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반공정신에 대한 숱한 교육으로 빨갱이는 무조건 나쁜 것, 위험한 것, 무서운 것으로 가르침 받았다. 공산주의는 그래서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의식으로 세뇌된 상태에서 북한 공산당은 무조건 무찔러야 할 적이었다. 엄연히 같은 민족인데도 도무지 함께 할 수 없는 물과 기름으로만 여겼다. 그런데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통해 최소한 왜 그들이 그렇게 투쟁해야만 했는가에 대한 답을 얻게 되었고 의식의 전환을 갖게 되었다. 남과 북으로 갈라선 분단국가의 현실에서 우린 서로 하나의 민족이며 도무지 갈라설 수 없는 동질성을 가졌음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남과 북으로 갈라선 배경에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외세와 외압이 작용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였다.
작가 조정래는 작품의 말미에 [분단과 전쟁], [전쟁과 분단]이라는 소제목을 쓴 연유를 설명하기를 “분단으로 야기된 전쟁”과 “전쟁으로 고착화된 분단”이라고 말한다. 소련과 미국이라는 제3국에 의한 분단으로 말미암아 전쟁은 필연이었고, 그 전쟁으로 인하여 분단이 고착화된 사실 앞에 한민족은 설 자리가 없다. 하나의 통일된 민족이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 남과 북으로 나뉘어 대립된 상황은 염상진과 염상구 형제의 날 선 대립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된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끝없이 자문하며 민족의 주체성과 통일을 추구하는 지성의 몸부림을 하는 김범우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칼날처럼 마주 선 남과 북의 극한 대립 상황을 냉철한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태백산맥]은 빨치산과 군경 토벌대간의 격렬한 투쟁을 통해 숱한 백성들이 죽어가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를 냉정하게 바라보게 한다. 그것은 미국과 소련에 의해 양단된 이데올로기의 싸움에 대한 희생양으로, 냉전시대의 세계정세 속에서 앞장서서 피 흘리며 싸울 수밖에 없는 약소국가 민족의 암울한 현상에 대한 강렬한 고발이 담겨있다.
남북분단이 고착화된 배경에 해방 후 친일파 척결과 단죄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제강점기의 참혹한 수탈로 야기된 토지에 대한 적절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숱한 백성들의 피폐한 삶이 자리 잡고 있다. 북한의 무상몰수 무상분배 정책에 비해 남한의 이승만 정권의 부적절한 토지정책은 일제강점기의 상황의 연장일 뿐이었다. 해방은 되었어도 백성들은 여전히 피폐한 삶으로 궁지에 몰렸고 그것은 공산혁명의 구실이 되었다. 다수의 백성들은 살아남기 위해 공산혁명에 동조했고, 친일파로 일컬어지는 부를 거머쥔 기득권 세력들의 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전쟁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소련과 미국을 대리하여 한 민족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전쟁을 치르는 형국이 되었다.
[태백산맥]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피울음으로 동족끼리 총칼을 맞대고 눈을 부릅뜬 채로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전쟁이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를 계속해서 묻게 한다. 여전히 남과 북으로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언제까지 이렇게 서로 대립된 채로 살아야 할 것인지, 과연 남북은 하나 될 길은 없는 것인지, 여전히 빨갱이 사냥을 계속하고 있는 가식으로 점철된 정권의 허상을 바라보면서 한민족의 동질성으로 외세를 거부하고 민족의 통일을 추구했던 선각들의 정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장탄식이 나오는 것은 작금의 조국의 현실이 너무도 암울하다는 생각이 든 때문이다. 여전히 다수의 백성들은 억압과 착취의 사슬에 묶여 있고, 남과 북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각각의 이데올로기를 무기 삼아 백성들을 볼모로 잡고 한민족공동체의 정신에 반하는 작태로 일관하고 있다. 역사에 대한 바른 안목과 정리가 없이는 조국의 미래는 결코 낙관할 수 없다. 조정래 작가의 시대정신에 대한 인식에 공감하며 박수를 보낸다. 이 민족이 바른 역사의식을 갖는 초석으로 이런 글을 모두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