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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자루 Aug 16. 2024

5. 편지로 마음 대변하기

손 편지, 써본 적 있으신가요?

요즘 편지지 가격이 많이 올랐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비싸야 2,000원 , 보통은 1,000원 내로 해결했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편지지를 사려고 보니 가격이 3,000원을 기본으로 넘어간다. 조금 더 예쁘고 깔끔하면 5,000원을 훌쩍 넘기기도 하고.. 정말 저게 편지지가 맞나 싶은 사악한 가격 -만 원 이상-을 자랑하기도 한다.
초반부터 너무 돈 얘기를 꺼내서 좀 그러긴 하는데... 물가에 비례해 편지지의 가격. 어쩌면 그 종이를 다 겹쳐서 제본을 한 노트보다도 비싼 편지지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혹여나 편지지 하나 사러 갔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 분이 있다면--.
이번 글에 큰 공감이 될지도 모르겠다.

*
편지지는 편지의 내용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편지는 그 안에 적힌 내용이 중요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님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편지를 써본 건 언제인가?
나는 이 질문에 "편지는커녕 펜을 잡아본 게 백만 년 전이다ㅋㅋ"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예상한다. 정말 그럴까?라고 생각하면 웃음은 나오지만 조금은 서글퍼진다.
10년 정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메신저가 세상에 나왔을 때,
문자가 아니라 대화형으로 글을 보내고, 그 글이 읽혔냐 안 읽혔나를 판단 가능한 '1'이 세상에 나왔을 때.
아마 그때부터 편지는 빠르게 설 자리를 잃었다고 본다.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상대방이 안다는 것은 몇 분의 텀을 두고, 상대방의 답장을 기다리는 즐거움을 뺏어갔다.
소위 '쇼츠'에 중독되는 일은, 확실성보다 불확실성에 더 큰 희열과 도파민 분비를 촉구하는 우리의 뇌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문자를 보내고 기다리다 불특정시기에 오는 그 답장에 느꼈을 도파민을 메신저가 빼앗아갔다는 말이 되는 거다.
하지만 여기선 '숫자'가 있다. 숫자는 또 하나의 도파민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숫자가 없어지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없어진 숫자 대신 글자가 올라오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누적된 숫자가 아니라 줄어드는 숫자에 기쁜 건 아마 메신저뿐일 테다.
사람은 익숙해진다. 그것도 무척 빠르게. 대화형 메신저는 이제 숨쉬 듯 자연스럽다. 아, 어 하는 사이에도 대화가 가능하고, 그건 글과 글이 건네는 한계를 부러트려 마치 화면 너머의 사람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뭐 하나가 필요하면 용건만 간단히 대화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장문의 카톡도 가능하다. 그 안에 담긴 게 항상 가벼운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 편지가 무슨 소용이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
하지만 편지는 필요하다. 이건 내가 이메일과 문자와 편지를 모두 경험하며 자라난 세대라서가 아니다.
편지의 뭉근함을 안다면, 그 안에 꾹꾹 눌러 담은 다정함을 안다면,
그 다정함이 내게 오기까지 시간이라는 효모를 가지고 발효되고 부풀어 닿는 그 느낌을 안다면.
누군가의 진심 어린 편지를 한 번이라도 받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편지란 이 세상에 없어져서는, 대체되어서는 안 될 강력한 무언가라고 말이다.

*
보통 연애를 시작하면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왜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그 사람과는 당연하게 매일매일 연락을 할 것이다. 그런데도 편지를 쓴다. 왜일까?
편지는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그 자체다.
'내 마음을 꺼내서 보여줄 수도 없고! '
우리는 언어의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건 더욱 세밀하고 다양하고, 사실 언어로는 다 담을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언어를 보면 공통적인 언어가 있는 반면 특정한 나라에서만 쓰이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는 대체될 수 없는 단어도 왕왕 있다. 그래서 언어는 완전하지 않다. 우리의 마음을 모두 다 표현할 수 없는 수단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한계가 있지만 이것 말고는 딱히 더 쓸만한 게 없다.
그런데 편지는 조금 다르다. 편지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담긴다.
왜 그럴까?
편지에는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 감정이 실려온다. 명필이든 악필이든 그 사람의 고유 문체가 종이에 담긴다.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는 편지지에는 받는 사람을 향한 배려와 생각이 담긴다. 그 사람이 고른 펜에서는 성격이 느껴진다. 그리고 꾹꾹 눌러쓴 글씨는 읽는 동안 생생한 현실이 된다.
편지를 받아보면 안다. 아무리 별 것 아닌 내용이어도, 글을 잘 쓰거나 못쓰는 것과 관계없이,
그냥 쭉 써내려 간 편지 자체에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일기처럼 써 놓은 편지도 그렇다. 그걸 쓰는 사람이 생각난다. 그리고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그 시간을 나는 지금 경험한다.
그래서 시간을 뛰어넘는 감정이 편지에는 담긴다.
그래서 편지는 마음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매개체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소중한 감정을 품은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편지를 쓴다.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이 (그래도) 조금이라도 닿기를 바라면서.

*
자라나며 악필이 되었다. 예쁜 글씨를 천천히 쓰기에 세상은 각박했다. 세상 탓을 하기엔 예쁜 글씨를 잘 쓰는 사람들도 아주 많아서, 이건 내 탓 같긴 하다 (ㅋㅋ)
나는 편지를 쓸 때 미리 한 번 초고를 쓰고, 편지지에 옮겨 쓴다.
즉흥적으로 쓰던 시기도 있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예쁜 편지지를 버리고 마는 게 속이 상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고 하면, 적어도 1~2시간의 여유가 필요하다. 미리미리 준비하려면 적어도 며칠은 필요하다.
어쩌면 소설을 쓰는 것보다 편지를 쓰는 일이 더 정성스럽고 수고스럽다.
편지를 쓰는 동안 나는 기분이 좋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이걸 읽을 상대방의 모습이다.
편지를 읽는 사람에게 이 편지는 과거지만, 편지를 쓰는 순간 상대방에게 닿는 건 미래다. 나는 미래를 본다. 어쩜. 이렇게 보니 편지는.. 정말 대단한 게 아닐까?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동시에 체험하고 있으니 말이다.

*
어린 시절부터 모아놓은 편지 뭉치가 있다. 아마 잃어버린 것도 많을 테지만 나는 편지를 버리지 못하겠다. 찍어서 디지털로 보관하라는 팁도 있던데, 편지는 편지 자체로 마음이라서. 아무래도 버리지 못할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아주 많은 편지를 쓰고 싶다. 어깨가 아파 글을 오래 쓰지 못하지만 내 글씨가 누군가의 집구석에 남아 있다면, 내 흔적이 있다면 왠지 좋을 것 같다 (좀 변태 같으려나)
나의 흔적이 남아있고.. 매일이 아니더라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어느 날, 나의 편지를 보고 웃는 누군가를 상상하면 기분이 몽글몽글해진다.
내가 보낸 그 많은 편지들은 어디 있을까? 내용도 상대방도 모호해진 그 많은 마음은 어디로 향했을까.
부디 잘 닿았기를.
편지가 있다면 오늘 기회가 될 때 한 번 읽어보시기를.
그리고 그 사람의 행복을 아주 잠깐이나 기원해 주기를.
그리고 편지가 없어도 슬퍼하지 말기를.
그저 지금 생각난 그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기를.
'그냥 한 번 써봤어'라는 말이어도, 그 마음은 꼭 닿을 거라 믿으니까.

*
p.s
최근에 '편지가게 글월'이라는 책을 읽었다.
소설 속 얘기인 줄만 알았는데, 실제로 있는 가게였다.
모르는 사람과의 펜팔... 너무 흥미롭다. 해보고 싶다.
저와 펜팔 하고 싶으신 분 구합니다...^^



편지 같은 소설, 세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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