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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완벽주의 도시 입니다.

by 미미유

완벽주의 도시의 시민 헌장


규칙 1. 시작은 완벽하게 준비된 후에만 할 수 있다. 섣부르게 행동하지 말아라.

규칙 2. 실패는 수치스러운 것.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규칙 3. ‘완벽 지수’가 미달되면 처벌을 받는다. 어설프게 시도하지 말아라



"내 코코,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기억에서 한참 잊혀졌던 토끼 인형이지만, 보자마자 루니의 감각 세포들은 곧바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촉감, 엄마 냄새인지 아기 냄새인지 모를 익숙한 후각이 루니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도시는 낯설지만, 애착 인형 코코와 함께 있으니 한결 안심 되었다.


코코를 안고 사람들을 찾아 조심스럽게 지하철 역사 밖으로 나간 루니 앞에 꼬마 한 명이 부리나캐 달려왔다.


"언니, 이 토끼 인형 너무 귀엽다. 나도 안아볼래!"


거절하는 방법을 모르는 루니는 가장 안전하게 느끼는 애착 인형도 낯선이에게 쉽게 내어줄 수 밖에 없었다. 코코를 덥석 안으려던 꼬마는 그만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만다. 그때, 길모퉁이에서 쉴 새 없는 두리번 거리던 작은 감시 로봇들이 일제히 꼬마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체포! 체포! 실수 발견!"

"엄마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멀리서 달려오던 꼬마의 엄마는 끝내 저항 한 번 못한 채, 끌려가는 아이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아이고 어른이고 이 도시에서는 누구도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다음이라는 기회는 없어 보였다. 또 다른 감시 로봇들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포착될 때마다 채점하듯 머리에 숫자를 띄운다. 루니는 이 낯선 풍경 앞에 몸이 저절로 굳어졌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용납 없는 공기 속에서 루니는 자유롭게 숨을 쉬기 어려워졌다.


"후우.."


루니가 가파르게 숨을 몰아 내쉬자 주변의 시선이 집중된다. 마치 ‘그래서 제대로 할 수 있겠냐’고 묻는 표정이다. 이곳에서는 요구되는 기준이 미치지 못하면 모두의 눈총 세례를 받게 된다. 따가운 눈총을 온몸으로 막아내던 그때, 도시 중앙 광장 번쩍이는 거울 건물 앞에서 루니는 이 도시의 주인과 마주쳤다.


선명한 눈동자와 자로 잰듯한 발걸음, 깔끔하게 차려 입은 검은 정장, 검은 망토를 두른 키 큰 남자는 겨울 왕국의 엘사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바로 이 도시의 주인, 완벽주의 씨였다.


첫 만남


댕! 댕! 댕!

광장의 거대한 시계탑 종소리가 세 번 울리자 광장은 숨죽인 듯 고요해졌다. 자로 잰듯 열을 맞춰 움직이던 시민들은 완벽주의 씨가 나타나자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그에게 집중했다. 완벽주의 씨는 망토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 끝자락이 바닥을 스칠 때마다 은색의 먼지가 흩날렸다. 먼지는 곧 수치로 바뀌어 공중에 떠올랐고, 이내 사람들의 머리 위에 숫자가 매겨졌다. 완벽주의 씨는 고개를 살짝 젖히며 마치 세상의 기준을 재단하듯 차갑게 속삭였다.


“저건 87점. 저건 94점. 너는…… 62점.”


숫자를 부여받은 시민은 고개를 숙이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모두가 높은 점수를 받으려는 듯 숨조차 고르게 쉬며 완벽주의 씨의 눈치를 봤다. 그때, 완벽주의씨 시선이 루니에게 닿았다. 낯선 아이, 아직 아무 점수도 없는 휑한 머리 위. 완벽주의 씨는 천천히 다가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너는 왜 아직 시작하지 않았지?”


그 목소리는 따뜻함이 전혀 없었다. 이상하게도 완벽주의씨의 질문은 루니의 가슴속 가장 약한 곳을 정확히 찔러버렸다. ‘왜 시작하지 않느냐’는 물음은 루니가 스스로에게 매일 던지던 질문과 같았기 때문이다. 루니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입술은 달싹였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완벽주의 씨의 눈빛은 그 침묵마저 하나의 결함으로 기록하듯 차갑게 반짝였다.



오늘 계획은 모두 지켰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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