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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자루 Aug 30. 2024

7. 첫 책이 나온지 364일 째

다시 소설

글먹(글로 먹고살기)이 가능할까?

세상에 나온 첫 소설은 나의 첫 번째 소설은 아니었다.
단편에서 시작한 <세벽>은 세상 세, 벽 벽자를 써서 제목을 지었다.

동이 터오는 '새벽'과 세상의 벽을 의미하는 '세벽'.

작품 얘기를 하자면, 결국 세상의 벽을 넘어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는 의미 '세벽'이 다가올 듯 하여 잘 어울어진다 생각했다.
(물론 이때는 '세벽'을 검색하면 오타로 자동정정해서 '새벽'이라고 친절하게 바꾸어 검색해 주거나, '새벽'의 오타로 '세벽' 감성 글을 쓰신 분들의 글이 올라온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한 소녀가 떠올랐다.
긴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1부를 쓰고 나니, 이다음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쓴 뒤에는 나라도 책 모양으로 소장해서 남기려고 했다. 제본소에 맡겼던 투박한 종이책은 출판사를 만나 진짜 IBSN을 달고 나온 공식 책이 되었다.
인터넷서점에, 오프라인 서점에 내 책이 있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 지나가고 단권으로 꽂혀있던 책도 서서히 사라져 가는 데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책이 나오면 많은 것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또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글먹'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위치정도는 되었을까?)
글쓰기가 좋아서, 소설이 좋아서. 내가 쓰고 싶어서 시작했다.
돈을 벌면 좋겠지만 돈을 벌지 못한다 해서 쓰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직장생활도 병행한 거다.
나는 현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까?
첫 책의 인세는 음.. 정말 충격적일 정도로 적었다.
적다, 적다 하지만 정말로 '먹고살 수 없을'정도인지는 몰랐던 게 분명하다. 아니면 내가 그 현실을 외면했는지도 모르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직장이 없었다면 최소한의 생계, 의식주 중 '식'도 불가능한 정도였다. 아마 내가 전업작가였다면 무조건 알바를 하고 있었겠지...
쓰인 노력과 애정과 시간과 공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어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역시나 세상은 냉정했다. 이때쯤엔 <세벽>의 이름이 내 작품뿐 아니라, 나에게 있어서도 '세상의 벽'처럼 느껴진 것이다. (제목을 잘 못 지은 건가?ㅜㅜㅋㅋ 한때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씁쓸했다. 그리고 그런 씁쓸한 시간도 무덤 해질 정도로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
사실 돈을 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인세를 좌지우지하는 그 숫자들은, 내가 쓴 소설을 읽은 사람의 숫자나 마찬가지였다.
100원이든 1,000원이든 사실 상관없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세벽>을 읽어주길 바랐다. 읽고 나서 즐거웠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소설의 인물들에게 일말의 애정이라도 생긴다면 너무 좋겠다고 바랐을 뿐이었다.
하루에도 몇십 권씩 서점에는 책이 나온다. 나도 다독가라고 나름 자부하지만 책을 읽는 속도보다 나오는 속도가 빠르다.
세상 모든 책을 읽겠다는 호기로운 포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접었다. 그 많은 글 사이에서 누군가의 눈에 띄는 건..정말 대단한 일이다.

*
여기까지 말하면, 무척 자조적이고 땅굴 파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희망을 말하고 싶다.
왜냐면 희망도 버리기 전까지는 희망을 계속 가질 수 있으니까.
말장난 같지만 진심이다. 한 때는 수십 권 나오는 책 속에도 끼지 못해 서글펐다. 정말로, 책을 내는 사람은 따로 있고 나는 그런 류의 사람에 속하지 못하는 걸까 서글펐다.
그래. 나는 그냥 그럴 때마다 서글퍼졌다. 그리고 잠들고 다시 출근하고 퇴근하며.. 그냥 또 괜찮아져서 썼다. 원래도 계속 썼으니까. 결과가 없다고 안 쓸 거 아니니까. 원래 대문호는 늦게 데뷔할 수도 있는 거니까.
우습게도 이런 자기 암시는 효과가 있다. (걱정되는 일이 있다면 정말 유치하게 외쳐보기를 바란다. 내가 짱이다. 내가 정말 짱이다! 하고)
가끔 어떠한 말에도 부정적이 되는 날도 있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럴 때도 계속해서 자기암시하고 다음날이 되면 혹은 며칠 더 지나면--.
분명 괜찮아진다.
누가 보기엔 정말 별 것 아니지만,
(전공도 아니고, 연고도 없고, 따로 배운 적도 없지만)
소설가로서 책을 내게 되었다.
첫 발자국을 내디뎠다.

*

신기한 우연의 일치(?)로 글을 발행하는 오늘은 첫 책 <세벽>의 출간일로부터 364일째 되는 날이다.

내일이면 첫 생일이다ㅎㅎ

일년 전 나는 이렇게 브런치를 연재할 수 있을거라 생각치 못했다.

세벽도 브런치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다.
가끔 온 세상 사람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을 정도다. 내성적이고 낯가림 심한 성격인데도 오두방정을 떨고 싶어 진다.
감사해요. 감사해요.
그리고 기왕이면 한 마디 더.
<세벽> 한 번 읽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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