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미유 Nov 23. 2023

프롤로그. 자존감은 서서히 무너진다.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지만
위암일 수도 있겠어요.



아프니까 서른이다를 외치던 시절 온몸 구석구석이 아팠다. 이것이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성장통이라 여기며 이른바 ‘서른 앓이’를 말하던 시기다. 다소 젊은 여성의 위암 가능성을 알리는 게 안타까웠는지 의사의 눈빛은 평소와 달랐다.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된 때라 유독 ‘암’이라는 단어가 공포스럽고 날카롭게 머리에 꽂혔다. 그리고 슬펐다. 슬픔은 이내 속상함으로 바뀌어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은 눈물로 적셔졌다.

엄마가 돌아가신 빈자리를 회사 일로 채우며 깨어있는 시간은 온전히 일과 회사 사람들에게 할애했다. 나란 존재를 의식적으로 희미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나의 존재가 느껴지면 엄마 없는 슬픔이 크게 다가와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 그러나 위암일지 모른다는 몸 상태를 마주한 날은 의식적으로 잊었던 슬픔이 차올랐다. 결국 나도 암으로 죽는 건가. 어쩌면 슬픔보다 억울한 마음이 더 컸는지 모른다. 엄마가 보고 싶었지만 이렇게 빨리 엄마 옆으로 가게 될 거라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살았고,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애쓰며 살았을까?’ 결국 내게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허망했다. 조직 검사를 기다리는 며칠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특히 아빠가 알면 또다시 걱정과 절망을 안겨 드릴 것 같아 차마 전할 수 없었다. 머리가 정지된 상태로 며칠을 보내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 진료실.


“조직 검사 결과 암은 아닌데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하겠습니다.”


암이 아니라는 의사의 말에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이후의 치료 계획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만성 위염이 지속되면 위축성 위염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장기화되면 위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당시 진단명은 이름도 어려운 ‘위 장상피화생’으로 위암 직전의 단계라고 했다. 두 달 이상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암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감사했다. 병원에서 돌아와 엄청난 양의 형형색색 약들을 두 손 가득 움켜쥐고 기뻐하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신 사건은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다. 몸은 20대였지만 내면의 자아는 미처 크지 못한 미성숙한 어른이었던 당시, 한 몸처럼 여기던 엄마의 부재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마마걸’이라고 불릴 만큼 엄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기에 엄마가 없는 자리는 일곱 살 어린아이가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어른의 몸으로 아이처럼 표현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장 담듯이 꾹꾹 마음 한구석에 슬픔과 상실감을 눌러 담았다.  




회사에 병가를 내고 쉬는 동안 휴식은 제대로 꿀맛이었다. 매일 식단 조절을 하고, 하루 세 번 한 움큼씩 약을 몰아넣어야 했지만 기뻤다. 살 수 있음에 기뻤고, 쉴 수 있음에 기뻤다. 그러나 휴식이 주는 달콤함과 다시 살아간다는 기쁨에 취해 인생의 다음 단계를 구상할 수 있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 꿀에 빠져 인생의 황금 같은 기회를 제대로 놓친 것이다. 몸을 통해 자존감의 위기 상태를 알려 주었는데 신호를 알아차릴 수 있는 현명함이 당시에는 없었다. 병가의 종료와 함께 자연스럽게 일터로 복귀했고, 일상은 예전과 똑같아졌다. 다시 살아났다는 감사함은 금세 지워지고, 나를 잊은 채 기계의 부속품처럼 노동자의 삶을 이어갔다.


몸이 우리에게 알리는 신호는 매우 중요하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건강하고, 마음이 건강해야 몸이 건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몸과 마음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꼭 몸만의 문제임이 아닐 수 있다. 몸이 아프다면 내 마음의 어디가 불편한지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지혜는 평소 내면의 상태에 집중하고 자신을 돌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고 관심과 애정으로 바라볼 때 가능하다. 당시에는 이것을 전혀 알지 못했고, 알려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기고 자아가 충만하게 완성되지 못한 인간에게 이번 사건은 그저 암이 아니라는 이벤트에 불과했다. 잠시 동안 식단 관리와 약물 치료를 병행하면 끝나는 문제라고 여겼다. 자아를 성장시킬 기회를 놓친 채 익숙한 예전 패턴으로 돌아갔고, 외부의 시선과 평가, 실적에만 집중하는 삶을 살았다.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존재는 무시하고 말이다.

마음의 상처는 해결하지 못한 채 상처는 묵은지처럼 묵혀졌다. 그렇게 묵혀져 없어진 줄 알았던 마음의 상처는 십 년 뒤 구더기 같은 모습으로 더 끔찍하게 다가왔다. 알람 소리를 듣고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자 신은 더 강력한 신호로 나를 뒤흔들어 깨운 것이다.



자존감이 위기라고 조용히 속삭일 때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다면 아주 큰 축복이다. 반면, 자존감이 위기라고 속삭일 때 무시하면 자존감은 힘을 잃은 채 자신 안에서 서서히 사라져 버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