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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상담소 양희조 Jun 26. 2021

 1회기. 상실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들 이해하기

(멜로가체질) 터널이 끝나리라 희망을 품고 용기를 낸 은정

(가상상담)

멜로가 체질의 은정의 방문 

 '사별 애도상담'으로 다루기  1회기



  우리가 살면서 소중한 사람을 상실한다는 고통을 미리 예방하고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주 많은 돈이 들더라도, 아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더라도 말이에요. 하지만 그 누구도 소중한 사람을 상실하는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요. 아무리 마음 준비를 철저히 했다 해도 그 순간이 온다면 속수무책 당한다고밖에 느낄 수 없을 것 같아요. 고통을 느끼지 않는 방법이나 고통을 최소한으로 느끼는 방법은 없어요. 다만 중요한 게 있다면 그 시기에 느껴야 할 고통을 충분히 느끼고 그 터널을 마침내 걸어 나오는 것일 테죠. 터널 속에 뭐가 있는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두려운 마음에 계속 도망만 다니면 영영 터널을 지날 수 없을 테니까요. 우리가 어떤 거대한 터널 속에 있는가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자신의 증상을 조금 더 잘 알아차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설명할 수 있을 거예요


  또 모르죠, 어쩌면 아주 길고 거대한 터널을 지나고 나왔을 때 앞으로의 생을 살아가는데 유용하게 쓰일 어마어마하게 귀한 선물을 발견하게 될지도요.


  은정(전여빈) 씨와 상담이 시작되는 첫 회기네요. 오늘은 은정 씨가 홍대 씨를 떠나보내고 겪게 된 변화들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볼 예정이에요. 내 삶 속에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건 삶의 많은 영역에 새롭게 적응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은정 씨의 삶에서 정서적, 신체적, 인지적, 행동적으로 변화한 부분들을 각각 살펴보면서 우리가 이러한 변화들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고 어떤 방법들이 이 시기를 잘 보내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를 살펴보고자 해요. 사별 이후 은정 씨에게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인지적으로, 행동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출처: JTBC, 멜로가 체질



  


(정서) 요즘 느껴지는 정서, 감정, 기분은 어때요?


  어떠한 정서도 나타날 수 있어요. 그 사람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과 혼자 남겨진듯한 고립감을 강하게 느끼기도 하고요. 슬프고 우울하고 충격적이고 화가 나고 불안하고 죄책감도 느껴지다가 무기력해지기도 하고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무감각해질 수도 있어요. 이제 좀 나아졌다고 싶다가도 이전보다 더 한 강도의 고통스러운 정서들이 찾아올 수도 있지요. 현재 내가 경험하는 걸 다른 사람에게 차마 설명하기조차 피곤하고 벅차다고 느껴서 이전에 자주 만나던 사람들을 피하게 될 수도 있죠. 타인들 앞에서 울음을 참고 싶은데 통제가 되지 않는다거나 예전보다 예민하고 스스로 짜증이 늘었다고 느끼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되면 주변에서의 도움이 차단되기 때문에 고립되었다는 느낌이 더 강해질 수도 있지요. 다만, 은정 씨 곁에는 은정 씨가 부르지 않더라도 함께 밥을 먹고 집안에 온기를 유지시켜주는 친구들이 있었네요.


  우리가 좀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은 어떤 정서를 느끼는가 보다는 이걸 은정 씨가 얼마나 잘 품고 조절할 수 있는가에 대한 거예요. 누군가는 주변 사람들에게 굉장한 화를 표출할 수도 있고 매일 밤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술을 마시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면 애도의 진행이 더디게 되기도 해요. 정서에 압도된다면 이런 감정들을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언제 이런 감정이 찾아오는지 예상하고 좀 더 안전하게 그 감정을 견디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할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중요해요. 은정 씨는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씻고 혼자 방안에 들어와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다른 때보다 지친 기력이 두드러지지만 힘든 내색을 주변에 잘 내비치지 않아 왔던 듯해요. 겉으로는 괜찮아 보일 수 있지만 은정 씨가 웃으면 안 되는 장면에서 웃는 모습들을 보면 속으로 뭔가 굉장히 엉켜있는 것 같죠. 홍대 씨의 부재가 압도적으로 다가올 때 일어나는 반응들을 알아차리고 은정 씨가 이러한 감정들도 품고 있을 수 있도록 자기 돌봄 방법을 살펴보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은정 씨에게는 함께 사는 친구들이라는 굉장한 자원이 있으니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함께 있어주길 바라는 방식을 이야기해볼 수도 있겠네요.


출처: JTBC, 멜로가 체질


(신체) 몸의 감각이나 신체적인 느낌은 어때요?


  최근 느껴지는 몸의 감각 혹은 신체적인 느낌은 어떤지 대해 묻자 은정 씨는 이렇게 대답하네요. "제가 존재하는 공간이 제 몸 보다 작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제 몸을 으깨서 그 공간의 크기에 맞추고 다시 끼워 넣는 것처럼 아파요. 그렇게 또 그 공간에서 빠듯하게 숨을 쉬고 그렇게 또 저는 버텨야 해요. 그 사람을 기억해야 하니까요." 이렇듯 목과 가슴이 조이는 느낌은 사별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느끼는 감각이기도 해요. 굉장히 고통스러운 순간이 자주 찾아오기 때문에 이 시기에 우리의 신경계는 잘 조절되기가 어려워요. 위장이 마치 돌로 막힌 것처럼 배가 자주 아프고 체하기도 하고 소화기 계통의 불편감을 굉장히 자주 느껴 소화제를 계속 달고 살기도 하고요. 교감신경계가 계속 흥분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심장이 계속 두근거리고요, 아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져서 잠을 설치기도 해요. 이렇듯 하루 종일 예민해져 있다 보니 기력이 쉽게 떨어지고 정서적 취약성 역시 높아질 수 있겠지요. 그래서 식사도 수면도 잘 챙기지 못한 지 3-6개월 이상의 시간이 누적된 상태라면 꼭 건강검진을 권유드려요. 면역 시스템, 심혈관 질환 등 몸에 이상이 없는가를 점검하고 필요한 치료를 받는 것도 심리치료에서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이니까요.


  일상생활에서는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우리의 신체 각성 수준을 낮추는 실질적인 방법을 찾아보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우리가 이 시기에 느끼는 피곤함은 하루에 8시간씩 중노동 하는 피로감과 맞먹는다고 해요. 그러므로 첫 번째로는 잠을 자면서 우리 몸에게 충분한 휴식의 시간을 주고 둘째로는 밥을 잘 먹어서 신체 활력을 올려줄 에너지를 섭취하는 게 중요하겠지요. 이런 것들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이 과정을 허락하는 게 어려운 분도 계셔요. '그 사람은 떠나서 차디 찬 땅에 묻혔는데, 나는 뜨신 밥을 먹고 발 뻗고 잔다고?' 누군가는 굉장한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자기 돌봄의 방법을 기피하기도 해요. 은정 씨의 '그 사람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빠듯하게 숨을 쉬고 버텨야 한다'는 말도 그런 의미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지금은 첫회기이고 홍대 씨의 기억을 다루기 위해서는 은정 씨가 조금은 더 자기를 돌볼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마음은 뒷부분에서 좀 더 다뤄보도록 할게요.



(인지) 자주 떠오르는 생각은 어때요?


  사별 후 우리의 뇌는 마치 '부정적으로 생각하게끔 만드는 찍찍이'가 달라붙은 것처럼 퇴색되고 변색된 사고를 하게 돼요. 세상은 온통 상실할 것들 투성이로 보이기도 하고요. 긍정적인 생각들은 계속 미끄러져요. 앞서 우리의 몸은 이 시기에 중노동을 8시간 한 것처럼 피곤하다고 했지요. 그래서 뭔가를 구조화해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데에 쓸 에너지가 한참 부족해요. 주의 집중력도 떨어지고 평소와 다르게 잊어버리는 경우도 굉장히 많이 생기고요. 생각을 정리해서 차분하게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지요. 그런 의미에서 은정 씨의 이전 영화가 성공해서 한동안 집에서 쉴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떠난 사람에 대한 생각에 몰두하거나 하고 아직도 그 사람이 어딘가에 살아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이 부분은.. 조금 조심스럽게 탐색해볼게요. 은정 씨는 홍대 씨가 내 주변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나요? 얼마나 자주 대화하나요? 그 부분에 대해서 아마 주변에서 쉽사리 은정 씨에게 질문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친구분들은 판단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게 은정 씨의 속도대로 회복하게끔 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은정 씨가 준비되는 속도대로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좋겠어요. 너무 빠른 것 같다거나 충분히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될 때에는 제가 멈추도록 할 테니까요.

  


출처: JTBC, 멜로가 체질


(행동) 요즘 평소 행동은 어때요?


  앞서 얘기했듯 우리 삶 속에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 삶을 전방위적으로 다시 꾸리는 방법을 하나씩 터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수면과 식사와 같이 일상적인 부분부터 해서 평소 즐기던 취미활동과 만나던 사람 등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고요. 누군가는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고 정리 정돈, 일, 쇼핑 등에 중독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거친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해요. 혹은 이 모든 것들로부터 동떨어지고 싶은 마음에 혼자 있거나 누군가 질문해도 답을 하지 않기도 하고요. 혹시 이 중에 지금의 내 모습과 비슷한 게 있을까요?


  이 시기에 우리는 때로는 꿈을 자주 꾸기도 해요. 꿈은 우리가 삶 속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생겼을 때 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 뇌의 노력의 일환이라서 중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사별 후에는 떠나간 그 사람이 꿈에 등장하기도 하는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서 나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이 느껴졌는지 다뤄보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상담을 시작하면 우리의 마음이 살짝은 말랑말랑해져 가기 때문에 꿈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거나 꿈속에 등장인물로 홍대 씨가 자주 나타날 수 있어요. 이후에 기억에 남는 꿈을 꾼다면 꼭 잊기 전에 적어둔 후에 상담에서 그 이야기를 다루어보았으면 좋겠네요.






  마무리  


  은정 씨 오늘 요즘의 상태들을 점검하면서 홍대 씨의 이름을 소리 내어 말했는데 어떤 느낌이 드세요? 오랜만에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눈물이 나네요. 이름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눈물이 나는데,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게 참 어려웠겠죠. 앞으로의 상담을 통에서 은정 씨가 할 수 있는 만큼, 안전하다고 느끼는 만큼, 이야기를 하면서 감정적으로 압도되지 않은 채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그런 걸 경험하는 게 중요하겠네요. 오늘 이야기했던 것 중에 은정 씨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해보고 어렵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주변의 함께 사는 친구들과 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 한 주 잘 지내고 우리 다음 주에 만나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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