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가체질) 기분이 없는 기분에서, 기분을 발견하기 시작하는 은정
1-2회기 동안에는 은정 씨(전여빈)가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도록 사별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변화들을 살펴보았고요. 그중 현재 나에게 어려움으로 작용하는 것은 무엇인지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지요. 오늘은 은정 씨가 일상 속에서 어떤 기분을 느끼고, 이를 어떻게 알아차리고 있고, 자신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 은정 씨가 자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해 다루어 보려고 해요.
기분이 없는 기분이랄까. 잘 몰랐는데... 내 기분이 어떤지 의식 못 했는데 어느 날 문득 감정을 느끼는 내 몸속의 무언가가 바닥에 눌어붙어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떼어내 보려고 해도 그게 그냥 원래 자기 자리인 양 꼼짝도 안 해요.
때때로 놀이공원이나 길거리에서 부모님을 잃어버린 아이를 만나면 우리는 일단 아이를 어르고 달래면서 과자라도 사주기도 하지요. 아이가 엄마 아빠를 잃어버려서 굉장히 놀랐고 취약한 상태라는 걸 아니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일 거예요. 그 마음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어떨까요? 지금의 나는, 그 아이처럼,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이를 잃었고 그래서 굉장히 안쓰럽고 취약해진 상태이니까요. 그래서 뭐라도 아이에게 쥐려 주려는 그 태도를 가지고 나를 친절하게 돌보는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해요. 떠나버린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내 세계에 뚜렷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떠난 세상과 그 사람이 없는 나를 소중하게 대하기가 어려울 수 있겠지요. 하지만 나는 돌봄이 필요한 상태이고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들이는 선택을 해야 하기도 해요. 이게 오늘 우리가 은정 씨와 다뤄 볼 이야기입니다.
사별로 인해 상실한 미래를 탐색하기
2년이란 시간 동안 은정 씨에게 일상생활에서 많은 변화가 찾아왔을 것 같아요. 그중 일부는 은정 씨를 고통스럽게 하는 변화일 수도 있겠고요. 우리는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오면 그걸 견디기 위해 나만의 어떤 습관들을 만들기도 하는데, 은정 씨에게 그 변화를 대처하기 위해 생긴 습관들이 있을까요? 음.. 은정 씨는 모든 감정들을 혼자 삼키는 데 애를 쓰느라 주변에서는 은정 씨의 마음속에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알아차리기 힘들었겠네요. 어떤 해결방안은 그 순간의 고통을 막아줄 수는 있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그 방법만 쓰다 보면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할 수도 있어요. 앞으로의 상담에서는 은정 씨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 볼게요.
만약 이러한 변화들을 좀 더 수월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획득하게 된다면 은정 씨는 어떤 모습이 떠오르세요? 기대되는 일상의 모습은 어떤가요?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던 그림이라, 아마 바로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먼저 이 질문부터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어요. 만약에 홍대 씨가 아직도 살아있었다면, 은정 씨가 상상하던 오늘과 미래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은정 씨 삶에서 홍대 씨를 만나기 전에는 부와 명예가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가, 홍대 씨를 만나면서 사람 사이의 사랑의 가치가 한참 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나 봐요. 그렇다면 홍대 씨의 부재는 은정 씨 삶에서 가치의 부재로 연결되기도 했겠네요. 사별이라는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면, 은정 씨에게 중요했던 다큐의 다음 주제를 고민하면서 동생과 진주 씨, 한주 씨와 소소한 일상들을 공유하고 있었겠군요.
회복된 모습을 구체화하여 깃발 꽂기
일로써의 다큐, 그리고 효봉 씨, 진주 씨, 한주 씨가 있어서 은정 씨는 여기 오실 수 있었네요. 다큐 감독으로서의 은정 씨와 늘 함께 해주는 이 사람들. 잠깐 마음에 떠올렸을 때 마음에서 어떤 것들이 스쳐 지나가나요? 은정 씨 말대로, 이들은 삶과 세상을 은정 씨와 연결시켜주고 은정 씨를 확장시켜주는 존재들이네요. 은정 씨는 남들은 잘 관심을 갖지 않지만 꼭 들여다봐야 하는 이야기에 매료되고 그걸 세상이 주목하게 만드는 일을 해 왔네요.
은정 씨가 새로운 다큐 주제를 발견하고 거기에 몰입하게 된다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세요? 어디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까요? 찾기 어려운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이동하는 동안 어떤 마음이 들까요? 그다음 장면은 어떻게 되나요? 굉장히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와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은정 씨의 표정과 목소리는 어떤가요? 듣고 있는 친구들의 눈빛은요? 친구들이 그 주제에 대한 의견을 얘기하면서 응원해줄 때, 은정 씨는 몸에서 어떤 감각을 느낄까요?
그 장면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오셨네요. 우리가 그 장면을 잘 돌볼 수 있도록 앞으로 필요한 것들을 살피고 챙기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일상에서 기분을 발견하고 돌보아주기
우리가 하루 동안 일정하게 잠을 자고 적당하게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는 것처럼, 일상이라는 시간 속에서 약간 기분이 나아질 수 있고 힘이 좀 회복된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필요하지요. 우리가 평소 느끼는 감정들은 크게 기분이 좋다 혹은 나쁘다, 이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텐데요. 이 두 가지 방향성 모두 각자의 기능이 있지요. 소위 부정적 정서라 불리는 아이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목표에 집중하게끔 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요. 긍정적 정서라 불리는 아이들은 시야를 더 넓게 보게 해서 여러 대안들을 우리가 살필 수 있게 도와주지요. 그래서 우리가 부정적 정서라는 구름 밑에만 있다면 나와 세상에 대해 제한된 시야만을 가지고 바라보게 돼요. 그래서 이 시야를 확장시켜서 우리의 사고와 정서를 변화시켜 줄 수 있는 활동을 선택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은정 씨가 살아오면서 기분이 좀 나아지고 힘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되었던 활동들이 있나요? 그 활동들을 쭈욱 목록으로 적어본다면, 가장 시도해보고 싶은 활동은 무엇인가요? 그럼 다음 한 주 동안 이 활동을 실천할 수 있도록 어떤 시도를 해볼 수 있을까요?
가까운 관계에서 내게 필요한 응원받기
은정 씨가 평소에 스스로 '좀 잘하는데?' 뿌듯함을 느끼거나 주변 사람들이랑 있으니까 '편안하고 좋다'라고 느껴지는 활동들은 뭐가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 활동을 지금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느껴지는 게 있을까요? 그게 홍대 씨가 떠난 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얘기해줄 수 있나요? 아, 친구들이 나를 위로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에게도 짐이 되어서 불편한 모습을 보이느니 차라리 그 자리에 나가지 않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군요. 혹시 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안전한 대상으로서 누가 떠오를까요? 그래요, 그럼 우리 진주 씨에게 이 마음에 대해 대화를 해보는 상상을 잠깐 해보려고 해요.
자, 은정 씨가 진주 씨와 같이 둘만이 있는 조용한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마음의 눈으로 살펴볼게요. 커피 향은 어떤가요? 진주 씨는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머리를 하고 있나요? 진주 씨 앞에 앉아있는 은정 씨는 어떤 몸의 감각이 느껴질까요? 그 순간의 내가 되었을 때 지금 마음속에는 어떤 것들이 떠오르나요?
그래요, 진주 씨에게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고 기대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네요. 이 느낌이 최근의 은정 씨 일상 속에서는 언제 필요했었나요? 퇴근하고 밖에서 힘을 다 쏟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때는 힘들지 않다고 방어할 수 있는 조그마한 힘도 다 소진되고 없구나. 그 순간에 이렇게 폭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필요했겠네요. 진주 씨는 은정 씨에게 속마음도 털어놓고 단단하게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나 봐요. 은정 씨가 진주 씨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요?
그래요, 그럼 다시 집에 도착해서 진주 씨를 만난 은정 씨를 마음의 눈으로 살펴볼게요. 집에서는 내게 익숙한 집 냄새가 나고요,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가 은정 씨를 기다리는 진주 씨를 봤어요. 진주 씨에게 기대고 싶은 그 마음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처음에 뭐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그래, 긴 말 필요 없이 바로 '안아달라' 말하고 싶었구나. 그렇게 말한다면 그 친구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바로 달려와서 은정 씨를 안아줄 것 같네요. 그리고 '힘들다고 말해줘서 너무 고맙다' 얘기해주네요. 진주 씨의 목소리를 잠시 들어봤을 때 은정 씨 마음속에서는 어떤 반응들이 일어날까요? 잠깐 그 느낌을 느껴볼게요.
그 마음을 진주 씨에게 전해볼까요? 혼자서 너무 힘들었어. 오랫동안 매어 있는 말을 전했을 때, 은정 씨 몸에서는 어떤 감각이 느껴지는지 잠깐 관찰해볼게요. 그리고 마음속에는 어떤 감정들이 느껴질까요? 안도감은 몸의 어디에서 느껴질까요? 안도감을 잠깐 다시 한번 느껴 볼게요. 굉장히 가까운 친구에게 은정 씨가 마음을 나누었을 때 안도감이 이렇게 찾아오네요.
때로 내 마음의 괴로움이 거대하다 느껴지다 보니 차마 이를 누구에게 전할 수 조차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을 거고요. 혹은 내 마음의 짐이 너무나도 무거워 가까운 지인을 힘들게 할까 염려하여 나누고 싶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이토록 관계로부터 안도감을 느끼고픈 큰 갈망이 있었네요.
오늘은 은정 씨 삶에서 소중한 가치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현재에 연결될 수 있도록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루어보았어요. 지난 시간부터 적기 시작한 감정 관찰일지 있지요. 거기에 은정 씨가 적어놓았던 '덜 괴로운 순간'들의 리스트를 주욱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되어요.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메로나 아이스크림을 사 집에 와서 친구들이랑 나눠 먹었던 순간이 있네요. 하루하루 버텨내느라 느끼지 못했던 일상의 사소한 행복은 이런 거구나 느꼈나 봐요. 일상의 사소한 행복을 느낄 때 몸에서의 느낌은 어떤가요? 그때 회복된 에너지는 은정 씨 몸에 어디에서 느껴지나요? 손 끝에서의 저릿한 평안함. 하루 끝에 내게 달달한 선택을 하나둘씩 선물한다면 은정 씨의 일상 속에서 사소한 행복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