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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생명 Dec 15. 2022

5-?=?

그런 날이 있다. 이상한 날?

 시어머님의 첫 번째 기제사를 무사히 마쳤다. 아니 무사히라는 말은 옳지 못하다. 경건한 마음으로 애달픈 마음으로 제사를 모셨다. 병석에 오래 계신 건  아니었으나 식사를 거의 못하셔서 원래도 왜소한 체구가 더 마르고 혈색마저 잃으셔서 보고 있기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제사 음식엔 더더욱 신경을 썼다. 그곳에서 맛난 음식 마음껏 드시고 두고 온 자식들 걱정일랑 잊으시라고.


 제사를 지내기 몇 개월 전부터 우리 부서엔 일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타 부서로 지원 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 부서는 프레스반이었는데 처음엔 보조업무를 주로 담당하다가 회사에서 모든 업무가 가능해야 한다며 인원 충원 없이 이리저리 사람을 돌려가며 일을 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2019년 11월 6일이었다. 그날 아침은 여느 날과 분명히 달랐다.  계속되는 잔업과 특근으로 몸은 천근만근이었는데 머리는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다. 마치 내 머릿속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기라도 하는 것처럼. 두통은 나의 오랜 벗이라도 된 양 날 떠나질 않더니 4~5년 전부터 횟수와 강도가 많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날의 상쾌함은 필시 이상하고도 이상한 징조였다.


 아침 조회를 마치고 업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업무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타 부서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한 번씩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던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꿈인가? 꿈일 거야! 꿈이어야 하는데...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이건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나에게 닥친 실제상황이었다. 나의 왼 손이 기계와 기계 사이에 끼어 있었다. 멍해졌다. 마치 영화장면에서 시간이 멈춘 듯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고함을 질렀다. 현장은 기계소리로 시끄러웠고 혼자 일을 하던 상황이라 사고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내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놀라고 무서운 마음에 훌쩍이는 사람도 보였다. 반장이 놀라 뛰어와서 기계를 작동해 손을 빼려 했지만 야속하게도 기계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사고임을 직감했을 때 내 머릿속을 스친 세 가지의 단어가 있다.

 젤 먼저 떠오른 단어는 어떡하지? 였다. 그 당시 딸아이는 대학교 2학년이었고 아들은 고3이었다. 적어도 지금은 일을 놓을 수 있는 적절한 시기는 아니었다.

 두 번째로 떠오른 단어는 '다행이다 '였다. 이젠 더 이상 이 무시무시한 기계 앞에 서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온몸을 조여 오는 긴장감과 불안 속에 떨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그리고 세 번째는 '너무한다'였다. 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갑자기 엄마가 생각났고 엄마가 나한테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자식을 지켜줘야 하는데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원망 아닌 원망이 일었다. 그리고 후에 든 생각이지만 엄마는 옳았다. 왼손에 장애를 입음으로써 나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곤 다시 상황들을 정리해야 했다. 놀라고 무서워서 까무러치지도 못한 그때의 나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차분했다. 놀라고 무섭고 당황스러운 마음과는 달리 내 머리는 이런저런 계산들을 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손을 억지로 빼내려 한다면 손상부위는 더 커질 뿐이니 가만히 있는 게 좋겠다.

 남편에게 사고소식을 알려야 할 텐데 뭐라고 해야 하나.  사고소식에 놀라서 급하게 오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 등등 온갖 걱정들이 몰려왔다.    

 

 온갖 걱정과 생각에 파묻혀 있을 즈음 기계가 움직였고 손을 빼낼 수가 있었다

 장갑을 낀 왼손에선 피가 계속 흘렀고 갑자기 한기가 몰려오면서 서 있기가 힘들어 옆에 있던 반장에게 거의 안기다시피 해서 부축을 받았다. 119 대원들이 도착했고 차에 올랐다.  보호자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고 해서 남편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신랑이 받으면 바꿔달라고 했다.  원래부터 의심이 많은 남편은 낯선 번호라 전화를 받지 않다가 계속 벨이 울리니 뭔가 안 좋은 소식인 것 같아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우선은 남편을 안심시켰다. 일하다가 조금 다쳤는데 지금 구급차 타고 병원으로 이송 중이니 조심히 운전해서 오라는 말을 전하고 통화를 마쳤다.


  전화를 끊자마자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지금도 가끔씩 그때의 통증이 기억나곤 하는데 아파서 느끼는 통증이 아니라 몸이, 아니면 머리가 그때의 통증을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뜨거운 물이나 불에 덴다면 이런 아픔일까, 차디찬 얼음에 살이 닿는다면, 그도 아니면 예리한 칼에 찔린다면...

 그 무엇도 지금의 고통에 비할 수 없으리라.



 극심한 통증과 참을 수 없는 한기 속에 휩싸인 채 그제야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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