 장담컨대 유잼이다. 잠시 거쳐가도 좋지만 느긋하게 머무르면 더 좋은, 충분히 재미있는 도시였다. 방비엥이나 루앙프라방과는 그저 결이 다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