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아픈 시기를 부디 잘 보낼 수 있길 바라요.
당신이 아픈 시기를 부디 잘 보낼 수 있길 바라요.
당신이 아픈 시기를 부디 잘 보낼 수 있길 바라요.
한동안, 내가 갖고 싶어 하는 것들을 내 손안에 넣는 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던 시기가 있었어요. 실제로 손안에 넣기까지 꽤 아등바등했지만, 그래도 애쓰면 획득할 수 있다 느껴졌어요. 내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해가면서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지금 생각하면 약간 오만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 당시는 확고하게 존재했던 듯싶어요.
그러다, 갑작스럽게 아주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서 굉장한 무력감을 겪게 되었어요. 실은 그 당시에는 내가 무력감을 겪고 있다는 사실 조차 자각이 되지 않았어요. 내 앞에 난생처음 보는데 해결해야 할 과업들이 무척이나 많았거든요. 아주 가까운 사람을 잃는 경험은 단순히 내적으로만 변화를 겪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없는 삶에 나를 새롭게 적응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돌이켜보니, 저는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을 온전히 그리워하는 시간을 보내지 못했어요. 그저 세상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위험한 공간이 되어 버렸고, 나는 아무런 예상과 대처와 방어를 할 수 없는 힘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만 했어요. 그 사람을 온전히 그리워하자니, 내가 취약하고 세상은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에 강렬하게 압도되어 그 대상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그냥 묻어두게 되었어요.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는 건, 지금은 자연스러운 애도 과정이 막혔다는 하나의 사인으로 보이지만, 당시는 내가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아 다행이라고만 여겨졌어요. 주변에서도 제가 더 이상 울지 않고 슬퍼하지 않으니 나아졌다고 여겼고, 저 역시 다시 학업과 일에 몰두하면서 그 시기를 잘 보냈다고 한동안 믿었어요.
뭔가가, 내 안에서 고장 나 있었구나를 깨닫게 된 건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어요. 뉴스에서 갑작스럽게 누군가가 사고를 당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거봐, 이 세상은 너무나도 위험한 곳이 많아.'라는 불안에 휩싸였고요. 의식하지 못했지만, 내 삶에 더 이상 소중한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은 모습들도 있었어요. '그 사람도 나를 떠났는데, 당신이라고 나를 떠나지 않겠어?'라는 메시지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안에 박혀있었더라고요. 그래서 잃으면 또다시 괴로워할 수 있게 될 만한 것들을 만들기가 두려워졌고, 그로 인해 제 삶의 여러 부분들이 막혀 이전만큼의 생기를 띄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애도와 관련된 연구, 프로그램, 상담 작업들의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애도 과정은 예방할 수도, 방지할 수도 없는 삶의 하나의 과정 중 하나이지요. 무척이나 괴롭고 생의 근간을 건드리기 때문에 도망가고 싶지만 그 시기를 잘 아파하는 게 남은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어요.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을 잘 마주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떤 마음의 변화를 겪을 수도 있겠다고 스케치를 그려볼 수 있는 연습과 함께 그 과정이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전문적인 도움을 제공받는 게 중요하다 여겨져요.
지금은, 원하는 것을 잘 획득하는 것보다 잘 상실하고 잘 회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고 느끼게 되었어요. 이후에 저는 개인상담, 집단상담, 관련 교육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며 당시에 슬퍼하지 못한 감정들을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가 안전하게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굉장히 마주하기 고통스러웠지만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감정들이었더라고요. 덕분에 제 삶에서 큰 의미를 지녔던 그 사람을 떠올리며 슬퍼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슬퍼할 수 있음에 감사하기도 해요. 그리움 속에는 그 사람이 저에게 쓴 마음과 사랑의 크기를 함께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전 당신이 잘 상실하고 삶의 생기를 잘 살필 수 있기를 바라요. 그 여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함께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