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전환기
변화를 직감한 회사에서 살기 위해 튀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일 자체를 중단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틈틈이 이직을 준비하다 보게 된 K회사의 최종 면접에서 아이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회사 다니며 아이는 어떻게 할 건가요?"
나의 면접 자리에서 아이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될 줄이야. 예상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당당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이모님이 계신다. 아이 정도는 내 진로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을 거라는 듯 자신 있게 대답했고 면접관은 안심하는 눈치였다.
여자가 결혼을 하고 친정 엄마의 존재를 크게 느낄 때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이라고 한다. 같은 여자이자 선배 엄마의 존재는 그 자체가 든든한 지원군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육아 지원군이 없다. 친정 엄마는 안 계시고 시어머니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환경이다. 양육 환경만 놓고 보자면 무일푼으로 집 사기랑 다를 바가 없다. 집을 사고 싶으면 영혼을 털어 대출을 받아하듯, 워킹맘이 되고 싶으면 아이를 전담해 줄 이모님 고용이 필수다. 아이를 믿고 맡길 구석이 있다는 것은 일하는 엄마들에게 자유와 당당함을 준다.
당시 이모님의 월급은 내 급여의 2/3를 차지했다. 누군가에게 돈을 주기 위해 일을 하는 상황이라 돈만 놓고 보면 소위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 인생에서 전업 주부는 고려하지 않았다. 친정 엄마처럼 집에서 자식만 돌보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간절함도 이기지 못하는 것이 '아이'라는 존재다. 아이가 생기는 순간부터 나의 선택의지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음을 지금까지 계속 학습하며 깨닫고 있다.
평소와 다름없던 어느 날이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이모님이 느닷없이 퇴사 통보를 하신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지만 차마 잡을 수도 없었다. 건강상의 이유가 있었고, 너무나 확고하게 중단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설득의 여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내가 아쉬운 상황이어도 상대가 너무 확고하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11년간 일했던 회사에서 신속하게 처리되는 퇴사 과정을 보며 섭섭한 마음이 남아 있었다. 이모님을 보면서 어쩌면 회사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도 어찌할 수 없는 확고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후 아이를 봐주는 이모님이 두 번이나 바뀌었고, 주양육자가 자주 바뀌는 환경은 아이와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었다. 세 번째 이모님 면접을 앞둔 시점에서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든 새로운 이모님을 찾아 나설 준비를 하며 워킹맘을 유지할지, 오롯이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는 전업주부의 삶을 선택할지 말이다. 회사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진 탓인지 이번에는 애사심 보다 모성애가 앞섰다. 결국 사회에서 말하는 경력단절 여성에 합류했고, 누구의 강요도 없었지만 자발적 퇴사라고 말하기도 찜찜한 본격적인 퇴사 라이프가 시작됐다.
눈 떠보니 전업 주부가 된 첫날이 선명하다. 오전 내내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다. 몸은 집에 있지만 머릿속은 온통 시간대별 회사 일로 가득 차 있다. 집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이를 보겠다고 일을 그만뒀는데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버리니 혼자 있는 오전 시간은 감당이 안되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해 본 적이 없기에 쓰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다. 그동안 딱히 취미라는 것도 없는 일상이라 주어진 시간이 여유롭고 행복하기보다는 부담스러움 그 자체였다.
워킹맘에서 전업맘으로의 전환은 전직과도 같다. 동일업종에서 회사만 바뀌는 이직이 아닌 전혀 새로운 분야로 확장하는 '전직'인 셈이다. 전업주부에게는 집이라는 공간이 일터이고 집안 살림과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업무가 주어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업맘은 면접도 업무조건도 없다. 경력자인지 묻지도 않고 가이드라인도 없으며 지시자도 없다. 알려주는 친절한 업무선배, 따르는 후배도 당연히 없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집안 일도 아이도 굴러가지 않는다.
새로운 분야로 전직할 때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 어떤 이해도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고 닥치면 할 수 있는 일이 '엄마'라고 착각했다. 나의 엄마가 그러했듯 나도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어쩌면 자신감을 넘어 만만하게 봤는지도 모른다. 내 눈에는 뭐든지 쉽게 척척 잘 해내는 엄마였기에 엄마가 하는 모든 일들이 쉬워 보였다. 그리고 어깨너머 배운 풍월이 있으니 '그쯤이야.'라고 생각했다. 이제야 알았다. 우리 엄마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말이다. 그 노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자녀에게 서운함도 외로움도 내색하지 않으셨음을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 알게 된다.
워킹맘에서 전업맘으로 전직을 한 이후 직업란에 '전업주부'를 체크하는 것이 사실 부끄러웠다. 최근까지도 전직을 실감하지 못하고 사회의 통념에 따라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라고만 여겼다. '전업주부'는 남편 수입에 의존하며 집안을 돌보고 아이를 키우는 무능력한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타이틀이나 보이는 업적이 곧 자신이라고 생각했기에 공기처럼 당연한 존재인 '엄마'의 자리는 스스로 자랑스럽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무런 자격 없이 오로지 엄마의 이름으로 자신을 나타내야 하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전업주부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엄마가 스스로 자부심이 없고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데 아이가 자랑스럽게 여길수 있을까? 결국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 엄마 역할도 잘할 수 있을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