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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자루 Dec 04. 2024

46화 의심의 양면

 “해볼게.”

억지로 웃으려는 어색한 표정은 마치 태어나 처음 웃는 사람처럼 삐걱거렸다. 치호는 그 얼굴을 보며 선생님이 왜 이 남자를 믿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창준이 내 뒤를 캐고 있다. 

역시 궁금한 건가. 아니면 의심하는 건가. DM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 창준은 바빠졌다. 치호도 수능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겐 DM클럽의 오픈일이 더 중요했다. 기민한 만큼 치호는 창준이 자신에 대해 따로 알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창준 혼자서 했다면 몰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지훈을 이용한 점은 예상 밖이었다. 

일부러 피씨방에 들렀다 이것저것 검색해보고 나왔다. 트래킹처리까지 해보려다 그만두었다. 어차피 사이트에 들어와 글을 읽는다면, 티가 날 것이다. 


예상대로 조회수가 늘었다. 단순한 숫자 하나. 창준이 이 글을 읽었나. 

반쯤 유도하긴 했으나, 그가 쓴 글 하나하나에 더해진 숫자를 보며 그는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 사이트에 글을 쓸 때만 해도 간단했던 내용에 살을 붙이고, 저도 모르게 몰입해서 몇 개나 나누어 올린 건 순전히 충동에 의한 것이었다. 


날다람쥐1호라는 말은 수진의 말이자 그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처음엔 그 말이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 하지만 나중엔 그렇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되도록 날렵하고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인지하고 쳐다봤을 때 이미 자취를 감춘 자그마한 동물. 강해지고 싶었지만 열아홉의 그는 자신이 작고 초라하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 빠르기라도 해야지. 그게 무엇이었든 치호는 1호였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실험용 생쥐라는 말보다 날다람쥐1호라는 말은 제법 매력적인 편이었다. 마지막 게시글까지 글을 쏳아내듯 적은 뒤로 그는 한 번도 다시 본 적이 없었다. 그건 미화된 이야기였다. 자신의 감정은 그렇게 순수하지 않았고, 분노하며 자신을 이렇게 만든 모든 사람을 저주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 어두운 감정을 깔끔하게 덜어내고, 약간은 아련한 듯한 느낌마저 풍기는 그 회고록 비슷한 글. 치호는 제가 썼지만 그 글을 기억하지 않으려 애썼다.


자, 이제 신창준이 어떻게 움직일까?

날다람쥐2호에게 접근하는 창준은 아주 일반적이었다. 정말 예상 그대로라 진이 빠질 정도였다. 날다람쥐2호 아저씨한테서 연락이 왔다. 


‘이놈 만나?’


치호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네, 부탁드립니다.’


창준이 이 모든 걸 알면 어떻게 될까. 날다람쥐가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되고, 내가 하려던 게 DM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내가 당한 피해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질려하려나.


질림. 질리다. 질려하다. 질렸다.

그는 이 문장이, 이 표현이 들어간 모든 말이 지독히도 싫었다. 정말 질린 사람의 표정이란 건 설명이 불가하다. 질린다 너. 얼굴에 쓰여있는 말과 시선이 던져지는 순간 알게 된다. 세상에 그보다 잔인한 건 없다. 치호는 계산형 인간이었다.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은 미래를 감안하고 시뮬레이션 해본 결과에 의해 나왔다. 치호 자신도 그가 기계적이라는걸 꽤 인정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창준은 모르길 바랐다. 고맙다고 말하던 창준. 아무리 싸가지 없는 말투로 쏘아붙여도 너를 이해해 보겠다는 듯한 순한 눈동자. 


창준을 향한 분노의 감각이 변질되고 있었다. 수진에 대한 마음도 이제는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은 아니야.

치호는 지끈거리는 눈두덩을 쓸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독서실인데.’

어디있냐는 말에 들어온 대답은 단순했다. 그걸 보고 내가 한 생각도 단순했다. 아, 이치호도 공부를 하는구나. 


공부는 꽤 하는 것 같아보였다. 저번에 지훈과 투닥거릴 때도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으니까. 하지만 그는 공부에 연연하는 고3처럼 보이지 않았다.


독서실 위치를 물어본 후 그쪽으로 차선을 바꿨다. 수진의 일기에 대해서, 그의 현상황에 대해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 와중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내일이 드디어 디데이네요. 수험생 여러분 힘내세요.!”


아나운서의 단정한 목소리를 아무 생각 없이 넘기려다가 내 주위에 수능을 볼만한 사람이 한명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방금까지도 고3이라고 인지했고, 지금 이 시기가 수능시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생각없이 넘길 뻔 했다. 나는 그가 수험생이란 사실을 제대로 인지한 적이 없었다.


“아, 씨 수능이라고 왜 말 안 해.”


나는 도로를 달리다 거칠게 좌회전했다. 발밑에서 바퀴가 아스팔트를 비집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그가 있다던 독서실 앞으로 갔을 때, 하고 싶은 말이야 산더미만큼 있었지만 일단 급하게 준비해 온 것부터 내밀었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만 꿈뻑꿈뻑 쳐다보았다. 그 행동이 평소보다 느린 게 이제야 보인다. 그와는 별개로 내민 손이 실시간으로 어색해졌다. 유난히 소리가 큰 비닐봉투를 다시 한 번 들이밀자 일단 받아들기는 한다. 안을 슬쩍 보더니,


"...이거 뭐야?"

"엿."


엿이긴 한데, 엿이라고 말하니까 이상했다. 그냥 초콜릿 같은걸 살 걸 그랬나보다. 내 말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그 단어가 단지 단어로만 불릴 때 나오는 분위기를 감지한 그가 고개를 들었다. 아 이런 상황을 '엿'같다고 표현해야 할지도.


"흠흠..욕 아니다."

"언제 알았어?"

"오늘. 왜 말 안 했어. 더군다나 내일이라니.."

"알아서 챙겨주려나~"

"...“


말문이 막혔다.


"했지."


굳는 내 얼굴을 보면서 그는 말꼬리를 올리다 말았다. 여유롭게 반호를 그리다 무표정으로 둔갑하는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매번 약 올랐다. 이 녀석은 그 사이 날 놀려먹을 생각도 하는데.


독서실 앞에서 편한 옷차림에 슬리퍼만 신고 나온 그는 엄연한 수험생이었다. 그 앳된 얼굴과 무장한 옷차림-나름 수험생다운-보고 있자니 정말 고3이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 만전이냐?"

"내일 시험? 음..그런가?"

"야, 오늘 밤새면 안 된다."

"하핫. 뭐야, 완전 아저씨같네. 난 벼락치기 안 해."

"난 밤새다 망했거든.“


내 말에 유달리 키득거린다. 시험 전에는 공부만 아니면 다 재미있다고 하더니...얘도 이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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