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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생명 Apr 18. 2023

5-?=?

너의 의미

 회사나 집에서나 그 장소마다의 루틴이 있듯이 병원에서도 여기의 루틴이 있다.  그 루틴의 시작이 무서워 난 늘 마음을 졸였다.


 병원의 루틴은 대략 여섯 시쯤이 되는 건 같다. 병실의 모든 환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에 x-ray를 찍거나 그 외의 다른 검사가 그때쯤 시작이 된다.  그리곤 일곱 시가 되면 아침을 먹고 그 뒤에 상처부위 소독을 한다.  나에겐 이 소독이라는 과정이 고난과 역경의 과정 중 하나인데 단연코 최고 난도였다.  일곱 시쯤 아침 식사가 시작되고 빠르면 한 시간 늦어도 두 시간 안에 소독은 진행된다.  소독이라는 과정은 나에게 있어 무서움을 넘어 엄청난 공포였고 이 과정이  지나가기까지 늘 몸과 마음은 얼어 있을 수밖에 없었고 아침밥은 먹는 둥 마는 둥이었다.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고 또 바랄 뿐이었다.


 사고가 나던 그날부터 4~5일간 동안 남편은 줄곧 내 곁을 지키고 있었기에 모든 순간을 같이 할 수 있었지만 이제 남편은 회사로 돌아가야 했다. 남편이 있어 든든하고 믿음직했지만 소독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입원해서 남편이 있던 그 기간 동안 소독을 하면서 다친 손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아니 상처를 똑바로 보고 싶지 않았다.  치료가 완료되지 않은 손은 살이 뭉개져 있을 거고 피투성이 물집 투성이일 텐데 그걸 보고 나면 내 마음이 얼마나 무너져 내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남편을 꼭 끌어안고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린 채 그 무서운 시간을 견디는 것뿐이었다.

  

 그런 시간을 이젠 혼자 감당해야 한다니 막막하고 겁이 났다.  이런 내 마음을 남편에게 얘기하니 그 큰 일을 겪었으면서 뭐가 무섭냐고 했지만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사고는 예기치 못 한 것이고 피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소독은 그렇지 않으니까.  


 불에 댄 것처럼 화끈거리고 차디찬 얼음에 맨 살이 닿은 것처럼  아찔하다.  아니 이런 표현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살면서 죽어도 잊지 못할 강렬한 느낌.

소독할 때의 그 고통과 마취약이 내 몸에 들어올 때 미친 듯이 뛰는 내 심장박동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인형을 끌어안고 소독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아들한테 전화를 했고 집에 있는 인형 하나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그때 가져온 아이가 이 아이다.  품에 쏙  들어오는 아담한 체구에 너무도 온화한 표정의 이 아이의 이름은 잠잠이다.


 늘 소란스러워 바람 잘날 없던 내 인생이 앞으로는 고요 해질 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름을 지었다.

  잠잠이는 병원생활에선 든든한 보디가드로 집에선 교대근무를 하는 남편을 대신해서 나의 밤을 지켜주는 수호천사로 내 곁을 언제나 지키고 있다.


 며칠 전 tv에서 암에 걸리신 분이 인형으로 인해 희망을 찾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인형을 마치 아기 대하듯 다양한 옷을 입히고, 업어주고, 안아주며  입맞춤하며 자식인양 하시는 모습이 너무도 행복해 보이셨다.


 김춘수 님의 꽃이라는 시구처럼 누군가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을 불러주면 그 대상은 의미를 갖게 되고 그 존재가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누군가에겐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인가 보다. 그렇게 잠잠이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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