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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ke J Nov 21. 2017

유난히 짧았던 가을을 보내며

카미유 피사로

지난 주말 우리나라 고궁 중 가을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는 창덕궁을 다녀왔다. 단풍이 만개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물들어가는 풀과 나무를 보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더위는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기온 탓에 제법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었다. 낮에는 햇살이 따듯해서 티 한 장으로 거닐기 충분했다. 이러한 일교차덕분에 감기에 걸렸지만, 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겐 가을의 청량한 공기를 마실 수만 있다면 감기 따위는아무것도 아니다. 


Fields (Les seigles Pontoise) 1877, Oil and canvas, Private collection


나는 우리 동네에서 가을을 가장 가깝고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집 주변으로 달리기를 자주 하러 나가는데, 황금빛으로 물든 벼들을가로질러 논길을 달릴 수 있다. 황금빛 논길을 지나다 보면 넓은 평야의 주말농장이 나온다. 눈에 확 트이는 대지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코스모스가 만개해 있다. 우리집 베란다로 나가면 완만한 산이 하나 보이는데, 벌겋고 노랗게 물든 나무들을 집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여기저기서 가을이 왔다고 소식을 알리는데 모른 척하고 바쁜 일상에만 몰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듯하다. 그래서 맑은 날씨에 집과 회사에만 있기가 아까워 시간만 되면 어디든 나가서 햇살을 만끽한다. 더 추워지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곧 11월이다. 시간은 끔찍하게 빨리 가고 이렇게 짧은 가을을만나기까지 다시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남는 건사진뿐. 필름 카메라를 여기저기 휘두르고 다닌다. 가을과같이 짧고 아름다운 순간을 카메라로 찍고 나면 항상 긴 여운을 느낀다. 사계절 중 가을이 유난히 짧은것 같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은 짧아진다. 그만큼 한정된시간에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곤 한다. 가을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야 하는 화가들 또한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다. 겨울이 오기 전에 빠르게 붓을 놀려야 했을 것이다.


A path in the Woods, Pontoise 1879, Oil and canvas,  Private collection


카미유 피사로 (Camille Pissarro)는생에 1600점에 이르는 그림을 그린 다작 화가다.  피사로의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가을의 풍경은 온화하고 평화롭다. 피사로의 그림은 특별한 큰 특징이 없는 점이 특징인데, 그로 인해느낄 수 있는 평범함은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준다. 가을이 가기 전에 높은 하늘과 따스한 햇볕 아래에서책 한 권을 읽으며 권태로운 하루를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The Harvest of Hay in Eragny (LeRecolte des Foins a Eragny) 1887, Oil and canvas,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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