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큰 사건을 접했을 때 몸이 반응하는 부위는 다 다른 것 같다. 두통이 생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화기관이 탈이 나는 사람도 있고 나 같은 경우는 호르몬 밸런스가 깨지는 것이다.
2014년에 경미한 교통사고를 겪게 되었다. 말 그대로 경미한 사고였다. 그 차엔 우리 네 식구와 시어머님까지 다섯 명이 타고 있었는데 다행히 모두에겐 외상이 없었다. 그런데 외상이 문제가 아니었다. 호르몬 밸런스가 깨지면서 생리가 한 달여간 어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원래부터 생리통이 심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 이후로 피로가 많이 쌓이거나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으면 한 달 가까이 생리를 하곤 했다.
병원에서 호르몬제를 처방받아먹어 봤지만 먹을 때뿐이라 그 마저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한 달 가까이 생리를 한다는 건 한 달 동안 축축한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불쾌하고 짜증이 난다.
그런데 이번엔 그 양상이 달랐다. 출혈이 너무 심해서 누워있기조차 힘들었던 것이다.
제대로 잠을 잘 수도 누워 있을 수도 없는 상태, 몸과 마음은 너무도 간절히 휴식을 원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따라 주질 않고 있었다.
손이 다치면서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렸는데 내 몸에 아직도 이렇게 많은 피가 남아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누워있는 것조차 맘이 놓이질 않아 앉아 있어야만 할 정도로 생리는 멈추지 않았다. 두 손으론 쉽게 할 수 있는 생리대갈기가 그리 번거로운 일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남편이 도와준다고 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둘째를 낳을 때 남편이 산후 뒷바라지를 해 주었기 때문에 남편은 괜찮다고 했지만 왠지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정도쯤은 얼마든지 혼자 할 수 있다는 오기도 생겼다.
밥을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고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 바라고 있을 때쯤 딸아이가 남자친구와 함께 내려왔다.
거의 매일 통화를 하는 딸아이는 제천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그날따라 엄마 아빠 둘 다 통화가 되질 않으니 온갖 불행한 생각들을 떠올리고 지우 고를 반복했다고 한다. 입원실이 잡히고 통화가 연결되어서야 일하다 엄마가 조금 다쳤다고 얘길 했는데 다음날 바로 내려왔다.
딸아이는 날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퉁명스러운 어조로 얘기했다.
"조금 다친 건 아니네"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평소에도 눈물이 많은 아인데.."
눈물을 꾹 누르고 있는 딸아이를 보니 내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짧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늘 다짐했던 게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들한테 짐이 되지는 않겠다는...
하지만 그 다짐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에 마음은 한없이 무너져 내렸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지만 이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사고는 사고일 뿐 먹어야 살 수 있으니 괜찮다는 아이들을 달래어 남편과 식사를 하고 오라고 떠미듯이 병실 밖으로 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