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나뜨 Nov 01. 2024

살아야 해

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살아야 해 [No.2 개고생, 말하지 않아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Eren 에렌, 정말 어디로 갔을까. 


  나는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기도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며 잊어버릴 법도 했지만, 전혀 잊지 않았다. 잊고 싶지 않았다. 저녁에 하루 일과를 끝내고 하우스메이트들도 집으로 돌아오면 우린 서로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에렌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기도하고 있을 뿐이란 것을.

  많은 시간이 지나고, 우린 시내에서 우연히 그와 마주칠 수 있었다.


  에렌은 Çay evi (차이 에뷔) 찻집에 가장 친한 친구들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원래 에렌의 친구셨던 다니엘과 함께 시내에 빵을 사러 나갔던 참이었다. 그러다 에렌과 함께 갔었던 차이집에 오랜만에 방문하게 되었고, 주인장도 오랜만에 본다며 우리를 반갑게 인사해 주며 안쪽으로 안내함에 따라 우리도 안으로 들어갔더니 에렌이 친구들과 차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에렌의 모습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머리카락을 다 밀어 삭발이 된 상태에, 다크서클이 많이 내려와 있었고, 평상시와는 다른 후줄근한 옷차림과 끊었다던 담배를 피우며 친구들과 앉아있었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삭발도 하고, 피부가 더 까무잡잡해져서 완전히 다른 사람인 줄 알았지만 목소리 때문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대화하는 주제도 죽음에 관련된 내용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와 다니엘은 너무 반가워서 바로 다가가 인사를 했고, 에렌도 놀란 눈치였지만 그래도 옆 테이블의 의자를 가져다주며 우리에게 앉으라고 했다. 그래서 앉아서 2시간 정도를 함께 대화했다. 빵을 사러 나왔어서 일단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하우스메이트들에게는 에렌을 만났다는 간단한 이야기만 하고,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했고, 우리는 에렌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와의 연락을 모두 끊은 후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너무너무 슬픈 마음에 친구의 장례를 치른 후 바로 본가로 내려가 살았다고 한다. 자신도 죽고 싶은 마음에 여러 번 목을 매달았으며, 너무 힘들고 아파서 머리카락을 직접 밀었다고 한다. 또 끊었던 담배도 스트레스로 다시 피우게 되었고, 술도 마시게 되었다. 늦은 밤에는 위험한 일도 했었으며, 일탈도 즐겼다고... 


  그의 모습은 처참했다. 친구의 죽음으로 아픔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한 듯 보였다. 한 대 툭치면 진짜 떨어져 죽어버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우리가 여러 번 물어보았을 때 계속해서, 나는 죽고 싶다. 나는 죽고 싶다. 그를 따라가고 싶다. 나는 죽고 싶다를 계속 되뇌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날 에렌과 헤어질 때 에렌이 우리에게 해준 말이 있었다. 우리의 끊임없는 기도가 닿았던 것 같다.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시는 순간이었다.


  미안해. 너희들 욕하고, 그랬어. 알라든, 하나님이든 상관없이 모두 원망해. 하지만 나를 위해 기도해 줘. 그냥 너희와 함께했던 예배가 기억났어. 지금은 아직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내가 나아갈 수 있게 기도해 줘. 내가 너희에게 했던 그 고백처럼.


  에렌과 어느 날 QT(Quiet Time,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조용한 시간을 뜻하며 성경말씀을 통해 묵상하는 시간)를 같이 한 적이 있다. 그때 본문 말씀은 요한복음 3장이었다. 예수님께서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으로 '거듭남'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요한복음 3:3-4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당연히 에렌도 니고데모처럼 이해하지 못하고 4절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미 태어나 성장을 마친 사람이 어떻게 다시 모태에 들어가 날 수 있겠냐 물었을 때, 우리는 이건 영적인 것을 뜻한다고 답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사람,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거듭나야 한다. 에렌이 이때 고백한 것이 있다.


  거듭남, 이해하지 못하겠어. 하지만 나는 천국에 가고 싶어. 알라는 아무것도 몰라. 우리가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 아무것도 몰라. 하지만 예수님은 정확하게 말했어.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거듭나고 싶어. 기도해 줘.


  에렌과 찻집에서 만난 이후 나는 에렌을 다시 볼 수 없었다. 다행히 다니엘과는 자주 얼굴을 보는 것 같았지만, 진짜 친한 사람 아니면 얼굴 보기 힘들었던 것 같았다. 


  여전히 나는 에렌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카이라를 위해서도. 에렌이 여전히 잘 있을까, 여전히 하나님을 소망하고 있을까 걱정은 되지만,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었듯 잘 이겨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정말 카이라와 에렌을 보며 그들이 직접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사람은 영이라고 한다. 영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이들이 하나님은 믿지 않아도,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우리는 육신이 있고, 영혼이 있다. 우리는 서로의 관계에 영적인 교류가 있다. 단순히 대화하고 보이는 것으로만 교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표정을 통해 감정을 읽기도 하고, 행동을 통해 상대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말주변을 통해 습관을 보기도 한다. 즉, 직접적인 표현이 없어도 우리는 상대를 느낀다는 뜻이다. 영적인 존재란 그런 것이다. 우리가 육신으로만 살면 본능만 있었을 것이다. 배고프면 먹고, 쌀 땐 싸고, 쉬고 싶을 쉬는 단순한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본능대로만 움직이지 않고 생각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육신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렇듯 카이라와 에렌을 통해 조금 저곳의 청년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알게 된 것 같다. 이후에 더 많은 어려운 일들이 있었지만, 이 둘을 통해 숨겨진 뒷면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또 어떤 친구들을 만났을까. 다음 편에서 만나자~

이전 18화 꿈과 환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