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자루 Nov 28. 2024

To. 그 시절 나에게

사실은 가장 응원해주고 싶은 너

안녕 은자루.

사실 이 편지가 가장 떨린다. 

나 스스로에게 편지를 써본 적이 있을까?

없었던 것 같아. 

주로 미래를 위한 다짐. 반성. 이런 글귀를 썼지, 

과거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건 정말 처음이다. 




일단.. 나는 멋진 어른이 되지는 못했어.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나아지려고 애를 쓰고 노력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스무살 시절의 나라면, 아마 이런 나를 보고도 멋지다고 말해주겠지? ㅎㅎ


20대를 통과해 오며 나는 생각했어. 

나이만 먹고 그냥 어른이라는 직함이 어색하지 않게 되는 것일까.

여전히 나는 스무살 그 시절과 크게 변한 게 없는데도, 

그냥 주변 환경에서 대하는 내가 달라지기 때문에 나는 어른이 되는 걸까?


하지만 신기하게도 몇 번 정도, 

아. 이게 어른이 되었다는 의미일까. 라는 순간은 있었어.

주로 내 생각이 한 단계 위로 올라갔다는 느낌. 이해되지 않던 것이 이해되는 느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넓어졌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런 생각을 했어.


어른이 된다는건 지혜로워지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순수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그 뒤에 있는 부분까지 보게 되는 일인것 같기도 해.

'현실을 봐라'

그 함축적인 말의 의미가 그런 건가봐. 

어릴 적엔 그런 말이 듣기가 싫었어.

좋은것만 보면 안되는 것인지. 대체 현실이 뭐길래. 내가 그러면 상상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인지.

그런 반발심도 들었지.

하지만 어른들은 너무 많은 것을 생략했어. 

내가 겪기로 '현실을 본다'는게 꼭 슬픈 것만은 아니더라.

아름다움 뒤에 숨은 추악함과. 완벽함 뒤에 숨은 노력과. 화려한 빛 뒤에 어두운 어둠은 사실 세상을 알아가는 방식인 것 같아. 

보기 싫어서 안보는게 아니라 원래 그런거라고. 그래서 우리는 작은 행복에 더 감사할 수 있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이 얼마나 찌질하게 노력해와서 멋지게 변모해온건지 알 수가 있어.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고. 그래서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더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대할 수 있는 거지.

모두 알고 있으니까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도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내 자신이 이전보다는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해보는거지. 


어린 너에게는 아직도 꼰대가 하는 소리 같으려나?ㅎ




스물 하나.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고 있을 네가 안쓰럽고 안타까워. 

'어둡다'는 말 빼고 무엇이 남을까.

그땐 누구도 믿지 못하고, 누구도 믿을 수 없을거라 생각했어. 

원래도 혼자인걸 좋아했으니 괜찮겠다 생각한 건 나의 착각이었어. 

어느날은 정말 아무렇지 않았지만, 어느날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지 않았어. 왜 내가 이렇게 고립되어야만 하는지. 나를 괴롭힌 그 사람들은 하하호호 웃으며 지내고 있는데 왜 나만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걸어가다가도 눈물이 났고, 밥을 먹다가도 힘이 빠졌어. 

그때 너는 엄청난 자기방어(나는 괜찮아 나는 괜찮아)를 하며, 혼자 수업을 듣고 혼자 밥을 먹었잖아.

지금보면 정말 아무렇지 않은 일인데.

안그래도 소심했던 네가 매일 매일, 얼마나 용기를 내며 식당에 갔는지를 기억해.

먹으면 그냥 먹으면 되지, 매번 주변을 둘러보며 혹여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너무나 지리멸렬하게 누군가 알아챌까봐 전전긍긍했지.

지금의 내가 너를 본다면 꽉 안아줄텐데.

네 곁에는 내가 있다고 말해줄텐데.


그래도 그 경험 덕분에

소중한 사람과 밥을 먹는게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되었잖아.

상투적인 느낌이 아니라 피부로, 마음으로 와닿는 것 말이야. 


나 좀 멋지지? 시간이 지나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 

식사에 오롯이 집중했던 시간. 사실 지금은 겪기 어려운 환경이잖아. 

배만 채우는 게 아니라 꼭꼭 씹어먹기. 음미하며 씹는 리듬에 나는 괜찮다 곱씹기. 

내겐 부모가 있다. 가족이 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처음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슬프고 서글프니까 이겨내기 위해 한 말이었는데

나중엔 진짜라고 알게됐잖아.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이야. 


그 시절 웬만한 수업을 모두 오전에 밀어넣고서, 아침에 학교를 갔다 점심이면 돌아오는 딸을 보고 엄마는 항상 말했어.

나한테는 엄마가 있다고. 기죽지 말라고. 괜찮다고. 

맛있게 차려놓은 밥을 먹으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졌어. 잠시뿐일거라는 생각은 못했지만, 이렇게 살아가는것도 행복이 아닌가 싶었지.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거라고. 친구 하나 없이 엄마와 밥을 먹는 사람도 있는 거라고. 

아니, 엄마가 나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도 말이야. 

어두운 기억이라 내 마음이 생생하게 기억하기를 거부하는건지, 가끔씩 아득하게 느껴지긴 해. 

그래도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엄마의 말. 엄마가 해준 밥. 그것 뿐이었어.

엄마라면 당연히 내 편이라고, 세상 모든 엄마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된 것도 그즈음이지 않았을까.

결국 혼자라고 생각한 그 모든 순간에도, 

나의 안위를 걱정하고 바라봐준 사람이 있었어.

그걸 깨닫고 나서 나는 아주 천천히, 아주 조금씩 나아졌어. 


서글프고도 아름다운 시기였다고. 

어찌되었든 이십대 초반에 그런 경험을 한 게 '나'라는걸, 그 후의 모든 시간이 그걸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


덕분에 나는 가족을 끔찍이 여기는 착한 딸, 멋진 언니가 될 수 있었고. 

매일 얼굴보는 가족들과도 틈나면 여행을 가서 시간을 채워오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잖아. 


나는 행복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된거야.

그걸로 충분해. 

정말로. 


그 시절의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구구절절 할 것 없이 하나야.

힘들고 어두운 시간엔 끝이 있다는 것.

언젠가 웃으며 넘기는 날이 올거라는 것. 

그래서 이렇게 플랫폼에 끄집어내서 노출할 정도로 대범해질 수 있다는 것.

(하나가 아니었네..ㅎㅎ)


삶을 살아가는 모든 나에게

응원의 말을 하며, 

언제나 나는 내편이다!!


- 내가 나에게




'부치지 않는 편지'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정이 끝이 났습니다. 

편지를 쓰면서, 새삼 고마운 사람이 많았고 그런 귀인이 있다는 점에 다시금 감사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사람들. 행복을 기원하는 사람도 있었고 

숨쉬듯 얼굴을 보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생기기도 했어요.


편지는 1차적으로 상대방을 위한 글이지만

쓰면서 결국 가장 행복해지는 건 편지를 쓰는 발신인인것 같습니다.


올 겨울은 유달리 추울거라고 하네요. 

따스한 겨울맞이 겸 여러분도 지금 떠오른 사람에게 

진심을 한 번 담아보시길.


읽어주셔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더 좋은 글로 올게요.

안녕!

이전 09화 To. 항상 내 옆에 있을 너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