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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상담소 양희조 Jul 01. 2021

2회기. 그럼에도 오늘을 돌보는 방법을 알아보기

  (멜로가체질) 잠시 멈추어 현재를 살피기 시작하는 은정

(가상상담)

멜로가 체질의 은정의 방문 

 '사별 애도상담'으로 다루기 2회기 



  은정 씨(전여빈)가 홍대 씨의 부재를 마주한 지 어느덧 2년의 시간이 흘렀어요.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지 어느 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를 살펴보는 이유는 상실의 시기에 따라 치유에 필요한 과정이 약간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에요. 상실이 시작된 지 1-3개월 정도 지났다면 가장 먼저 안정화 과정부터 진행합니다. 현재 나타나는 심리적·신체적 위기 사항은 없는지, 그 사람에게 상실이 현재 미치는 영향을 점검해요. 소중한 사람의 상실은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이므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 화가 날 수 있고요. 떠나간 고인의 생각에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게 어려워져 먹고 자는 데에 영향을 미쳐 실제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죠. 예상치 못한 순간에 높은 수준의 고통이 찾아올 때 어떻게 그 순간을 견딜 수 있고 주변의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찾으며 이 시기를 견뎌내는 힘을 키우는 작업을 가장 주요하게 다룹니다. 


 3-6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상실로 인해 다각도로 변화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면 그때 즈음에 사별한 대상에 대한 기억을 처리하기 시작해요. 고인을 떠나보내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을 생각하면, 아마 떠나기 직전에 가장 고통스러워하거나 취약해 보이는 모습이 떠오를 수 있겠죠. 지금은 그 장면에 압도되어있지만, 우리는 그 사람이 가장 건강하고 아름답고 빛나던 순간을 알고 있잖아요. 궁극적으로 좋은 기억은 좋은 기억대로, 속상했던 기억은 속상했던 대로 그 사람의 삶이 통합적으로 내 삶에 녹여 들도록 작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다만, 3개월 이상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일상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운 모습이 나타난다면 안정화 작업으로 돌아가 그 과정을 계속하기도 해요.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해보니 사별을 한 뒤에 6개월이 지나도 극심한 고통이 지속된 채 나아지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100명 중 1-2명은 그 증상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해요. 아마 그 사이에 스스로를 돌보는 행동을 하기 어려워 신체질병이 많이 생겼을 수도 있고요. 직장에서도 이전만큼의 업무의 질을 유지하는 게 버거울 수 있고 예전엔 쉽게 참여했던 사회적 관계도 멀리할 수 있겠지요. 이렇듯 극심한 고통의 기간이 지속된다면, 감정이 힘든 것에 머무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삶의 질이 저하될 수 있어요. 이렇듯 애도의 과정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급성 애도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지속된 비애(Pronlonged Grief)로 설명하기도 해요


출처: JTBC, 멜로가 체질


  다시 은정 씨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고 했죠. 그 사이, 은정 씨의 삶에는 홍대 씨뿐 아니라 또 다른 상실들이 겹겹이 쌓여 많이 누적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행히 가장 친한 친구들과 동생이 은정 씨 바로 곁에 있어줘서 그런 부분이 덜 진행된 것 같기도 하고요. 홍대 씨를 떠나보내고 나서 은정 씨의 삶에 무엇이 달라졌고 현재의 삶에서 복구가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지, 어떻게 자신을 돌볼 수 있는지 충분히 얘기를 나눠볼 예정입니다. 그런 후에야 홍대 씨와 관련된 기억을 다루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의 모습을 점검하기 (복합비애 평가지) 

앞으로 우리가 진행하려는 치료 과정이 은정 씨에게 적절한지, 혹시 더 먼저 필요한 다른 개입은 없을지 살피기 위해 아래의 검사지를 활용하면서 지금 은정 씨에게 어떤 모습들이 나타나는지를 확인해보려고 해요. 이를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얹혀있는 상실의 경험을 같이 소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해보려고 해요, 준비가 되었다고 느껴지실까요? 괜찮다고 여겨진다면 제가 하나씩 문항을 여쭤보고 이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어요. 



* 다음 질문에 대하여, 지난 한 달 동안 어떻게 느꼈는지에 말씀해주세요. 


1. 고인에 대한 그리움 혹은 갈망을 느낀 적이 있나요?

2. 얼마나 자주 고인과 관련된 장소나 물건에 대한 생각이 원하지 않는데도 떠오르곤 하나요?

3. 지난 한 달간 외로움을 느낀 적이 있나요? 

4. 사별이 당신에게 심리적으로 큰 충격이 되는 고통이었나요?

5. 고인의 죽음을 상기시키는 것들을 회피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나요?

6. 고인을 상기시키는 것을 회피하려 노력한 적이 있나요?

7. 고인의 죽음 이전에는 줄곧 하곤 했지만, 더 이상 하지 않는 것들이 있나요? 혹은 사별 전에는 줄곧 만나곤 했지만 더 이상은 만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나요? 

8. 위에서 말한 이러한 것들을 하지 않는 것, 혹은 이러한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당신에게 얼마나 불편함을 초래하나요?

9. 고인이 없는 미래가 얼마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것처럼 느껴지나요?

10. 지난 한 달간,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쓸 여력이 없다고 느낀 적이 있거나 당신이 신경 쓰는 사람들에 대해 어느 정도라는 거리감을 느낀 적이 있나요?

11. 지난 한 달간 조금이라도 무감각하게 느낀 적이 있나요?

12. 얼마나 자주 고인의 죽음에 대해 먹먹하고 멍한 감정을 느끼거나 정신적 충격을 느껴왔나요?

13. 고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14. 사별을 받아들이는데 얼마나 자주 어려움이 있어 왔나요?

15. 고인이 없는 삶이 당신에게는 얼마나 공허하거나 의미 없다고 느껴지나요?

16. 고인 없이는 보람 있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17. 당신의 일부가 고인의 죽음과 함께 죽어버렸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18. 고인의 죽음이 당신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얼마나 변화시켰다고 느끼나요?

19. 지난 한 달간,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는데 얼마나 어려움이 있었나요?

20. 지난 한 달간, 얼마나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꼈나요?

21. 지난 한 달간, 얼마나 통제감을 잃었다고 느꼈나요?

22. 당신이 사랑하던 사람과 같은 신체부위에 통증을 느끼거나, 일부 동일한 증상을 경험하거나, 비슷한 행동을 하거나 비슷한 특성을 보인 적이 있나요?

23. 고인의 죽음에 대해 얼마나 자주 분노를 느껴왔나요?

24. 고인의 죽음에 대해 얼마나 원통함을 느끼나요?

25.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사람들은 종종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고 느끼기도 해요. 당신은 새로운 일(친구, 관심사 찾기 등)을 시작하기가 얼마나 어렵다고 느끼나요?

26. 고인을 너무나도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하던 것들을 하기 어렵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27. 고인에 대한 기억이 당신을 성가시게 하나요?

28. 고인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나요?

29. 고인이 당신 앞에 서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30. 지난 한 달간, 얼마나 안절부절못하고 조마조마하거나 쉽게 놀란다고 느꼈나요?

31. 지난 한 달간, 얼마나 잠을 편히 자기 어려웠나요?

32. 당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해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느끼거나, 고인과 사별한 상황에서 당신이 살아있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33. 사별을 겪지 않는 사람에 대해 부러움을 느낀 적이 있나요?

34. 당신이 사랑하던 사람과 사별한 지 몇 달이 지났나요?   ____ 개월

35. 사별 이후 몇 개월 뒤에 이런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나요?    ____ 개월

36. 지금까지 얼마 동안 이런 감정을 느껴왔나요?    ____ 개월

37. 극심한 비통함을 느끼지 않다가 이러한 비통한 감정이 다시 당신을 힘들게 하기 시작한 적이 있나요?



출처: 정형수(2015). 한국형 복합비애척도 개발: 예비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청구논문. 



 과거의 모습을 점검하기 

다음으로는 간단하게 은정 씨 삶에서 중요한 사람은 누가 있었고 그분들과의 관계는 어땠는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지 살짝 여쭤보려고 해요. 오늘은 깊게 여쭤보지는 않을 거예요. 이후에 좀 더 이야기 나누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 주셔도 좋아요. 은정 씨 삶의 스토리를 전체적으로 스케치하듯 우리가 함께 훑어보려 해요. 어렸을 때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그때를 생각하면 바로 떠올리는 기억이 있나요? 부모님이 해외로 떠나고 나서는 동생과 함께 살았던 걸까요? 홍대 씨를 만나기 전, 그리고 홍대 씨가 떠나고 나서 가장 의지했던 관계는 누구인가요? 






위의 내용들을 함께 살펴보니, 은정 씨는 오늘을 살아가는 기능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먹고 자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는 일상적인 모습들도 안정적인 것 같고요. 시급하게 다뤄야 할 우울이라던지 불안, 외상과 관련된 심리적인 증상들이 있으면 먼저 살펴야 하겠지만 그런 것들이 현재로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여러 차례 만나면서 은정 씨가 홍대 씨에 대한 마음을 잘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해요. 은정 씨 마음속에는 아픈 홍대 씨를 차마 지켜보는 것도 고통스러웠던 순간과 홍대 씨가 떠난 그 순간부터 혼자 이 모든 걸 감내하기 어렵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있을 거예요. 한편으로는 홍대 씨와 빛나고, 아름답고, 함께 미래를 꿈꾸면서 충만했던 순간도 있을 테지요. 이 모든 기억들이 단편적인 조각조각으로 남아있지 않도록, 소중한 기억은 소중한 기억대로 힘들었던 기억은 또 힘들었던 기억대로 잘 통합하여 입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과정들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그렇게 내 삶에서 그의 부재를 포함하여 새로운 익숙함을 만들면 현재 지내시는 것보다 덜 힘들 수 있을 거예요. 내 삶의 역사 안에서 그 사람 삶의 역사를 포함해서 다시 정리할 수도 있을 거고요. 


그러는 동안 여전히 벅차다고 느껴지는 감정들이 찾아올 수 있으므로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될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그런 감정들을 견디고 지나갈 수 있는지 안정화 단계를 단단하게 가지려고 해요. 상담이 끝나고 나서 은정 씨가 삶 속으로 돌아갔을 때 예상되는 상황들을 함께 상상하고 점검하는 시간 역시 가질 예정이고요. 오늘의 회기를 마무리하면서 은정 씨에게 과제를 해드리려고 해요. 


 과제 1 신체적 건강 살피기 

마지막으로 받은 건강검진은 혹시 언제인지 기억이 날까요? 아마 지난 2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른 채 지냈을 것 같은데요. 그 사이에 내 몸을 예전만큼 잘 챙기기 어려웠을 수 있기 때문에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바로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치료받기 어려웠을 수 있어요. 기존에 신체적으로 취약했던 부분이 있었다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동안 악화되었을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고요. 그래서 다음 상담 때 까지는 꼭 건강검진을 하고 오시면 좋겠어요. 그게 어렵다면 오늘 상담이 끝나고 병원에 전화해서 검진 날짜를 물어보고 가능한 날짜를 예약이라도 하면 좋겠고요. 


 과제 2 감정 관찰지 작성하기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전 5분만 시간을 내어 내 감정 관찰지를 작성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홍대 씨가 떠나고 나서 기분이 없는 것 같은 기분. 그러니까 내 삶 속에 감정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죠. 고통스러운 상황을 견디기 위한 내 노력의 일환이었을 수도 있고요. 일상 속에서 내가 어떨 때 더 괴롭고 어떨 때 덜 괴로운지 관찰할 수 있다면, 고통에도 강도가 있고 삶에서 덜 괴로운 걸 찾고자 할 때 선택할 수 있다는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잠자기 전 시간을 내어 하루 중 가장 괴로웠다고 느껴졌던 순간이 있다면 몇 시, 장소는 어디고 뭘 하고 있었는지를 떠올려 보시고 그때 그 상황에서 마음의 괴로웠던 정도가 0~10점 사이 중 어느 정도일지 점수를 매겨보는 거예요. 하루 중 가장 덜 고통스럽거나 마음이 덜 불편했던 순간이 있다면 어떤 순간이었는지 떠올려보고 그 시간과 장소, 뭘 하고 있었는지 살펴보는 거지요. 며칠 쓰다 보면 아마 은정 씨의 패턴이 보일 거예요. 주로 어느 시간대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그걸 알아차리면 귀한 자원으로 쓸 수 있을 거예요. 



- 일자: 

- 가장 고통스럽던 상황과 불편감 점수: (시간, 상황, 생각/감정, 점수)

- 가장 덜 고통스럽던 상황과 불편감 점수: (시간, 상황, 생각/감정, 점수)

- 평균 점수: 


(예)

- 일자: 7월 1일 (목)

- 가장 고통스럽던 상황과 불편감 점수: 퇴근하고 집에 온 8시 반, 밥을 먹기 귀찮아서 샤워를 하고 방으로 들어옴, 자기 직전까지 시간이 남았는데 뭘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고 슬펐음. 예전에는 같이 드라마를 보던 시간이라는 생각. 점수는 8점. 

- 가장 덜 고통스럽던 상황과 불편감 점수: 점심을 먹고 난 1시 반. 커피를 사기 위해 근처 공원을 걸음. 배가 부르고 햇볕을 쬐니 축축했던 기분이 마르는 느낌. 점수는 4점. 

- 평균 점수: 6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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