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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자루 Aug 23. 2024

6. 하루를 담아놓으면 인생이 된다

일기 쓰기


잠들기 전, 공기마저 어느 정도는 묵직해지고 고요해지는 시간. 잘 준비를 마치고 책상에 앉는다.
일기장을 꺼낸다. 나의 손때가 묻어 부드러워진 종이를 파라락 넘기고, 아직 비어있는 공간에 도달한다.
은은한 조명아래 펜을 들고 날짜를 쓴다. 오늘의 날짜를 쓰고, 나의 오늘을 복기한다. 느꼈던 감정, 생각, 일어난 일 등을 그냥 떠오르는 대로 적는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았구나. 내일도 힘을 내야지. 일기장을 덮는 내 얼굴엔 은은한 미소가 담긴다.
----여기까지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일기 쓰기.

실제로는 이렇다.
무거운 하루보다 몸이 더 무겁다. 스마트폰으로 잠깐만 본다고 하는 것들이 어느새 1시간을 넘어가고 있다.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하니 일단 씻는다. 씻고 나니 눕고 싶다. 누우니 자고 싶다.
아.. 일기 써야 하는데.
내일 써야지, 하며 잠이 든다.
나는 부지런한 일기러라고 말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하지만 일기 쓰기에 대한 부담은 없다. 그리고 '일기러'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무리 건너뛰기가 많아도 일기 쓰기를 완전히 놓아버린 적이 없다는 사실, 그거 하나뿐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한 번쯤, 일기를 써봤을 것이다.
나의 일기의 역사에 대해서 한 번 썰을 풀어볼까 한다.
요즘엔 사생활침해라고 해서 (세상에! '사생활침해'라니. 너무 신박하다. 그리고 그럴듯하다. 한 편으로는 으잉? 싶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여러 가지 기분이 동시에 들었는데.. 시대의 흐름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일기를 검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일기 쓰기'는 매일 해야 하는 기본 default 숙제였고 선생님이 일기 아래다 싸인 또는 도장을 쾅 찍어주는 것으로 그 일기는 일기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었다.


나는 칭찬받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일기를 성실히 썼다. 하지만 방학 때는 몇 주씩 밀리곤 해서, 방학이 끝나기 전에 한 달 치를 몰아 쓰곤 했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글씨가 개판이었다. 훗날 이 어린이는 악필의 어른이 된다)
놀았다. 맛있는 거 먹었다. 친구를 만났다 등 돌아가면서 쓸거리는 있는데 ( 날짜는 전혀 맞지 않을 테지만 ) 날씨를 표시할 때는 애를 먹었다. 그래서 웃기게도 어느 정도 맑은 날씨가 계속되면 이상하니까(?) 중간에 흐린 날 하나, 비 오는 날 하나를 넣는 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날씨를 모른다고 하거나 그냥 표시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런 데서는 쓸데없이 성실한 아이였다.


보통 이 시기에 '진절머리'를 내며 다신 '일기 따위 쓰지 않겠다'라고 다짐해 버리는 어린이들이 많은 모양인데, 나는 일기에 물리진 않았다. 그저 중학생이 되었을 때부터는 아무도 읽지 않고, 나만 읽게 되는 일기를 꽤 좋아했던 것 같다.


매일은 아니어도 좋은 일이 있을 때나 기록하고 싶은 날이 생길 때마다 일기를 썼다. 그러한 습관은 대학 때까지 이어져, 가끔 어디선가 '일기'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쑥스러운 얼굴로 '저 일기 써요'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의 신기해하는 시선을 마주하곤 했다. 각양각색의 반응이 있었는데 ( 노관심 류, 그러든가 말든가 류, 대단하다 류, 나도 왕년에.. 류 등 ) 대다수는 마치 너는 아직도 그런 유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느냐,라는 뉘앙스를 포함했다.

*
그래서 나는 의아했다. 유튜브를 보면 매일 일기를 쓰다 못해, 분류를 해서 또 정리하고 쓰고 또 쓰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 같은데 이건 내가 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 속해서 알고리즘이 나를 가둔 것일까?
일기의 좋은 점은 무궁무진하다. 백날 말해도 소용없고, 이건 일기를 써봐야 아는 것인데
하루 이틀 써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니 금세 포기하게 되는 것 같다.
쌓인 일기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다른 사람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된다.
언제 한 번 집에 불이 나면 뭘 들고나가겠냐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일기'였다. 실제로는 목숨부터 살려야 하기에 그냥 뛰어나가야겠지만 내가 손으로 하나 하나 쓴 일기가 불에 타버리는 건 생각만 해도 안타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라는 대재앙이 세계를 덮쳤다.

*
일기와 코로나가 무슨 상관이냐고?
코로나로 사람들은 단절을 겪었다. 매일매일 밖으로 나다니는 인싸들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환경이 구성되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다. 활동적인 취미를 하던 사람들도,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취미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밖이 아닌 안을 보기 시작하니 '일기'가 나왔다. 나 역시 그저 일기를 가끔 쓰는 일상의 이벤트 정도로 보다가 코로나가 터진 후 심혈을 기울여 일기를 쓰는 시기를 마주했다.


'다꾸'라는 말을 아는가? '다이어리 꾸미기'의 준말이다. 코로나시기에 나는 다꾸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다. 글씨도 못쓰고, 꾸미는 손재주도 좋지 못한 내가 나이 서른을 넘기고 책상에 앉아 스티커와 오색펜을 들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스스로도 헛웃음이 나는데 나는 그때 정말 미쳐있었다.


첫 다꾸를 보고 이걸 어떻게 잘 위로해서 포기하게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던 동생의 얼굴이 기억난다.
하지만 덕질을 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 어떤 것이든 덕질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 세상의 행복을 안다고 생각한다 )
 잘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못 이긴다고, 다꾸와 사랑에 빠져있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동생에게서 '오오오'하는 감탄사를 듣게 되었을 때의 뿌듯함이란!


하나의 취미를 알게 되니 하나의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단순히 하루의 일상을 적는 '일기'를 넘어선 세상. 사람들은 일기를 쓰며 공유하고 소통했다. 일기를 띄엄띄엄 쓰기는 했어도, 이토록 일기 그 자체에 몰두하는 경험은 처음이라 매우 각별했다.

*
3년이 지났고, 영원한 취미로 다꾸 하는 할머니가 될 것 같았던 나는 다꾸를 그만두었다.
이유는 싱거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꾸미는 것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일기'를 쓰는 데는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는 이유가 컸다.
가끔씩 고뇌가 있는, 나중에 보면 글감이 될만한 일기도 있었는데 다꾸가 잘되었냐 아니냐로 그 하루가 나누어지는 듯한 느낌도 있었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다꾸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기 쓰는 습관은 여전히 단단하게 나를 유지하고 있다.
때로는 '아침에 빵 먹음. 오후에 드라마 보고 낮잠을 잤다. 이렇게 일요일이 가다니, 아쉽다. 자야겠다'라는 둥 초등학생과 악수해도 될 만큼 단순한 일기를 쓰기도 하지만 그 또한 시간이 지나서 보면 귀하다는 사실을 알아서 그런가, 남기게 된다.
가끔은 남아있는 스티커를 몇 개씩 붙여보며 기분 전환을 하기도 한다.
몰두하는 시기를 지나 약간의 여운을 남긴 채 내 안에 자리매김 했다고  봐 될 것이다.

좋은 일기, 나쁜 일기가 어디 있을까. 그냥 일기는 일기일 뿐.
나는 일기를 쓴 지 오래되어, 그 단어마저도 낯설고 오글거리는 사람들에게 가벼운 제안 하나를 해보고 싶다.
오늘부터 일기를 한 번 써보자. 목표는 일주일에 1번 이상. 2번 이상 쓰면 맛있는 음식으로 스스로를 치하해 주자. (물론 사치가 아닌 한 갖고 싶던 소소한 물건을 사는 것도 추천!)
그리고 일 년 뒤 써본 일기를 읽어보기를 바란다. 일 년 동안 일기를 쓴 당신을 축하해주고 싶다. 당신에게는 가장 소중한 물건 하나가 더 생기는 것이니까.
자, 이제 나도 오늘의 일기를 쓰러 가야겠다.




일기 쓰던 직장인이 어릴 적 꿈꾸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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