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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상담소 양희조 Oct 20. 2021

그간 치유하지 못한 상실을 발견하며 시작해요.

내 인생의 상실 타임라인을 만들어 보면 보살필 것들이 보여요. 


  '오늘 하루를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은 매일 의식하지는 않더라도 우리에게 꽤 많은 영향을 미치지요. 전적으로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이런 주관적인 감각들이 강화될수록 '나'라는 존재가 꽤 괜찮은 사람이고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겠다는 안정감을 느끼게 되니까요. 일의 영역이라면 내가 나의 일에서 충분한 기량을 지니고 있어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다 느끼는지가 될 수 있겠고요. 관계에서라면 내가 의지하고자 하는 사람이 심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고, 그는 내가 원하는 반응을 해줄 거라 믿는지가 중요할 테지요. 삶 전반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 삶을 통제하고 있는지와 관련된 느낌일 수 있겠지요. 


 만약 이런 느낌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게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우리는 이를 위협 신호로 감지하게 돼요. 예를 들어, 그간은 고급 커피머신이 있는 곳에서 근무하다가 이직했더니 믹스커피 한 종류만 있을 때 '믹스 커피가 앞으로 나의 대우를 예상하게 하는 건가?' 싶을 수 있지요. 어느 날부터 밤만 되면 눈이 침침해져 평소 즐기던 독서가 버거워졌을 때 '아, 이제는 영양제를 챙겨 먹야 하나' 싶어 져 바로 구매 링크로 넘어갈 수도 있겠고요. '지금 나 괜찮은가?'에 대해 느껴지는 다양한 층위의 혼란스러운 감각을 재빨리 처리하고자 이런 느낌을 무시하기도 하고요. 대안적인 방법을 만들어 해결할 수도 있을 거예요.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싶다는 마음>과 이를 공격하는 <크고 작은 위협 신호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그간 겪어왔던 상실과 상처를 대처하는 방식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과거 그 당시에는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느라 바빠서,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음에도 그것이 상처고 상실이라 깨닫지 못하고 넘어갈 수 있지요. 그렇게 되면 내가 어떤 상처와 상실을 겪어왔는지 조차 감지하지 못해 귀한 시간과 마음을 들여 그 상처를 해결할 기회를 얻지 못할 수 있고요.


 시간을 들여 내 인생의 상실 Timeline을 만들어 본다면 어떨까요? 이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내 삶 속에서 스쳐 지나갔던, 혹은 현재에 진행 중인 상실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모험을 시작하기 전, 돋보기를 가지고 내 삶의 지도를 정성껏 들여다보려 해요. 내 삶 속에 존재했던 크고 작은 상처와 상실들은 그 유구한 삶의 역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오직 나만이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상실 Timeline 만들기 


1. 빈 종이를 준비해 좌측에 수직선을 그어볼게요. 


2. 좌측 수직선을 기준으로 당신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기억부터 위에서 아래로 순서대로 적어 보는 거예요. 


           '92 남동생 태어남.        

           '95 강아지 코코 등장.    

           '96 초등학교 입학.        

           '97 처음으로 이사.        


3.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기억들을 적은 후, 그것이 상처고 상실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있다면 밑줄을 그어볼게요. 어떤 기억들이 상처라고 여겨지셨나요?


           '07 강아지 코코가 하늘나라로 떠남.    


4. 잠시 그 기억들을 떠올려볼게요. 그런 후에 느껴지는 그 상실의 강도를 수직선의 우측에 수평선의 길이와 두께로 표현해봅니다. 그리고 그 옆에 간략하게 그 기억과 관련해서 묘사를 기록해볼게요. 


          '07 강아지 코코가 하늘나라로 떠남                                                                                                                                        한 달간 코코 사진을 붙잡고 지냄. 눈물이 억수로 쏟아졌음. 


5. 일부는 충분히 관리되어 상처가 잘 아물었을 것이고 일부는 생살이 돋는 중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부는 나아지느라 간지러움을 참아야 하는 단계일 수도 있고, 일부는 상처가 안으로 깊숙이 곪아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겠죠.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실이 있다면 형광색으로 칠하거나 수직선에 음영을 표시해봅시다. 




* 상실 타임라인 작성법은 노먼 라이트의 『트라우마 상담법』(두란노, 2010)에서 '상실 연대표를 만들라' 부분을 참고하였습니다.






 공기가 잘 통해야 상처가 빨리 아물 수 있다고 하죠. 상실 타임라인을 통해 그간 내가 어떤 상실을 품어왔는가 돌아보고 그 힘든 여정을 거쳐온 나에게 수고 많았다, 잘 견뎌냈다, 위로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직 마무리되지 못한 경험들에게는 마침표를 찍어주는 작업을 여기서 시작할 수도 있을 테지요. 이미 아물었다고 생각하던 상처가 아직 치료가 필요하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면 그 역시 치유를 위한 좋은 시작일 수 있겠네요. 우리 마음의 에너지가 회복을 위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그간 숨 쉬지 못했던 상처들에게 빛을 쬐게 해 주고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으며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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