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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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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냥 Oct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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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다음주가 출시일인데 이제와서 정책을 바꾼다구요? 이거 그냥 값 조정이 아니라 메인 프로세스 전체를 뒤집는 변경이라는건 알고 있나요? 아무리 지안이라도 이건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네, 반드시 필요한 변경이라 뒤늦게라도 요청드리는 것입니다. … … 팀장님. … 팀원들이 바짝 얼은 분위기에 눈치만 살피고 있다. 기획실 막내도 아닌척 하지만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 내내 침묵하고 있을수만은 없어 다시 한번 사실을 읇조려본다. 일주일 안에 이걸 다 바꿔달라… 역시 안되겠습니다. 그쪽 팀장 호출하세요. 두 시간 후에 뵙겠습니다. 들어오기 전부터 예상은 했다. 말도 안되는 요구를 맞춰준지도 오래다.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인줄 안다는것이 이 사회의 상식. 알고 있음에도 실수를 반복한다. 나 혼자이면 상관 없지맘 팀원들이 걸려있는 문제, 전에 없이 단호해지기로 결심한다. 팀장님, 일단 식사 하시죠. 식사라…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어서들 다녀 오세요. 상대 팀장의 성격은 익히 알고 있다. 무뢰배. 요즘 시쳇말론 개저씨. 어린 나에게 연공서열이 중시되는 한국 사회 맥락 안에서 대응하기 어려운 상대이다. 탕비실에서 심심치 않게 묘사되는 그 사람은 타 팀과의 회의에서 ‘오늘드 드러 누웠다’ 유형의 인간이다. 하아… 없던 입맛도 싹 사라진다. 도대체 언제까지… 한탄 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초침이 부지런히 달려 시간은 어느새 오후 2시. 회의실에 오전보다 다섯명 많은 사람이 앉아있다. 팀 간 힘겨루기임을 알고 있는 '개저씨' 기획실 팀장이 사람을 모조리 긁어 온 것이다. 간단히 목례를 하며 상대의 얼굴을 살핀다. 기름기 번들거리는 얼굴, 살이 두툼하게 오른 턱과 배,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 앉아있지만 작은 눈 사이로 보이는 안광만은 잔뜩 굼주려 먹이를 찾는 살쾡이마냥 번뜩인다. 그럼 오전 회의에 이어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죄없는 기획실 막내는 살얼음판 같은 회의를 다시 주도한다. 오전보다 많이 긴장한 듯 목소리가 많이 떨리고 있다. 본인 선에서 끝내지 못하고 팀장이 호출되게 했으니 그의 입지가 많이 좁아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강경한 입장을 바꿀 생각은 없다. 이쪽도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는 눈이 많다. 오늘 회의를 잘 끝내야만 한다.


그래서? 프로젝트의 사활이 걸린 문제를 끝끝내 못하시겠다? 못한다는게 아니라 물리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게 그 말이지! 돌림노래 같은 대화가 반복된다. 본인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본인의 말만 옳다는 식의 가스라이팅은 이 바닥에서 오래 구른 이들에게 가장 흔하고, 또 가장 쉬운 대화법이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인내심은 이미 바닥을 찍은지 오래. 어쨌든 저는 문제 상황과 의견을 모두 전달했습니다. 더는 무의미한 시간이 될게 분명하니 이만 나가겠습니다. 뭐라고? 사람 말 안끝났어! 계속되는 반말. 부정적 감정의 분출. 무시하고 등을 돌려 회의실 문을 향한다. 이봐! 사람 무시하는거야? 길을 가로막는 기획팀장을 보자 마지막 이성의 끈이 무너진다. 눈을 부릅뜨고 붉게 상기된 얼굴로 상대를 노려보며 성큼성큼 다가간다. 쿵. 쿵. 쿵쿵. 어… 어? 이팀장 왜 이래? 쿵쿵쿵쿵. 팀장님! 멈추세요!


지안아. 눈 앞이 까맣다. 지안아? 자그맣고 하얀 형체가 어둠 속에서 다가오고 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완벽한 흑막.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건 아무것도 없다. 문득 빨간 빛이 느껴져 아래를 내려다본다. 가슴 한 가운데 진한 빨강의 불꽃이 조그맣게 타고 있다. 이게 뭐지? 내 몸인데 내 몸이 이닌것 처럼 보인다. 괜찮아 지안아. 어느새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온 하얀 형체가 밀을 건넨다. 가까이서 보니 어릴적 내 모습이다. 엄마 금방 다녀올께. 거짓말. 빕 잘 챙겨먹고 있어. 거짓말. 불이 가슴을 넘어 몸 전체로 점점 커져간다. 이윽고 내 몸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을만큼 강한 불빛이 인다. 하얀 형체도 이내 커진 불에 잠식되어 보이지 않게 된다. 하지만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지안아. 괜찮아. 뭐가 괜찮지? 괜찮아. 넌 감당할 수 있을거야. 내가 뭘 감당해? 어린 내가 뭘 감당해야하는데? 다 괜찮아. 안괜찮아. 안괜찮다고!


팀장님! 팀장님! 어어? 이 사람 왜 이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막내 팀원이 큰 중앙 테이블을 날듯이 뛰어 넘어와 기획팀장괴 부딪히기 직전 거친 걸음을 막는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듯 무릎이 접혀 앉아버린 기획실장이 내려다 보인다. 계속해서 그의 눈을 노려본다. 나의 분노는 어디까지 쌓여있는 것일까. 저 사람만 없어지면 괜찮아지는 것일까. 분노는 욕구와 맞닿아있는 감정이라던데 난, 난 무엇때문에 이토록 화가나있는 것일까. 노려보고 다가갔지만 단 한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왜일까. 내가 틀린 것일까. 원래 사회는 이런 곳일까. 기획 팀장은 정상인 사람일까. 어디부터 어떻게 뭐가 잘못되서 난 지금 이렇게 화가 나 있는 걸까. 어딘가 비릿한 구린내가 나기 시작한다. 허어…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의 탄식이 내가 향한 시선과 같은곳을 향한다. 아무래도 상대는 성인으로서 해서는 안될 실수를 저질러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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