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또 다른 귀한 것을 찾게 될 테니까요.
'상실(喪失)'이라는 단어를 사전에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뜻이 나오네요.
1.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됨.
2.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짐.
무탈할 것만 같은 우리의 삶이 한순간 출렁일 때가 있지요. 그때는 마치 구명보트도 준비 못했는데 바다 깊숙이 꼬꾸라질 것 같은 위협감이 훅 느껴지기도 해요. 크게 보면 그때는 저 두 경우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나에게 소중한 대상과의 따뜻하고 친밀한 관계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순간. 혹은 건강한 몸, 꿈꾸던 미래와 같이 오랫동안 내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어떤 것이 이제는 더 이상 불가능함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때 우리는 굉장한 상처를 받죠. 크고 작은 상처 없이는 살 수 없다지만, 없이 살고 싶어요. 너무 고통스럽잖아요.
우리는 생각보다 아주 작은 상실과 상처로 무너지기도 합니다. 이전에 더 큰 사건과 과업들도 어른으로서 잘 처리해왔는데 말이에요. 부모님의 큰 수술 절차도 잘 처리하고, 업무에서 긴급하게 터진 실수도 무사히 마무리했고요. 집의 배수구에 문제가 생긴 일도, 전선이 나간 일도 모두 미루지 않고 고쳤어요. 그런데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갑자기 TV 리모컨이 보이지 않을 때 화가 폭발하기도 해요. 기껏 먹고 싶은 요리를 만들었는데 생각하던 맛이 나지 않고, 잘 가꾸어주던 식물이 어느 날 병해충으로 시들어 있었을 때. 이렇듯 아주 사소한 순간에 '인생이 원래 이렇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건가' 눈물이 터져 나오며 무너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요.
아주 사소한 일이 몹시도 좌절스럽고 견디기 힘들다고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해결하지 못했던 당시의 슬픔이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기도 해요. 우리가 오늘의 상실을 경험할 때마다 과거의 것들이 함께 찾아와 '나도! 나도 같이 해결해줘'라고 말하는 거죠. 과거의 힘들었을 그 순간이 무사히 지나간 것에 감사하면서도, 내 안에 아직 남아있는 소화되지 못한 경험은 무엇이고 그때 필요했던 위로의 손길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려보는 작업은 오늘의 나를 잘 돌보기 위해 중요한 것 같아요.
혹시 아직 당신이 충분하게 슬퍼하지 못한 상처가 있으신가요?
상실과 상처를 품으며 사는 우리, 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우리는 살면서 이미 많은 종류의 상실과 상처를 경험해왔죠. 때때로 어떤 상처는 우리가 아팠다고 생각도 못하고 지나갔을 수도 있고, 어떤 상실은 인생 전체를 통틀어 견뎌야 하기도 하고요. 인생에서 예기치 못한, 혹은 예견했더라도 미처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상실과 좌절, 실패, 상처를 방어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애를 쓰며 살아가곤 해요. 할 수 있는 건 보험으로도 막아보려고 하고요. 하지만 인생의 경우의 수는 너무나도 방대하여 이를 통제하려는 시도는 항상 실패로 돌아가고 말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상실과 상처 그 자체보다는, 상실과 상처의 존재와 그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고 대면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인생에서 겪은 상실을 대면하는 건 굉장히 많은 용기와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못 본 척 지나치고 싶은 것들이 많기도 하죠. 하지만 하나의 혈관이 막히면 몸 전체의 순환 시스템에 오류가 생기기도 하죠. 마음의 기능도 이와 유사해서, 한 곳이 작동을 멈추면 다른 마음의 기능도 막히고 궁극적으로는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해요.
누군가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새삼 저 균형감에 놀라곤 해요. 동그란 저 바퀴가, 양쪽에 지지대도 없는데, 어쩜 넘어지지도 않고 저렇게 잘 달릴까? 균형을 잃는 건 순식간일 텐데도 그런 가능성일랑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앞으로 쭉 달려가지요. 반면, 길가에 놓여있는 자전거는 꽤나 안정적인 모습입니다. 넘어질 일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자전거가 지닌 바퀴와 체인, 브레이크, 핸들바의 섬세한 기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달려야지요. 넘어질 가능성을 품고 말이에요. 다칠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무릎 보호대, 헬맷과 같이 넘어지면 쿠션 역할을 해줄 친구들을 챙길 수도 있지요.
봄날 흐드러진 꽃들이 피었을 때 한강변을 달리던 때를 생각하면,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서 바지가 찢어지고 무릎에 상처 나는 위험성 정도는 감수하고 싶어 져요. 생에는 굉장한 불안감과도 이를 뛰어넘을 생동감도 함께 존재하는 듯해요. 내 인생에서의 상처들을 찾아내어 충분히 위로하고 보듬어준다면,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모험이 조금은 더 기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