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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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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냥 Oct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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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판사가 된거야? 응 뭐라고? 시끄러운 옥토버페스트 안이라 바로 앞에 앉아있는데도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 야, 그냥 내가 옆자리로 갈께. 괜찮지? 수진이 일어서 지안의 옆으로 이동한다. 뭐라고 했어? 이제 목소리가 좀 들릴것 같네. 왜 판사가 된건지 궁금해. 맥주를 한잔씩 마시는 동안 오늘 대화가 될까 싶었다. 피곤에 절어있는 지안의 얼굴. 하지만 방금 질문만큼은 정말로 궁금한 표정이었다. 음… 누가 만들어줬어. 뜻밖의 대답을 들은듯 조금 몸을 수진쪽으로 돌린 지안. 만들어줘? 응. 너 내 꿈 알지 않아? 그때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 없었을텐데, 행사 있을때마다 선생님들이 시켜대기도 했고. 아니 그보다 니가 내 꿈을 기억하지 못한다는건 좀 서운한데? 그 수업시간은 나한테만 특별했나? 응? 어리둥절한 표정의 지안. 잠시 과거를 떠올려본다. 분명 수진이 넌 행사때마다 발레를 공연하긴 했지. 그래. 꿈이 발레리나였지. 근데 왜 판사야? 예술과 법 사이에 어떤 연관성도 찾지 못하겠는 지안은 의문스러운 표정이다. 에효… 너너 너너너! 너가 만들어냈잖아 이 꿈. 약간 부아가 치밀어 핀잔 주듯 눈을 흘긴다. 어리둥절한 지안의 표정을 보니 그때 꿈 수업은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 보인다. 으이구. 됐다 됐어. 그렇게 똑부러지게 판사가 될거다, 정의의 이름으로 악인들을 심판하겠다, 멋지게도 말해놓고는 본인은 전혀 기억을 못하다니. 그랬었구나. 그럼 그게 멋져보여서 발레리나가 아니라 판사가 되기로 한거라고? 개연성이 많이 떨어지는거 아닌가? 원래 국딩들은 그런거야. 별거아닌 멋진 말에도 꿈이 휙휙 바뀌는 자유의 시절인거지. 아득히 먼 과거를 회상하며 얘기를 주고 받으니 어느새 500cc 맥주컵이 여섯잔이나 쌓인다. 그럼 꿈주인! 넌 뭐하고 살아? 난 니가 확신에 가득찬 사람인줄 알았어. 애들하고 얘기도 안하고 수업시간이든 쉬는시간이든 맨날 책만 붙들고 있었잖아. 지금 생각해보니 그거 하고 싶은게 분명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삶의 태도로 보이는데, 아무래도 판사가 된것같진 않네? 지안에게 무례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어쩐지 편하게 얘기해버린다. 술때문인가. 응, 맞아. 판사는 그냥 부모님의 바람 정도였을거야. 그 후에 생활기록부 장래희망란에 의사, 약사, 수의사 이런거 적어진거 보면 내 의지는 없었던거지. 헐, 디게 싱겁네. 허탈한 표정으로 의자에 등을 기댄다. 목을 꺾어 가게 천정을 멍하니 바라본다. 아, 뭐야. 싱겁다 싱거워. 여전히 무례하다. 너 지금 속 마음이 입밖으로 나오는건 아니지? 지안이 오히려 베려해준다. 답답한 녀석 같으니라고. 천정에 달린 실링팬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빙글빙글 빙글빙글. 시기질투로 가져온 확신의 미래를 허탈한 현실으로 마주한 지금. 실은 알고 있지. 꿈이란건 원래 그런거니깐. 난 애들 가르치고 있어. 저엉말 너랑 안어울리는 일을 하는구나? 이젠 그냥 대놓고 심통을 부린다. 응 맞아.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지. 심통에도 대수롭지 않다는듯 지안은 말을 잇는다. 어쩐지 얼굴에 드리운 피곤함의 원인을 알것도 같다. 난 니 옷 뺏어입었는데도 잘 맞아. 어쩐지 미안하네. 너한테 잘 맞는 옷을 내가 뺏어와서 니가 아직 맞는 옷을 못찾은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 여전히 심통부리는 말투인데도 지안이 작게 웃는 모습이 보인다. 취해서 그런지 어릴적 지안의 얼굴을 보는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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