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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양이 Aug 09. 2019

동생은 내 아들이 아니지만

띠동갑 남매가 사는 법



엄마가 되면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

엄마는 자식들 밖에 모른다. 나는 엄마 밖에 모르는 딸이 아닌데. 나도 자식을 낳아 봐야 그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까? 친구처럼 지내온 덕에 엄마와 매일 연락을 하며 지내는데 가끔 엄마는 나를 무릎팍 도사로 쓰곤 한다. 그 중 10중 8은 동생에 대한 걱정으로, 동생이 비싼 패딩을 사달라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라던가 집에서 밥은 안먹고 나가서 패스트 푸드만 먹는다- 같은 것들이다. 나로선 그게 그렇게 스트레스 받고 괴로워 할 일인가 싶은데 엄마는 아닌가 보다. 자식의 감정선에 지나치리 만큼 큰 영향을 받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한 소리 하면 엄마의 반응은 항상 똑같다. '네 자식이 아니어서 그래.' 그게 이유라면 난 결코 동생을 엄마와 같은 입장에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최근 동생 일로 엄마와 다툰 적이 있다. 사실 다퉜다기 보다는 내가 일방적으로 화를 낸 일인데 동생의 픽업 문제 때문이었다. 내 동생은 아침 등교, 수업 마친 후 학원 이동, 학원 끝나고 귀가 시에 엄마가 차를 태워주고 있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바쁘다. 동생의 스케줄 표를 냉장고에 붙여놓고 시간마다 체크를 하니 원. TV에서나 본 극성엄마가 내 엄마였던 것이다. 엄마 말로는 교통편이 불편하다는데 동생은 내가 다니던 학교 바로 옆 남고를 다니기 때문에 동선은 꿰고 있었다.(심지어 내가 다니던 학교가 더 멀다.) 그래, 학교 등하교는 그렇다 치고 학교에서 학원까지는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린데 그걸 태워주러 학교까지 다시 간다고? 왜 그렇게 엄마의 시간과 체력을 갈아서 애 뒷바라지를 하냐며 굉장히 분노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 때는 왜 그렇게 안해줬잖아- 라는 서운한 마음까지 치고 올라왔다.


'걔는 좀 안됐잖아. 내가 늦게 낳아서 체력도 약하고. 그게 늘 맘이 짠해서.'


그래. 그게 엄마의 마음인가 보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는. 근데, 그것보다 슬펐던 건 엄마가 힘든 것은 보기 싫은데 그 와중에 평등한 대우를 해달라 서운해 하는 나 자신이었다. 첫째 딸이어서 더 오랜시간을 엄마아빠에게 사랑받았고 모든 처음을 함께 했는데 그걸로는 모자랐나. 나한테는 안해줬으니 동생에게도 해주지 말라는 게 누나로서 얼마나 모자란 생각인지 곱씹을 수록 동생에게 미안했다.    




첫째의 숙명

사회에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단박에 내가 장녀임을 알아본다. 어린 동생이 있다고 하면 늘 그럴 것 같았다고. 사실 사회가 정의하는 장녀/장남의 롤은 꽤 긍정적인 편이다. 이해심이 많고 남들을 잘 챙겨주며 희생정신이 강한 사람. 그리고 실제로 그래야 미덕이다. 동생 것을 빼앗거나 어리광부리는 첫째는 흔히들 기대하는 첫째의 모습이 아니니까.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의 모습은 세상의 많은 둘째들의 눈물 콧물을 쏙 빼놨었다. 심지어 난 둘째도 아니면서 그게 그렇게 슬펐다. 실제 내 역할은 덕선이 언니 성보라였는데,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당연히 공부를 (잘)해야 했고 의젓해야 했으며 힘들거나 고통스런 일들을 겪는 중에도 가족에게 티낼 수 없었다. 혼자 감당하고 어떻게든 해결하고 난 뒤에야 사실 나 그때는 좀 힘들었어, 라고 웃으며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난 그마저도 잘 하지 않는 딸이었지만.


동생이 생기기 전이나 후나 첫째인 것은 변함이 없지만 동생이 있고 없고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동생이 둘이나 셋이 된다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질테지. 물론 외동들도 오롯이 혼자 부모님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겠지만 동생이 있다는 것은 언제고 이 아이를 부양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을 갖고 사는 것이다. 동생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하고 때론 용돈도 줘야 하며 사고라도 치는 날엔 그게 내 부담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것. 특히나 나처럼 어린 동생이 있다면 말이다.


나는 그게 어릴때부터 은근한 마음의 짐이었는데, 엄마랑 말다툼을 하면서 처음 그 이야길 꺼내게 되었다. 동생이 있어서 지금은 너무 좋지만 사실은 힘들었다고, 나한테 모든 이해를 바라지 말라고. 아마 엄마는 울었을 것이다. 8남매 중 막내로 예쁨만 받고 자란 엄마가 내 맘을 알겠냐고 해버린 모진 딸래미여서. 그럼에도, 그 모든 부담과 걱정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든든한 편을 만들어 줘서,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이번 생에 엄마가 내 엄마고 아빠가 내 아빠고 동생이 내 동생이어서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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