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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유 Dec 07. 2023

2화. 끓는 물에 들어가야만 튀어나오는 개구리처럼


조산 위험이 있어요. 오늘 바로 입원합시다.



늘 예고 없이 바로 재생되는 인생이다. 임신 29주 차 산부인과 정기점진에서 느닷없이 주치의가 입원통보를 알린다. 입원 준비 시간도 없이 진료실을 나가는 동시에 입원실로 올라가라는 의사의 단호한 지시가 떨어졌다. 조산의 위험으로 이 상태면 34주 이전에 아이가 나올 수도 있어 위험하다는 설명과 함께.


"지금 갑자기 입원을 하라고요? 안 돼요 선생님. 저 회사 가야 해요."


다른 이유도 아닌 회사를 가야 하기 때문에 입원할 수 없다고 했다. 임신한 이후 회사에 대한 부채의식은 더 커졌다. 엄마의 장례에 대한 부채의식이 사라져 갈 때쯤 이번에는 승진이 변수였다. 승진 대상자는 몇 프로 이내로 정해져 있는데 직급이 올라갈수록 확률이 적어진다. 당연히 업무성과에 따라 정해지지만 그 해 회사 실적이 좋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승진할 수 있는 대상자는 줄어들었다. 그만큼 승진대상자 간의 경쟁이 치열했다는 이야기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남자 팀장님은 임신으로 곧 휴직에 들어갈 여자직원을 승진 대상자로 올리며 자신이 없었나 보다. 아니면 본인이 이만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을까?


"승진 축하한다. 그런데 조만간 육아휴직 들어갈 사람을 승진시키는 회사가 어디 있냐."


이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려 더 과도하게 충성심으로 어필했는지 모른다. 언제 휴직할 거냐는 동료들 질문에 매번 출산하는 전날까지 다니겠노라고 공표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그런데 의사가 갑자기 입원을 하란다. 한 입으로 두 말하게 생겼으니 낯짝을 들수가 없다.


뭐가 어떻게 위험하다는 이야기 인지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모성애 보다 회사의 충성심이 이기는 상황이다. 당장 인수인계만 걱정이다. 고민의 틈을 알아차린 의사는 바로 입원 해야 한다며 강하게 압박했고 제발 오늘만은 안된다며 맞섰다. 그렇게 몇 분간을 주치의와 실랑이 한 끝에 결국 물러섰다.

"알겠어요. 선생님 하루만 시간을 주세요."


후임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인수인계 절차도 없이 급하게 휴직 신청만 내고 짐을 싸서 나왔다. 회사에 도움이 안 되는 무책임한 여직원으로 전락한 기분을 간직한 채.





개운하지 못한 마음을 뒤로 하고 이튿날부터 병실에 꼼짝없이 누워있는 신세가 되었다. 육안으로는 멀쩡한 상태라 입원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주사 후 부작용은 위기를 실감하게 했다. 조산을 막는 주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부작용으로 호흡곤란이 왔다. 호흡이 곤란한 정도가 아니라 호흡이 안 되는 상태가 여러 번 온 것이다. 태아 살린다고 산모 잡게 생긴 주사였다. 주렁주렁 수액을 달고 종종 산소호흡기에 호흡을 의존한 채 누워 있는 것이 최선인 삶을 한 달 가까이 이어갔다.





1년 8개월이 지나 복직을 신청했을 때, 원하는 보직에 자리가 없다는 답변을 듣게 된다. 항변을 해봤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휴직기간 동안 믿었던 팀장님이 바뀌신 탓에 어디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다. 육아휴직 전 받았던 승진이 사실상 업무배치를 더 어렵게 만든 셈이다. 그렇게 원치 않는 부서에 배치된 후, 신입사원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사회부적응자가 되기 시작했다.


복직후 새로운 환경과 구성원들에게 빠르게 적응해야 했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다. 속도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부적응자가 최대로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은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것 뿐이었다.


훗날 깨달았지만 “죄송합니다.”는 최악의 방법이었다. 말의 힘은 매우 커서 감사하는 말을 하면 감사함이 생기지만, 죄송하다는 말을 계속하면 죄송한 마음만 남는다. 죄송한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 스스로를 점점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사실 조직에서 부적응자의 선택은 버티며 적응을 하느냐, 제 발로 걸어 나가느냐 둘 중 하나다. 버틸 생각을 하니 앞날이 깜깜했고, 제 발로 걸어 나가자니 그동안 버틴 시간이 아까웠다. 그러나 버틴 시간이 아깝다고 다시 끓는 물에 뛰어들수 없지 않는가. 더이상 지체할 이유없이 퇴사를 감행했고 그 원동력의 중심에는 아이가 있었다.








육아휴직과 복직 사이에서 아이가 가져다 준 의미를 생각해 본다. 임신과 출산은 인생이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려 주었지만 육아는 달랐다. 육아 역시 뜻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육아휴직 기간은 달콤했다. 천국이 있다면 이곳 같았고, 천사가 있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 같았다.


어쩌면 천사의 모습을 한 아이는 끓어오르는 물의 임계점을 알려주기 위한 특명을 가지고 왔는지 모른다. 미지근한 물이라고 생각했던 회사는 육아휴직 후 복직을 해보니 끓는 물 그 자체였다. 끓는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튀어 나오는 것처럼 이제 회사는 뛰쳐 나와야만 하는 곳이 되었다.


아이가 없을 때는 익숙하다는 이유로 서서히 끓고 있는 물에서 서서히 익어가며 시도하지 않았다. 99도의  물에서도 버티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 아이는 100도의 끓는 점을 만드는 존재로 왔다. 위기의 순간에 끓어 올라 본능적으로 탈출하게 만드는 자극제가 되어 준 것이다.


엄마에게 첫째 아이는 자아의 확장이라고도 한다. 여자는 생명을 생산하는 능력과 동시에 자아를 새롭게 만나는 두 번째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을 엄마로서 인생 2회차로 살 수 있으니 특권이자 축복이다. 그래서 출산의 고통을 대신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로 인해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는 기회를 얻는다는 점이다.


엄마와 아이의 행복을 꿈꾸며 엄마의 역할에만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전업주부의 삶을 선택하기로 했다. 내가 나인지 회사인지 모르는 11년의 삶을 끝내고, 나의 시간이 아이에게 오롯이 쌓이는 여정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퇴사를 하며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온전히 빛이라 여기며 문을 열었는데 그곳에 또 다른 문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빛이 있으면 반드시 어둠이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곤 한다.








사진출처. 픽셀스 https://www.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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