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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thew Min 민연기 Dec 05. 2023

나의 삼겹살 루틴

MAtt's Toy Workshop

저는 고기 구워 먹는 일에 진심입니다. 단백질은 가장 얻기 힘든 영양소인 만큼 우리는 그것을 가장 좋아하도록 진화를 했고,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소화할 수 있을까 불을 사용하면서 우리의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불 앞에서 시작한 대화가 공통의 관심을 이끌어 상상을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대의 벽화에서도 소가 발견되는 이유 역시 소는 그렇게 맛있기 때문인 겁니다. 


물론 진심의 고기 굽기를 위해서는 층층이 쌓인 아파트부터 글러먹었죠. 고기 굽기를 위해서는 마당 넓은 집이 우리에게 맞는 주거 형태입니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환기를 위해 이런저런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https://brunch.co.kr/@matthewmin/216


지난번 강제 환기 장치 '시리어스 BBQ 벤트 머신 마크-원' 이후 수많은 연구와 반복 끝에 현재까지 완성된 고기 굽기 루틴을 공유합니다. 소고기는 다른 루틴이 있지만 최근에는 소고기를 별로 먹지 못해 삼겹살 루틴입니다. 


일단 전기 그릴에서 시작합니다.  



내부 환기 장치가 있는 제품이지만 실내 고기 굽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돼지고기는 바짝 익혀야 한다는 선입견에 바삭하게 구우면 녹은 지방이 불판에 승화하면서 집안을 가늘게 쪼개진 지방 증기로 채우게 됩니다. 게다가 고기 표면에 마이야르 반응까지 이끌어 내려면 전기 그릴의 화력으로는 긴 시간이 소요되며 그만큼 고기 내부의 수분이 증발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한 자주 뒤집어 겉을 익히기 보다 안쪽을 익히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익은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가위로 잘라 회색이 돌기 시작한 정도만 익힙니다. 고기가 충분히 두께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는 사이 쿠킹 포일로 작은 접시를 만듭니다. 



거기에 훈연 칩을 넣어 줍니다. 저는 달콤한 향이 나는 사과나무 훈연 칩을 준비했습니다. 훈연 칩은 태우면서 나는 그을음을 고기에 입혀 고기의 풍미를 더해주는데 브리스킷 요리같이 긴 시간이 필요한 조리에 사용합니다. 저는 어떻게든 연기를 더 피우기 위해 물을 살짝 뿌려주었습니다.  



고기를 전용 구이 트레이에 진열합니다. 수많은 불 자국이 남은 이 도마는 이케아에서 샀습니다. 소고기는 덩어리로 올려 래스팅을 하는데 삼겹살은 미리 잘라 올렸습니다. 안쪽에 익은 정도를 확인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게 눈 감추듯 사라지는 고기의 안정적인 공급을 요청한 가족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가급적 덩어리로 래스팅 하는 것이 부드러운 육즙을 즐기기에는 더 좋습니다.  



그리고 토치로 고기 표면을 빠르게 구워줍니다. 이때 고기에 기름이 많으면 연기가 많이 날 수 있습니다. 페이퍼타월로 미리 닦아두면 좋습니다. 사실 기름이 승화하면서 마이야르 반응이 추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 맛나기는 하죠.  



여기서 바로 먹어도 좋지만 준비한 훈연 칩을 태웁니다. 



훈연 칩에 불이 붙으면 준비한 상자를 바로 덮습니다. 내부 산소가 소진되면서 불은 꺼지고 그 자리에 훈연이 가득 차게 됩니다. 고기를 자르지 않았다면 훈연 향이 배는 동안 래스팅도 진행됩니다. 



래스팅은 고기 내부와 외부의 근육 수축으로 인해 수분이 고기 안쪽에 모이는 것을 풀어주는 과정입니다. 래스팅 없이 고기를 자르면 플레이트에 육즙이 흥건하게 고입니다. 


이렇게 조리가 끝난 삼겹살은 부드럽고 불향에 훈연 향을 더한 맛이 납니다. 불판에 그냥 구운 삼겹살과 달리 좀 더 복잡하고 깊은 고기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고기 굽기 연구가 끝나서는 안됩니다. 기름이 적은 돼지고기 목살은 익힐 때 딱딱해지지 않도록 더 조심히 구어야 합니다. 그래도 지방에 주는 고소함이 아쉬울 때가 있죠. 



그때는 치즈를 올립니다. 치즈는 자체로 짠맛이 강하기 때문에 소금 간이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토치로 치즈를 녹여 고기를 코팅합니다. 



칼로리가 폭발하겠지만 맛은 폭발을 감내하기 충분합니다.  

https://youtu.be/_W59has93g0


"어제 뭐 먹었어?"

라고 누가 물으면


"삼겹살 먹었어." 

라고 답해도 좋지만 이제부터는 


"최소한으로 익힌 삼겹살 표면을 토치로 마이야르 반응을 더하고 훈연 칩과 함께 래스팅을 한 다음 치즈를 코팅해서 먹었어"

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아직 맛나는 고기 굽기 연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훈연 칩에 물을 뿌리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토치의 각도는 어느 정도였을 때 효과적일까? 내부를 최소한으로 익히는 것이 목적이라면 전자레인지의 전자파 조리법이 더 안전하지 않을까? 수많은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인류 문명 발전을 위해 연구를 계속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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