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가체질) 홍대와의 추억을 살피며 그리움을 느끼는 은정
오늘은 우리의 7번째 만남이네요. 지난 시간 끝나고 나서 은정 씨의 몸과 마음은 어땠나요? 신체적으로 불편감이 느껴지는 부분은 없었나요? 생생하게 또다시 꾼 꿈은 없었나요? 잠은 푹 잤는지, 마음의 평안은 어떻게 느껴졌는지도 궁금하네요. 그래요, 꽤 견딜만한 일상들을 보낸 것 같네요. 그렇다면 오늘의 상담을 시작해 볼게요.
아주 소중한 이를 잃고 난 후에는 한동안 꽤 잘 버티는 듯하다가도 견디기 힘들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찾아올 수 있어요. 그때는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소중한 순간들을 떠올리는 게 종종 도움이 되곤 해요. 사별 후 한동안은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 굉장히 육체적으로 취약해지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만이 떠오를 수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마치 내가 그 고통을 받고 있는 듯한 아픔을, 혹은 그보다 더 한 두려움과 불안을 내게 남기기도 하죠. 사랑하는 사람의 그런 모습은 차마 보는 것조차 너무나도 괴롭기 때문에 마치 체한 듯이 충분히 소화하기 어려운 기억과 모습으로 얹히기도 해요.
그래서 마치 그렇게 아프기 전의 고인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죠, 그렇게 아프고 취약한 모습 외에도 생기 넘치고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타인과 나누고자 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있다는 걸요. 상담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삶을 즐길 줄 알던 그 사람의 모습, 혹은 날이 아주 따뜻한 날 함께 산책했던 기억,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눠먹던 당시의 기분을 함께 떠올려보고 이를 글로 써서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시간들을 사진으로 많이 남겨놓기도 해서 함께 사진을 볼 수도 있고요.
오늘 상담 시간에 은정 씨께서는 홍대 씨의 핸드폰을 가져오셨네요. 그간은 차마 핸드폰마저도 꺼내어 마주하기 어려워 상자 속에 넣고 마음속에서도 잠가 놓았었군요. 어떤 마음으로 오늘 은정 씨는 이 핸드폰을 가져오게 되셨을까요? 그러기까지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홍대 씨를 그리워한다는 마음이 찾아오면 '그래, 여전히, 아직도, 그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야.'라는 감각이 유지되지만, 내가 어느새 조금씩 괜찮다는 마음이 찾아오면 마치 내가 그를 더 이상 소중하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괜찮다는 느낌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지고 때로는 그리운 감정 자체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보고 싶어 애가 타는 마음이라는 그리움을, 그리고 그렇게 절절한 마음으로 그리워할 수 있는 대상을 지니고 있다는 게, 우리 생에서 참 중요하지요.
애도 과정에서는 고인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도 괴로울 경우 여러 회피 반응이 나타날 수 있어요. 그 사람이 이제 더 이상 없다는, 그 사람의 부재감을 건드리는 상황을 회피하는 반응을 불안 회피라고 하고요. 그 사람의 부재를 연상시키는 사람, 사물, 상황 등 모든 게 트리거로 작용하여 이를 회피하는 행동을 보일 수 있지요. 또는 일상생활에서 나를 기분 좋게 하는 활동들을 누릴 수 없게 되는 걸 우울 회피라 해요. 예전엔 자연스럽게 누렸던 퇴근 후의 반신욕, 건강을 위해 하던 클라이밍 취미활동 등이, 마치 나 혼자 좋은 걸 누리려는 것 같아 이기적인 것 같다는 마음이 들 수 있지요. 이렇게 회피가 반복되면 고인과의 추억과 고인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할 기회가 없을 수 있겠지요. 오늘의 우리 상담에서는 홍대 씨의 핸드폰을 통해 은정 씨가 은정 씨 자신을, 그리고 홍대 씨와의 관계를 단편적인 기억들로만 규정하지 않도록 여러 기억들의 흔적을 살펴보려 해요.
그 핸드폰에는 홍대 씨가 은정 씨를 만나면서 매일 한 줄 일기를 쓰고 그와 관련된 사진을 남겨 두었네요. 정말 부지런하고도 정성스럽게 사랑을 하는 사람이었군요. 거기서 은정 씨는 무엇을 발견하셨나요?
우리 자랑스럽고 의젓한 은정. 내가 없어도 넌 분명 힘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넌 내가 사랑하고 사랑할 사람이니까. 널 믿어, 믿는데, 믿는데... 아 못 믿겠어. 날 위해서 부디 너를 지켜줘.
'날 위해서 부디 너를 지켜줘.'라는 문구를 발견하셨네요. 이 문구를 보고 느껴지는 감정이나 몸의 감각은 어땠나요? 지금 여기서 이 이야기를 제게 하면서 마음속에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이 있나요? 날 자랑스럽게 생각했었구나. 홍대는 자신이 없는 이 세계에서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을까 걱정했구나. 엄청나게 슬픈데 또 엄청나게 기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자신을 잊지 않으면서도 내가 나를 잃지 않는 선택을 하길 마지막까지 바라고 있었구나. 나도 나를 믿지 못했지만 홍대는 믿어줬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움의 강도가 옅어지고 꽤 숨 쉴만하다는 감각들이 돌아올 때,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셨군요. 괜찮아진다는 건 홍대 씨를 잊는다는 게 아니고, 홍대 씨가 없는 세상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방식이라고 새롭게 느끼게 되셨네요. 삶이 꽤 살만하고 사는 게 괜찮아지고 있다는 감각과 함께 홍대 씨를 기억할 수 있음을, 이 두 가지는 같이 존재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되셨네요. 애도 상담의 목표 중 하나는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과 내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그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새롭게 정의하고 통합하는 것 말이에요.
은정 씨는 이별과 애도 주제를 다루기 위해 상담에 오셨지요. 그래서 저와 은정 씨, 우리 두 사람의 이별을 준비하는 작업이 역시 저에게는 중요하게 느껴져요. 우리는 조정은 가능하지만 예상 대로라면 곧 종결을 진행하게 될 텐데요. 저와의 상담이 종결되면서 애도 주제가 다시 올라올 가능성도 있어요. 그래서 이 과정을 은정 씨가 통제감을 갖고 경험할 수 있도록 미리 이에 대해 충분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종결을 하면서 이전에 겪었던 상실과 관련된 느낌이 일어날 수 있어요. 다만, 우리가 준비하는 이별은 예상할 수 있고 또 조율할 수도 있는 과정일 테니 은정 씨가 잘 견딘다는 느낌을 가지고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관계가 끝난다는 것에 대해 느껴지는 마음은 무엇인지, 아직 충분히 다루지 못한 것 같은 점들은 남아있는지, 혹시 이와 관련해서 꿈에 나타나는 건 없는지 살펴보시며 저에게 이야기 나눠주시면 좋겠어요. 오늘도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